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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Oct 07. 2019

나에게만 어려운 퇴사

하마터면 퇴사할 뻔했다.

 

하마터면 퇴사할 뻔했다. 

정말 그랬다. 나의 퇴사병은 지체의 시간도 없이 단숨에 손쓸 수 없게 진행되었고 이미 내 머릿속은 퇴사 후 치앙마이에 가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익숙해질 집 앞의 수영장과 썬배드, 감성 돋는 카페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아마 그곳이 천국일 거라 생각했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한 달 살기, 좋네요. 좋은데요...그 뒤는요? 뭐하고 뭐 먹고 살 거예요?



음. (해맑게)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요? 





나는 걱정이 많고 계획적이며 부지런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충동적으로 퇴사를 결정할 연차도 나이도 아니며, 앞으로의 계획도 없이 안정된 월급을 뿌리칠 수 있는 금수저도 아니다. 그런 내가 퇴사병에 걸려 눈이 멀었다. 어찌나 시야가 좁아졌는지 퇴사의 몹시 아름다운 면만을 보고 그 뒷감당은 살펴보질 않았다. 그만큼 질려있었던 것 같다. 한 회사에서 6년 차가 된다는 것은 꽤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니까. 예전 부모님 세대에서야 평생직장이 최고였지만, 직장도 쇼핑한다는 요즘 세대에겐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도 모를 구태의연한 말이 되어버렸다. 이직을 하지 않고 한 회사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을 무능력하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렇다.



회사에서 고인물이 되어가는 만큼, 쌓여온 불만도 화석처럼 단단해졌고 이를 스스로 녹이기에는 이래저래 많은 풍파를 겪어버렸다. 솔직히 말해  녹이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다고 할까. 회사를 바꿀 수 없으면 내가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봐온 회사는 작은 회사임에도 유연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고용 정책이나 연봉 정책을 고수했고 실패로 돌아간 작년의 정리해고 사태까지. 티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엔 회사에 대한 불신이 컸다. 이러니 시기 적절히 찾아온 퇴사병에 데미지가 몹시 큰 것일 테고.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퇴사만이 살길' 을 외치던 나에게 잠시 틈이 되어준 것은 (이전 글에서 썼듯) 나의 오랜 고질병, 결정장애였다. 마지막 단계인 대표님을 소환하기에 앞서, 마침내 결정장애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찰나의 머뭇거림이 찾아왔고 그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역시, 돈 앞에서는 집나갔던 현실감각도 돌아올 수밖에 없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정신이 번쩍 듭디다 


우리는 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인지라 내가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를 곪아 죽을 일은 없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당장 나가야 하는 적금들부터 올 스톱,  줄줄이 나가는 카드값, 보험은 퇴직금으로 막아야 하겠지. 그렇게 계산해보니 퇴직금으로는 몇 달 버티기 힘들겠단 결론이 선다. 몇 년을 일하며 차곡차곡 쌓아온 퇴직금이 이렇게 허무하다니. 슬프다. 이런 슬픔 없이 퇴사하려면 아무래도 이직을 알아봐야겠는데? 돈 앞에서 작아지고 돈 앞에서 그제야 이직이라는 선택지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구인구직의 필수템, 사람안 사이트에 몇년 만에 접속하니 휴면 상태란다. 그만큼 오래 접속을 안 했다니.  나 지금 회사에서 정말 딴생각 안 하고 일했구나 싶다. 이제 내 이력서도 업데이트를 해야 했고 이직할만한 회사가 있을지 알아봐야 했다. 그동안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첫 회사를 첫 지원, 첫 면접으로 붙어서 다녔고 지금 회사는 올려둔 이력서를 보고 대표님께 오퍼가 왔던 케이스였다. 다른 또래들보다 사람안과의 인연이 많지 않아서인지 화면을 가득 채운 채용 공고들이 낯설기 짝이 없다. 



