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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Nov 18. 2019

우린 제법 안 어울려요

대표와 직원 사이는 원래 이런가요?



살다 보면 어떻게 해도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당연하다. 어떻게 100% 맞는 사람만 곁에 있겠는가. 한 집에 사는 사람과도 맞지 않는 게 수십 가지는 되는데. 그렇다고 100% 안 맞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일하는 스타일이 안 맞아도 식습관이 비슷한 사람이 있고,  말하는 방법은 맞지 않아도 유머 코드는 맞는 다든지... 어떻게든 맞추려면 하나 정도는 맞는 게 있더라. 회사에서도 그렇다. 나와는 다른 한 명, 한 명과 맞는 것들을 하나씩 발견해가며 서로 이해하면서 지내는 것.

그런 상대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아마도 무탈한 회사 생활을 만드는 것이겠지.


그걸 잘 알면서도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되는 한 사람이 있다.

몇 년간을 노력해봐도 나와는 도무지 맞지 않는 한 사람 말이다.






며칠 전, 대표님의 호출이 있었다

일단 대표님이 호출하면 몹시 불안하고 초조하다. 보통 아주 빡센 일정의 프로젝트를 맡길 때, 연봉 동결, 직원 해고 등 무리하고 무리한 요구들을 하실 때만 호출을 해오시니까.  특히나 독대는 더. 오늘은 또 어떤 요구를 하시려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대표실로 들어섰다.


나 떨고 있니?



-아무래도 안개 팀장이 솔직하게 말해주겠다 싶어서.


나한테 궁금한 게 있으시단다. 듣자 하니, 몇 시간 전 직원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나온 농담이 문제였다. 대표님께서 평소 장모님과 통화할 때, 본인이 이야기를 좀 시작하려고 하면 장모님이 전화를 끊어버린다는 말씀을 하셨다. 거기에 누군가 "대표님 말씀이 좀 많으시잖아요."라는 말을 했고 모두 수긍하며 웃어넘겼다. 대표님도 분명 웃어넘기셨는데.... 내 착각이었나 보다. 우리에겐 대표님의 그런 이미지가 너무나 당연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그렇지 않다는 걸 미처 몰랐다.

적잖이 충격받은 얼굴과 진지한 어투로 직원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어 오셨다. 그동안 본인은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불편해할까 봐 말씀을 아끼셨는데 말이 많다는 소리를 들으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단다.



1분 정도 정적이 흘렀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찌 됐든 간에 불편한 이야기일 텐데 왜 하필 나지? 싶어서.

흑흑. 정말이지 도망가고 싶었다. 



이 문제는 사실 대표님이 순수하게 '말이 많기 때문에'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통 직원들이 대표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할 때는 무언가 요구하는 바가 있는 때이다. 대표님과 노가리 까면서 친해지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내 업무에 대한 대표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서도 아니다. 혼자 고민하고 다른 직원들과 논의하는 걸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이제 더 못 참겠다 싶을 때 대표님을 찾는다. 나서는 두 손에는 꾸깃한 해결책이라도 쥐어주길 바라면서-



그런데 우리 대표님은 그 대화가 갖는 의미를 잘 모르고 계신다. 더불어 직원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대답을 원해서 앞에 앉아 있는지도. 대표님은 그 자리에서  늘 본인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만 하신다.

예를 들어, 나에게 연봉 동결에 대해 통보하셨을 때의 이야기다. 그저 회사 사정이 이러해서 어쩔 수 없이 결정하게 되었다. 이해를 바라고 내년 매출은 이런 방식으로 얼마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때 충분히 보상하겠다. 이 말이면 되었을 거다. 어차피 회사 사정 안 좋은 거 뻔히 아는 상황에서 나도 직원으로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는데 뭐라 더 말하겠는가.

그러나 대표님은 그 대신, 그간 본인의 노력을 몰라주는 직원들에 대한 서운함을 늘어놓으셨다.


첫째, 직원들이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뒤엔 본인의 엄청난 노력이 있다.

둘째,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월급 밀려본 적이 없다. 아마 하루만 월급이 밀려도 다들 찾아와서 난리를 칠 거다. 그게 나로서는 참 서운하다.

