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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Dec 09. 2019

나도 카페 사장님을 꿈꿨다

누구나 이런 로망 하나쯤은 있잖아요



누군가 직장에서 보내는 하루 동안의 낙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점심을 먹고 마시는 진하고 고소한 커피 한잔이라고 고민 없이 말할 것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성향이 비슷한 직장 동료들과 근처 카페로 투어를 다닌다. 오전 업무 시간은 이 시간을 기다리며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그렇게 반나절을 버텨내고, 만족스러운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에는 어김없이 내뱉는 말이 있다. 

-나도 카페 차리고 싶다.



정말이다.

나도 카페 사장님을 꿈꿨던 적이 있다.






대학생이라면 한 번씩 다 한다는 카페 알바를 했다. 음... 그러니까 벌써 약 10년 전에. 학교를 1년 휴학하고 놀던 중에 하게 된 알바였다. 그곳에서 커피의 매력보다는 카페의 매력에 눈을 떴다. 나는 카페에서 일했지만 아이스 유자차를 가장 좋아하던 일명 커.알.못이었다. 솔직히 내가 일하던 카페는 인간적으로 커피가 너무 맛없었다. 커알못이던 알바생에게 일주일 교육을 끝으로 커피 제조를 시킨 걸 보면 뭐 말 다했지. 



내가 알바를 하며 가장 즐거웠던 것은 손님들이 각자가 필요한 만큼 공간을 즐기다 가는 걸 지켜보는 일이었다.  매일같이 오픈 시간에 와서 출근 전 30분을 졸다가 가는 손님, 점심시간마다 밥 대신 샌드위치 세트를 먹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손님, 꼭 두 시간씩 공부를 하다 가는 손님 등등. 내 머릿속에 카페란 단순히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구나. 공간을 함께 팔고 있는 거구나.라고 처음으로 인식되었던 게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다행히 그런 카페에서의 알바 생활이 적성에 잘 맞아 8개월 정도를 일했다. 그만큼 길게 일한 알바는 처음이었다. 즐거웠다 카페에서 보내는 일상이. 아르바이트하면서 '내 가게처럼, 내 회사인 것처럼'이라는 마인드는 절대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달랐다. 주제넘을지 몰라도, 가게를 오는 손님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처럼 느껴지곤 했다.  



점점 맛있는 커피를 내놓고 싶어 지고 단골손님들에게 먼저 다가가 서비스를 내주는 일이 어색하지 않을 때 즈음, 복학이 가까워지며 카페 알바 신분도 끝이 났다. 이제 뭘 좀 알겠다 싶었는데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는 일이 홀가분하다기보다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였을까. 

첫 직장을 그만두고 도대체 뭘 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을 때, 커피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나의 가장 큰 꿈이었던 일을 그만두면서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을 때였다.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았고, 아이디어 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서포터로 끝나는 일도 싫었다. 그런데 하던 일이 아니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구직사이트에 들어가도 하고 싶은 일도 할 줄 아는 일도 없으니 어디부터 알아봐야 할지 막막했다. 드라마 말고 내가 즐겁게 했던 일이 무엇이었던가.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야 했다. 답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카페에서 일하던 8개월이 떠올랐다.



커피 혹은 카페 중독자일지도 모르겠다


절대 커피가 쉬울 것 같고 만만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첫 직장에서 실패했단 생각에 더욱 신중했다. 그때 나이가 스물일곱, 지금 보면 참 어리지만 당시엔 잘못 길을 들었다가 돌아가기엔 위험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부디 찾고 싶었다. 알바와 직업으로의 '카페'는 의미가 많이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체, 그저 노는 게 즐거운 것도 딱 3개월 가더라.



무작정 카페 창업반 수업을 찾아갔다. 너무 놀아서 그랬는지 '뭐든 안될 거야 난'의 땅파기 모드를 지나서 이젠 '뭘 해도 되겠지'라는 이상한 자신감과 패기가 좀 쩔어주던 시기다.

그냥 커피를 좀 배우고 이런 거 말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제대로 따고 싶었고 카페를 창업한다는 건 어떤 건지 알고 싶었다. 뭔가 다 건너뛰어버리고, 이왕 할 거면 폼나게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 

마침 눈에 띈 수업이 실제로 카페를 운영 중인 바리스타 사장님께 커피 강습뿐만 아니라 카페 창업에 관한 것들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말했지만 엄청난 패기가 하늘을 뚫어버릴 기세였기 때문에, 백수 주제에 바리스타 학원보다 비싼 2:1 수업을 덜컥 결제했다.  



