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무겁고 참 어려운 마음
어제 우리 회사의 유일한 워킹맘 C팀장이 퇴사했다. 그녀는 이 회사에서 7년을 일했고 그중 3년을 워킹맘으로 버텨왔다. ‘버텨왔다.’라는 말이 꼭 맞았다.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그녀를 지켜보면서 깨달았으니까.
내가 이 회사를 다니는 중에 육아휴직을 쓴 여직원을 본 건 딱 두 명이다. 한 명은 복직한 지 1년 만에 둘째를 갖게 되면서 퇴사했고 남은 한 명이 바로 C팀장이다. 올해로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지 3년이 된 그녀는 옆팀에서 아래 4명의 팀원을 두고 있다.
그녀의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 덧붙이자면, 그녀의 집은 회사와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이다. 매일 왕복 약 3시간을 출퇴근에 할애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출근하는 걸 좋아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내 주변의 워킹맘들이 대부분 하는 말과 같은 말을 했다. 아무리 회사 일이 힘들고 스트레스받아도 집에서 육아하는 것보다 덜 힘들다고. 주말 동안 오롯이 육아를 하다 보면 월요일 아침이 오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지방에서 근무하는 주말부부였지만 다행히 한 동네에 사는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기 때문에 회사의 다른 맞벌이 부부보다 그나마 나은 케이스였다. 덕분에 그녀는 야근도 빼지 않았고 한 번씩 발생하는 주말 근무도 했다. 회식도 절대 빠지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집안 살림과 육아, 회사 업무를 함께 해왔고 그 와중에 아이는 쑥쑥 잘 컸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생겼다. 그녀의 친정 엄마가 건강상의 이유로 돌봄시간 단축을 요청해온 것이다. 희한했다. 근무시간을 줄인 건 그녀의 어머니였는데 그녀의 삶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잘 유지되는 것 같이 보이던 살림-육아-회사의 밸런스는 사실 그녀가 아닌, 그녀의 어머니가 쥐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녀는 출근 전에 직접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고 1시간 늦은 출근을 회사에 요청했다. 회사에선 다행히, 혹은 당연히 OK 했다.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팀원들은 오히려 위로를 건넸고 그렇게 C팀장은 오전에 한 시간을 늦게 출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 팀의 팀원들은 그날그날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자기들끼리 나눠야 했다. 업무 분장과 프로젝트 디렉팅이 팀장의 1차적인 역할인데 이게 되지 않으니 점차 삐걱거림이 시작됐다. 사실 그것이 팀장의 1시간 늦은 출근 때문에 꼭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지는 팀이 다른 나는 속속들이 알 수 없었다.
게다가 C팀장은 그 1시간 외에도 자주 늦을 일이 생겼다. 아이가 아파서 어머니가 아파서, 어린이 집에 가봐야 해서 등등 그녀는 점점 30분 더 늦거나 1시간 일찍 퇴근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녀의 팀원들은 팀장이 해야 할 일이 자신들에게 전가된다고 생각했을 거다. 나부터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녀와 이야기할 문제들을 그 팀원들에게 이야기해야 했고, 그녀가 나와 함께 가면 될 미팅도 팀원에게 요청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상황들이 발생하면서 C팀장의 팀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구나. 불만이 쌓여가고 있구나.
내 눈에도 보이고 내 귀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업무는 점점 바빠졌고 그럴수록 사무실의 공기도 점점 답답해졌다.
한 번은 그녀의 팀원들과 함께 밥을 먹는 중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
"우리 회사는 아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참 좋은 회사인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였겠지만 한탄이 묻어나는 말도 뒤를 이었다.
"(결혼도 안 했는데) 아이를 나을 수도 없고..."
이 말에 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는 이 말을 이따금씩 되새기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하게 되는 생각이 달라진다. 어느 날은 그게 당연한 것 아닐까.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다니기 좋아야 하는 회사인 게. 맞벌이가 대부분이고 아이를 낳지 않는 요즘 시대에, 이런 배려마저 없다면 어떻게 아이를 낳고 키우겠는가.
그러나 또 어느 날은 그 배려가 다른 사람들에겐 피해라면? 내가 저 팀원들 입장이었어도 참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나는 저 자리에서도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게 참 어려운 문제라서...라며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모두 경험이 없던 탓일까. 우리는 모두의 불편이나 상처를 줄이는 방법을 만들어가는 것에 미숙했다. 간부들이 C팀장에 대한 배려를 해줌과 동시에 팀원들이 놓인 시스템도 세심하게 살펴보았어야 했다. C팀장도 자신의 잦은 부재로 인해 팀원들이 가지게 될 짐들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했고, 또 최대한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았어야 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타 부서의 사람들도 그 짐을 나눠가질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명백하게 우리 모두의 불찰이다.
그렇게 시간은 꾸역꾸역 어떻게든 흘러갔으나 C팀장은 결국 회사를 관두게 되었다. 사실 저 상태로 어떻게든 유지하려 했다면 했을 것이다. 심하게 삐걱거리고 갈등은 있었겠지만 밖으로 분출되지는 않았을 거다.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불편했지만 그걸 감수해야 한다는 건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녀의 상황이 더 안 좋아져서 두 달 정도 1시간 늦은 출근과 더불어 1시간 빠른 퇴근을 회사에 요청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절당했다. 더불어 회사에서는 더 이상의 편의를 봐주는 건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
그녀는 나에게 회사를 나가겠다고 했지만 이를 꼭 자발적인 퇴사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이런 이유로 퇴사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씁쓸해했고.
나는 더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그녀의 퇴사 사유가 '아이 엄마'이기 때문은 아니지만 결국, 아이 엄마여서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통 워킹맘들이 3년을 넘기기가 어렵다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보란듯이 이 시기를 넘기고 싶었는데 결국 자신도 그 3년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고...
어제는 그녀가 떠나고, 오늘은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 누군가의 빈자리는 늘 그렇게 쉽게 채워진다.
그걸 지켜보는 나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를 생각하는 착한 마음, 그런 건 아니다. 이제 이 회사에 남은 기혼 여직원은 나뿐이라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 현재 출산 계획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유일한 기혼 여직원이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다.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뒤의 일들이 뻔해서 마음이 무겁고, 낳지 않더라도 이제는 이곳에 얼마나 더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또 마음이 무겁다. 20대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감히 헤아릴 수도 없던 마음이다.
그녀에게 퇴사 선물로 새빨간 색의 립스틱을 건넸다. 그것도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로.
내 기억에 그녀가 아이를 낳기 전에 자주 바르던 색과 비슷했다. 당분간은 쉬면서 이거 바르고 좋은 데 많이 다니라며 쪽지도 함께 썼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녀의 뒷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분명 그녀는 홀가분하다고 송별회도 신나게 즐기고 갔는데 괜히 내 마음이 그렇다. 그리고 짧게는 몇 달 뒤, 길게는 몇 년 뒤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제발 내 뒷모습은 부디 깨발랄하고 유쾌하게 기억된다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