셋째, 나는 회사 대출 때문에 개인 돈까지 끌어다가 썼다. 법인 회사니 그럴 책임은 없는데 직원들 위해서 그렇게까지 한다. 그런데 직원들은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누구 하나 먼저 와서 "이번 달 월급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하는 사람이 없다.


이게 바로 연봉동결을 통보하는 대표님의 입장이었다.

그 덕에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래. 회사가 어려우니 어쩌겠어. 연봉이 동결이더라도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결심을 어렵게 했다가도, 대체 내가 뭔 생각을 한 거야. 고개를 저어 버리고 말았다.



저건 어디까지나 철저히 대표님 입장에서의 이야기가 아닌가.  나도 직원 입장에서 따져보자면 직원들이 한 달 동안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내 한 몸 불살라가며 일하는 이유가 다 돈인데, 그렇게 일해서 월급 받아가는 것이 어째서 당연한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표님이야 월급 하루 밀려도 버틸만한 돈이 있겠지만 우리는 다들 집 대출금에 카드값에 월급 들어오자마자 퍼가요~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생계가 걸린 일이니 난리가 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물며 먼저 와서 월급 반납하는 직원이 없다고 서운해하시다니!

... 대체 직원들에게 뭘 그렇게 바라시는 거예요...?

제 입장에선 아무렇지 않게 저렇게 말씀하시는 대표님이 더 서운한데요?



게다가 대표님은 저 이야기를 아주 자주, 무기로 사용하신다. 나만해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니까.

특히나 주로 대표님이 불리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저 무기는 종종 소환되곤 한다.






이때다 싶었고 대표님도 직원들이 생각하는 본인에 대해 궁금해하시니 말씀드려야겠다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내 생각에) 최대한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나를 포함한 직원들이 생각하는 대표님과의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 대표님은 아무래도 대표님 입장에서 얘기를 하시니까요. 직원들이 대표님을 찾아갈 땐 사실 어렵게 결심하고 문을 두드리거든요. 내 얘기를 좀 들어달라. 좀 바꾸어달라. 그런데 그런자리에서도 대표님 입장에서의 이야기만 듣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직원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입을 떼기 전, 속으로 이렇게 말을 해도 될까. 열 번 정도 고민하며 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대표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거였구나.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겠다.


솔직히 놀랐다. 이 부분만 좀 고쳐주셔도 직원들과의 소통이나 갈등 문제에 있어 훨씬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순간엔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 마냥 '이제 됐다!' 싶었다. 드디어 대표님과 우리가 통하는구나! 불가능한 게 아녔구나. 잠시 들떴다.

.

.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대표님은 곧이어 본인이 왜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역시나 또! 대표의 입장에서 설명을 시작하셨다.



그러니까요. 이런 게 바로 말씀드린 '대표님'과 '우리'의 문제라는 건데요.

방금 알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뭐였죠...

그렇다. 내가 간과한 게 있다. 대표님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하셨지 고치겠다고는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30분이면 될 거라던 자리는 두 시간 동안 이어졌고 마지막엔 또 그 무기를 꺼내셨다. 

'나는 지금까지 월급 한번 밀려본 적이 없고... 회사 빚 때문에 주머니도 털어야 했고, 월급도 많이 안 받아 갔다. (결론) 근데 회사 어렵다고 아무도 월급 한 번을 반납하지 않더라.'


대표님...제발...제발요!


제발.... 그만요. 제가 졌어요!

그게 문제라고 말씀드린 자리에서도 저 얘길 하시다니.

하아. 벽을 보고 이야기해도 이것보단 답답하지 않겠지.

더 이상 어떤 화제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지조차 상실했다. 퇴근 시간은 훌쩍 넘었고 우선 배가 너무 고팠다.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대표실 문을 열고 나오니, 모두 퇴근하고 텅 비어 있는 사무실이 나를 반겼다. 있는 대로 기가 빨려 자리로 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대표님을 이해할 수 없다. 대표님과 나의 생각은 1도 맞지 않는다.

대표님은 절대로 직원을 이해할 수 없고 나 역시 대표님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

그 수평선을 인정하고 각자 길을 가기로 한다.



다만! 그 간극이 너무 커지는 것 같다면 안 듣는다하셔도 할 말은 해야겠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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