첫날 수업에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이 수업은 카페 창업을 위한 수업인데 카페 차릴 돈이 있느냐고. (아마 딱 봐도 없어 보였겠지...?)  퇴직금이랑 결혼자금으로 모으고 있는 돈이 조금 있다고 쭈뼛거리며 대답했는데, 같이 수업을 듣게 된 21살의 남학생이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집이 좀 여유가 있어서요. 아버지가 차려주신대요. 

그때부터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그 친구를 나보다 더 신경 쓰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2년 전엔가 그 친구의 카톡 프로필을 보니,  꽤나 멋들어진 카페의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역시 금수저 만세다.






왜 첫 수업부터 돈 얘기를 해서 기를 죽일까 했는데 그게 그렇더라. 다 돈이더라. 정말 단순하게 임대료 보증금 정도에 기기, 잡기들 살 정도만 있으면 된다 생각했는데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고 이제 '카페 사장님'이 될 차례인가 싶었지만 당연히! 그게 아니었다. 카페 사장님은 바리스타 자격증만 딴다고 되는 게 아니었는데 나 정말 왜 그랬을까? 

 돈뿐만이 아니라 카페 사장님이 되기엔 모든 방면에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 배우면 배울수록 뭣도 모르고 설쳐댔음을 인정해야 했다.



다행히 저 우주 밖으로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먼저 카페에 취업을 해서 돈도 더 모으고 배우며 준비를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당시 공고에 뜨는 바리스타 정규직 월급은 100-130 정도. 근무시간은 일 10시간 이상에 휴무는 한 달에 4일. 내가 3년 전의 열정 충만 사회초년생이었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못 쉬고 못 받고 일하는 거엔 질릴 대로 질린 사람이었다. 이제는 선뜻하고 싶다고 재밌겠다며 '일단 해보자.'가 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싶겠지만 자꾸만 머뭇거리게 되고 뒷걸음질 치게 되더라고.



그러던 중, 나에게 손 내민 회사 중 한 곳이 지금 회사다. 백수 생활이 6개월에 접어들 무렵, 이것도 아니라면 더 이상은 뭘 해야 할지 답도 안 나오던 시기였다.

내 청춘을 모험에 걸어볼 용기가 없던 나는 몇 달간 허황된 꿈을 꾼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향긋한 커피 향이 있고 나의 감성을 공유하는 근사한 공간에서, 손님들이 공감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꿈. 대신 주 5일 일하고 주말은 쉬고 연차 써서 여행을 갈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택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던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내는 일을 또 하겠다며 말이다. 내가 잘하는 일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변명의 여지없이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한 거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직장인 1로 돌아갔다.







사진은 잘 못찍지만 좋아합니다 카페  



지금 나의 SNS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사진은 카페에 방문해 찍은 사진들이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담기도, 포슬 한 우유 거품이 한가득 얹어진 라떼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아니면 그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이의 사진일 수도. 그렇게 여전히 나는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을 사랑한다. 

주말에는 하루에 카페를 3군데 이상 가기도 하고 외국에 여행을 가서 빠질 수 없는 일도 카페 투어이다. 아이스 유자차를 사랑하던 커알못에서 벗어나,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커피맛이 뭔지는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내 맘에  쏙 드는 카페를 만나면 그곳의 사장님이 참 부럽다. 막연한 동경의 감정이다. 카페 사장님이라고 하면 있어 보이니까? 돈 많이 벌 것 같아서? 아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으나 보통의) 카페 사장님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하고 모든 것을 쏟아붓는지 안다. 그래서 내 눈엔 참 용기 있고 대단해 보인다. 나는 뒷걸음질 치고만 꿈으로 남겨둔 일을 해낸 사람들이니까. 



그들 덕분에 나는 좋은 공간에서 맛 좋은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고 그것이 내 일상에서 얼마나 큰 에너지가 되는지 모른다. 평범한 직장인 1은 앞으로도 카페 사장님이라는 로망은 이루지 못할 테니, 그저 오늘도 커피 한 잔의 행복은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살자는 다짐을 할 뿐이다.



오늘은 오전부터 이래저래 하도 치여서 그런가. 달달할 바닐라라떼가 당긴다. 

얼른 이 답답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커피 향 가득한 공간으로 들어서고 싶다. 

내 것은 아니더라도 여전한 내 로망의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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