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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Oct 18. 2019

오롯이 슬퍼할 시간도 없는 일이라면

드라마를 포기하게 만든 결정적 메시지 



드라마 기획PD시절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몇몇 분들께 직업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 그분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 드라마 쪽 일이 노출이 많이 되는 것 같지만 의외로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관련된 사람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도 없다. 사실 나 역시 현 종사자가 아니기에 혹 잘못된 정보를 드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러워 내가 경험한 선에서만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드린다. 조금이라도 궁금증이 해소되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내가 선뜻 답하기가 어려웠던 질문이 한 가지 있다.

-일을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가 있으신가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말씀드릴게요.라고 넘겨버렸던 그 질문의 답을 이제야 글로 적어보려 한다.






이전에  너무나 사랑했던 나의 직업이 미치도록 싫어진 이유에 대해 고백했지만 그것이 일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니었다. 왜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일로 인해 싫어졌다고 해서 그게 바로 이별은 아니지 않은가. 미치도록 싫어지는 것 역시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거니까. 애정이 남아 있는 이상, 평생의 헤어짐을 택하는 건 몹시 괴로운 일이다. 특히 나처럼 걱정많고 우유부단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고.



나에게 기획PD라는 직업도 똑같았다. 아무리 미워지고 싫어졌어도 쉽게 끊어내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때때로 내가 드라마 일을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몇 편의 드라마를 더 진행했을까. 얼마나 재밌는 일이 많았을까. 

특히, 얼마 전 종영한 '멜로가 체질'처럼 내 마음을 뒤흔들 만큼 매력적인 드라마를 보게 되면 생각한다. 내가 드라마 일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났다면 어떻게든 버텼을까? 이런 작품을 함께 진행하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할까. 맞다. 나는 아주 징글맞은 구남친처럼 질척거리고 있다. 사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일종의 추억 팔이니까.

아주 예리한 독자분들은 눈치챘을 거다. 이 사람 엄청 미련 덩어리잖아? 혹시 첫사랑 아니야? 



아닌 척 못하겠다! 맞다. 나에게 이 직업은 첫사랑처럼 남아 있다. 게다가 그만둔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안 좋았던 기억이 많았지만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모든 남성들의 첫사랑이 수지처럼 생겼다는 착각이 만들어지는 거고 (음?) 아무튼 그렇게 사랑했던 일을 그만두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쉽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버린 결정적인 역할을 당시 나의 사수였던 Y가 해냈다.



아버지가 담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건 6개월이었지만 건강하셨던 만큼 병의 진행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8,90대 어르신 분들은 암이 말기여도 진행이 워낙 느려 그 상태로 몇 년을 살기도 하신다는데 50대였던 아버지는 암세포가 어찌나 무럭무럭 자라는지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악화되었다. 결국 병을 진단받고 2달 만에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그날은 매일매일 울어서 눈물도 나오지 않는 날이었다. 주치의는 준비를 해야겠다 알려왔고 나는 친척분들이나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분들께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시라 했다. 회사에도 오늘내일 출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상황을 설명드렸다. 환자가 위독한 상태가 되면 가족들은 슬픔에 빠질 틈도 없이 바빠진다. 인사 온 친지분들과 순서대로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장례 준비도 미리 해야 한다. 



그러던 와중에 Y가 핸드폰으로 메시질 보내왔다. Y의 메신저질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있다. 그녀는 늦은 밤, 새벽,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용무가 있으면 언제건 팀원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그녀의 메시지에 답장이 늦으면 사달이 났다. 나는 한시라도 아버지의 얼굴을 담아두고 싶은 그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그녀의 메시지를 확인했고 기가 막힌 상황을 맞이 했다. 



-안개야, 메일로 대본을 보냈는데 모니터 좀 해줄 수 있니? 



그 메시지만은 참을 수 없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때를 떠올려봐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침에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전화를 했는데 몇 시간 뒤에 모니터를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공감능력의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저런 말을 할 수 있다고? 혹시 위독의 뜻을 모르는 건가 의심했다. 그 편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서. 그치만 그럴리가 없지.

그리고 그날 종일 눈물이 나지 않았었는데 저 메시지 덕분에 눈물이 났다.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그녀는 이따금 드라마를 기획하는 사람인 우리는 24시간 일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 그런 마인드로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잘 알겠다.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그 비슷비슷한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이 한 몸 분골쇄신하여 신선하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사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겠다. 그래서 그동안 적은 월급과 긴 노동시간도 참아가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니까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2달 하고 보름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회사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한 시간씩 일찍 퇴근을 시켜줬고 나는 병원에 가야 하니 자연스레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래서 퇴근하기 전까지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해 일했다. 회사 입장에서 날 위한 배려가 쉬운 일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했고 그만큼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받고 나니 비로소 내가 이 회사에서 어떤 존재인지 실감이 났다.



그런 메시지를 보내온 Y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그제야 더 이상은 아니구나. 이 일을 오래 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부여잡고 있었던 끈이 탁, 끊어지는 느낌이었달까. 드라마 일이라는 게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일이라는 건 3년간의 생활을 통해 몸소 느끼고 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알려온 동료에게 그날, 굳이 대본 모니터를 요청해야 하는 일이라면 나 역시 평생 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며칠을 집에 못 들어가고, 때때로 작가 작업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걸레질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처절하게 힘든 시간조차 오롯이 슬퍼하지 못하고 일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절대 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지독한 첫사랑 같던 내 첫 번째 직업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였다. 

이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다시 그 후로 4개월이 지나 퇴사하게 되었다. 


나의 이 경험이 절대 일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나에게만 일어난 일일 수 있고 나에게만 혹독했던 시간이었을 수 있다. 어쨌든 결국 내가 졌다. 원래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라고 했는데 내가 그랬던 것 같다. 

드라마 기획 PD라는 내 직업을 너무 많이 좋아해서 내가 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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