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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Oct 25. 2019

나의 첫 엔딩크레딧

 우리는 저마다의 엔딩크레딧이 필요하다

드라마 혹은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크레딧.

(엔딩롤, 스크롤, 스탭롤 등등 표현은 많은데 엔딩크레딧으로 통일합니다.)

사실 보통의 경우라면 딱히 눈이 가지 않는다. (마블 영화를 제외하고) 엔딩크레딧이 오르는 순간 채널을 돌리기가 부지기수다. 나도 그랬다. 솔직히 드라마 일을 하기 전에는 저 엔딩크레딧이 굳이 왜 필요한가 생각했다. 길기는 또 어찌나 길고 빠르게 올라가는지. 순식간에 흘러가는 스탭 타이틀에 시청자가 부여할 의미가 있을까? 이름은 보이지도 않고 마지막에 나오는 협찬 회사 로고나 가끔 눈에 띄곤 하는데.

뭐, 많이 봐줘서.

그냥 예의 아니겠어?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데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



그런데 말이죠.

저는 그 예의상 올려주는 이름 덕분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답니다.





엔딩크레딧이 오르면


처음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간 건 드라마 제작사에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안되었을 때다.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1년 내내 드라마가 나가는 줄 알았는데 막상 다녀보니 그게 아니었다. 몇 년을 준비한 대본도 방송국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수정, 또 수정의 작업을 반복해야 했고 회사 내부적으로도 많은 기획들이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게 일이기는 하지만 같은 대본을 수십 번씩 보는 건 역시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기획할 기회도 딱히 없을 때였다. 내가 하고 싶은 드라마를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하고 싶은 드라마를 계속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의 반복이었다.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서 그 고난의 길을 선택한 사람은 다들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얼른 내가 참여한 드라마가 전파를 탔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즐거워했으면. 거창한 욕심보다는 이런 자그마한 진심 어린 마음으로부터 시작한 일이다. 그런데 1년 가까이 이런 드라마를 찾지 못하니 어찌나 속이 타고 답답했는지. 언제까지 이런 밑 작업만 하고 있어야 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할 때였다. (지금 생각하니 참 성급했다) 

드디어 우리 회사의 드라마 한 편이 편성을 확정 짓고 방송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드라마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님의 작품이었다. 전작들이 모두 엄청난 히트를 쳤고 당시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였던 작품을 쓰신 작가님이셨다. 처음에는 이렇게 대단한 작가님이 우리 회사에서 대본을 쓰신다는 게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작가님과 함께 했던 첫 식사자리의 음식메뉴가 아직까지 기억이 날 정도다. (일식 코스여서 그랬던 걸까요?)

작가님이 이렇게 이름 있고 파워가 있는 분이다 보니 기획PD가 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를테면 대본의 수정, 또 수정, 또 수정 같은 일에서 꽤 자유로웠다. 드라마 진행도 순조로웠다. 대본이 척척 나왔고 방송국의 터치도 많지 않았다. 한달음에 작가님께 달려갈 일도 없었고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서 막차가 끊길 때까지 회의를 할 필요도 없었다. 서포트가 필요한 부분들은 해드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제작사에 있으면서 가장 편했던 작품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고생과 보람은 대체로 비례한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방영 직전까지도 그 작품이 내 새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작가님 품 안에서 너무 잘 먹고 잘 배우면서 성장한 대본이라 내가 쓰다듬고 손 한번 잡을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

왜 당신이 내 엄마야? 가끔 사탕 주는 옆집 이모 아니에요?

그 작품에게 나는 딱 이 정도의 존재였을 거다. 어쩐지 늘 대본과 데면데면했다. 그래서인지 대본 리딩에 들어갔을 때도 대본에 숨을 불어넣는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은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고 촬영장 구경을 갔을 때도 '오, 신기하다.' '오, 재밌다.' 끝이었다. 사실 현장은 잘생기고 예쁜 배우 구경만 해도 재밌고 신기한 곳이니까. 예상가는 정도의 즐거움이랄까?



그때 내 일이 조금 시들하게 여겨졌다.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던 건데, 누군가의 수상소감처럼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데.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다가왔다. 대망의 첫 방송!

사실 이미 종편(종합편집) 때 방송으로 나갈 편집본을 보긴 했지만 그래도 TV 화면으로 본다는 건 또 느낌이 다르니까. 그날도 당연히 야근 중이었으나 회사에서 첫방은 집에 가서 가족들과 보라며 조금 일찍 끝내주었다. 이미 친척들에게도 드라마 첫방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놓아서, 지금 보고 있다며 날아오는 인증 문자를 확인하며 친구들과는 카톡방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드라마를 시청했다.



아아, 그때의 기분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몇 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가슴 저 구석부터 저릿해져 온다. 대본을 하도 봐서 다 아는 내용이고 편집본도 미리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더 새로웠고

생각보다 더 가슴이 두근거렸고

생각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이 맛에 드라마 하는 거구나. 월급도 적고 내 일상보다 일이 더 먼저고 가끔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헷갈리지만 이 순간 때문에 드라마를 하는 거구나.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벅찬 마음을 누르며 한 시간 내내 양손을 꼭 모으고 시청자 모드로 드라마를 봤다.


아마도 이런 모습으로


드디어 방송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획프로듀서, 팀장님 이름 아래 내 이름 세 글자가 보였다. 내 이름이 화면에 떠있던 시간이 1초? 2초나 되었을까? 그런데 나에게는 그 짧은 시간이 마치 나를 중심으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그 많은 이름들 사이에 낀 내 이름이 TV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생각했다. 드라마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내 새끼라며 품어야 하는 거였구나. 누군가 밥상 차리는 일에 끼워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서툴러도 내가 먼저 부엌으로 들어가 재료를 다듬고 해야 하는 거였구나. 그렇게 하라고 이렇게 이름을 올려주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기특하게도 절로 들었다.



 엔딩크레딧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 하나 올려주는 것뿐인데 그것이 나의 긍지가 되었고 자존심이 되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 이 맞나요? 하는 의문에 답이 되어주었고 신입 기획PD에게 이렇게 나아가라고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외부 사람들에게는 분명 큰 의미가 아니겠지만 '드라마와 나 사이'에는 이렇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이름이 걸린 이상 그 정도의 값어치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그리고 다음 날, 그시절 한창 열심히 활동하던 SNS에 아는 오빠가 엔딩크레딧의 내 이름을 캡처해서 올려놓았다. 아래로는 '와~멋있다!!' 따위의 지인들의 댓글이 달렸다. '멋있긴 뭘 ㅎㅎ' 라며 아닌척 했지만 사실 너무 좋아서 며칠간 계속 그 사진을 꺼내봤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나의 에너지이자 엔돌핀이었다. 그 덕에 정말 열심히 일했다. 바보 같을 정도로.



애석하게도 엔딩크레딧의 힘은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일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솔직히 나중에는 방송도 안챙겨보게 되더라. (하하) 그래도 그 특별한 힘을 경험했던 건 다행이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지금도 알 수 없는 힘이 잠시나마 생겨나니까.

그래서 지금도 방송이나 영화를 보며 가끔 엔딩크레딧을 유심히 볼 때가 있다. 특히 각 분야마다 말단에 올라가는 저 이름들에게는 이 짧은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 순간일까. 미래의 그들을 만드는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될까 싶어서.



어쩌면 우리에겐 저마다 엔딩크레딧에 오르는 그런 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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