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 Oct 23. 2019

간식이 곧 복지다

대표님만 모르는 간식의 중요성



한창 퇴사병에 걸려 회사를 알아보면서 놀란 것 중 하나가 바로 회사의 '간식무한제공'이다.  많은 회사들이 직원 복지 차원에서 다양하게 간식을 제공하고 있었고 그걸 자랑스럽게 어필했다. 예전에는 사실 커피 머신 구비 정도만 해도 괜찮은데? 라는 반응이었는데, 지금은 사내 바리스타가 상주해 있는 곳도 많은 바야흐로 커피 대한민국 시대. 커피 머신은 복지 축에 끼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살펴보니 과자종류는 물론이고 컵라면까지 무한제공하는 회사도 많고 아예 편의점 처럼 잘 차려진 간식바를 마련해두는 회사도 있었다. 게다가 월요일은 스타벅스 데이라고 해서 회사에서 스타벅스 카드를 충전해주는 곳도 있더라.  이 회사 밖에는 참 아름다운 세상이 있구나. 나만 모르고 살았네.






한마디로, 우리 회사 대표님은 간식에 인색하다. 아마 대표님은 이게 문제라는 생각조차 인지해본 적 없으시겠지만 이게 회사 내에서는 꽤 예민한 문제다. 대표님만 모르는...


이런건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처음 이 회사로 이직을 하고 가장 당황했던 건 사무실에 간식이 없다는 거였다. 아니. 먹을 게 준비되어 있지 않다니. 그럼 오후 네시쯤 배가 고플 땐 어떻게 해야되지? 아무리 점심을 배부르게 먹어도 그시간이 되면 배꼽시계가 울리는데. 근로자의 배꼽 시계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뉘는 게 아니다. 

아침-간식-점심-간식-저녁 이렇게 울린다구. 다들 그런 거 아냐?

회사 동료들의 배꼽시계도 사정은 비슷한 것 같았다. 당 떨어진다 싶을 때 즈음, 각자 서랍에서 낱개 포장된 초콜릿, 씨리얼바 등을 꺼내 먹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바야흐로 회사에 적응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도 무료제공이 되는 녹차를 마시면서 (그땐 커피 머신도 없었고 손님 대접 용으로 녹차와 둥글레차만 있었다.) 이 회사는 왜 간식을 하나도 사두지 않는지 이상하다고 하니 옆 직원이 한숨을 푹 쉬며 한 마디 했다.



"간식을 구비해둔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아침을 안먹고 와서 간식을 먹는다고 대표님이 없애버렸어요."

오 마이 갓. 

회사에 간식이 없는 이유가 이거였다니. 우리 회사가 무슨 몇백명이 있는 회사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점심 전에 배가 좀 고파서 간식을 까먹었다고 간식을 없애버렸다니. 하물며 직원들이 초코파이 하나 먹겠다고 일부러 아침을 안먹고 왔겠는가. 허- 기가 찼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대표님은 간식제공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애초에 간식제공은 회사가 해줄 필요 없다는 거였다. 직원들의 업무에 정당한 댓가를 월급으로 치르고 있고 간식이 복지라면 굳이 그 복지는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사실 틀린말은 아니다. '굳이' '꼭' 제공해야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굳이' 제공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 있다. 



사람이 참...쪼잔해진다. 

동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 정말 왜이렇게 쪼잔해지냐. 저 이렇게 쪼잔한 사람아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회사에 간식이 없으니 기본적으로 먹고 싶은 사람들이 사서 먹어야 한다. 물론 아주 착실히 그렇게 하고 있다. 각자 허기를 달래줄만한 한입거리의 간식들을 저마다의 보물 창고 안에 둔다. 그런데 이것도 질릴 때가 있고, 이걸로 부족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적막한 사무실에 타자치는 소리만 흐를 정도로 서로 대화도 없이 바쁘게 일하는 중에, 함께 둘러 앉아서 갖는 티타임이 필요한 때! 사무실 공기를 바꾸는 릴렉싱이 필요한 때 말이다. 



이런게 필요한 타이밍



그래서 한번씩 누군가 나서서 간식을 쏜다. 근처 파리 빵집에서 빵을 사오기도 하고 떡볶이를 배달시키기도 한다. 옆 건물 피잣집은 포장하면 20%할인 되니까 직접 가서 들고 오기도 하고... 이외에도 본인 먹을 것만 사기 그러니까 같이 나눠먹을 수 있게 넉넉한 양을 사서 나눠주는 일이 많다. 그런데 이 누군가에 대표님은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대표님은 본인은 간식을 사오지 않지만 직원들이 사온 간식은 잘 드신다. 아주 차암, 잘!! 드신다. 

그러면서 어쩌다 간식 좀 쏘세요! 하고 농담을 건네면 극도로 정색을 하신다.

본인은 아닌 척 하시지만 진짜로 화내시는 거란 걸 이제는 다들 안다.

예전에 회사 워크샵 가는 길에 신입 직원 하나가 음료수 사달라고 했다가 '내가 왜 음료수를 사야하냐.'며 극대노하셨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있을 정도니까.



물론 우리도 당연히, 대표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다. 헬조선, 헬조선 하는 이 시대에 엉덩이 깔고 앉아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건. 그래, 참 고마운 일이다. 월급 밀리지 않고 나와서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보고 싶은 영화도 보고 예쁜 옷도 사입을 수 있는 것,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니까 우리 코 묻은 돈으로 산 간식을 대표님이 드시는 것 정도야 괜찮지.........가 않다. 안 괜찮더라.



직원들이 돈이 많아서 간식을 공중에 흩뿌리는 게 아니다. 다들 아는 거다. 내가 당 떨어지고 내가 배고파서 일에 집중이 안되는 만큼 내 동료들도 그렇겠지. 하나만 사서 나만 먹으면 편하지만 그래도 동료들이랑 같이 먹으면서 그럴 때 시간내서 서로 소통하고 격려한다. 저마다 용돈 아끼고 생활비 아껴서 그런 시간을 사고 선물하는 거다.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흑) 그런데 대표님의 내가 준 월급으로 사온 간식이니까 나는 간식을 사지 않아도 마음 껏 먹어도 된다는 마인드가 직원들로서는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게 맞다. 






회사에서 자주 이런 말들이 오고 간다.

제가 사온 간식, 대표님이 드시는 게 싫어요. 

이게 되게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사람 마음이 안그래요. 이런 생각하는 제가 너무 쪼잔한 것 같고...

근데 사실 우리가 사온 간식 10번 드시면 한 번쯤은 사셔도 되잖아요?



하다 못해 이제는 대표님 계실 땐 간식을 꺼내놓지 않는 직원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지켜봐온 나역시 다르지 않다. 연차나 직급으로 따지면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는 직원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대표님께 드리는 간식 아까워 하지 말라고 해야 되는 데, 나조차 그게 되지 않아 괴롭다.

누군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별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고작 그런 일로? 간식 때문에? 

그치만 함께 일하는 회사에서 '고작 그런 일'로 없어도될 갈등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간식은 단순히 직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 차원에서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을 투자해 직원들의 사기나 일의 효율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회사내 갈등을 줄여주고 소통 수단이 되어주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다! 그걸 알기에 많은 회사들이 '간식무한제공'을 복지로 어필하고 있는 걸 테고. 그런 복지를 누리고 있는 분들이 승자!...아니, 진심으로 부럽다. 

간식은 그야말로 회사에서 꼭 필요한 복지다. 




>> 우리 대표님께 누가 좀 알려줘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만 어려운 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