처음엔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로 찾아본다. 아무래도 자신 있는 분야니까. 경력도 살릴 수 있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겠지 싶다. 이쪽 수요가 많지 않다고는 들어서 걱정했는데 몇 개 안되긴 하지만 그래도 공고가 있긴 하다. 

그런데 뭐지? 

대부분 원하는 경력이 2년~5년, 대리급, 물론 연봉도 그에 준하는 수준이 걸려 있다. 내 총경력은 9년이다. 햇수로는 10년 차. 세상에! 나 언제 이렇게 나이 먹었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경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어느덧 나는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받기는 부담스러운 나이와 경력을 갖고 있었다. 이때부터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왜 진작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지. 취업에 관해서는 정말 세상 물정 몰랐다. 아, 당장 내일 대표님께 그만둔다고 말하겠다 마음먹었는데.

아니야. 그거 아니야.



... 나 아무래도 주제넘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며칠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다행히 나와 맞는 공고를 찾았다. 팀장급을 찾고 있었고 원하는 업무 능력이나 경력도 얼추 맞았다. 지금 회사보다 규모도 크고 안정적인 회사를 가고 싶었는데 그 조건도 합격이다. 드디어, 우리 만날 수 있는 거니? 마지막 관문. 설레는 마음으로 기업 리뷰 사이트에 접속한다. 



그런데 지쟈스... 일단 리뷰 수가 너무 많았다. 내가 본 회사들 중 리뷰 수가 단연코 가장 많았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그만큼 나간 직원들이 많고 퇴사한 마당에 이 사이트에  접속해 굳이 나쁜 리뷰를 적을 정도로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거다. 얼씨구. 온갖 크기의 '화'가 묻어나는 리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대표님은 종일 배부르시겠다. 이렇게 많은 욕을 먹는 게 가능하다니-

이걸 모두 믿겠다는 건 아니지만 일단 공통적으로 나오는 의견들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야근을 위한 야근이 많다. 사내 정치질이 심하다. 보고 배울 윗선의 부재. 연차 사용 제한]

물론 장점도 있었지만 장점을 다 묻어버리는 단점들이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이럴 거면 내가 이직을 할 이유가 없는데요? 



여기만 그런 거였음 다행인데 - 어째 찾아보는 곳마다, 면접 제의가 오는 기업마다 사정은 비슷했다. 연봉을 낮추든지 칼퇴와 휴가를 포기하든지... 다 괜찮다 싶으면 계약직 조건이었다. 지금도 사실 돈이 불만인데 이보다 더 눈을 낮춰야 한다니. 퇴사의 의미가 없다. 결국 내가 갈 수 있는 회사는 이 정도인 건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같은 자리에서 회사만 열심히 다니며 나이를 먹어간 내 잘못이다. 



꿈은 꿈으로...저 멀리... 



그렇게 2주 정도를 틈만 나면 사람 땡에 들어가 기웃거렸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잠들기 전, 양 대신 그려보던 치앙마이에서의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야외수영장.... 썬배드... 감성 카페... 한 달 살기 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일상은 역시 꿈이었나 보다. 치앙마이가 안되면 어떻게 제주도라도! 그것도 무리라면... 뭐. 가평의 펜션이라도. 에라이.



그래도 용기를 내어 대표님과의 면담을 신청하기는 했다. 하기는 했는데 이런 마음가짐으로 갔으니... 제대로 협상이나 대화가 됐을 리 없다. 결심이 굳은 얼굴로 "퇴사하겠습니다!" 선언해야 대표님도 '오호. 이 녀석 봐라.' 하는 건데 나는 그렇게 쭈굴쭈굴할 수 없었다. "저 사실, 이러한 이유로 퇴사까지 생각했습니다."라고, 말을 뱉어 버렸고 그러니 어쩐지 그 자리는 그간 마음고생 심했던 나의 고민 상담 자리처럼 되어 버렸다. 네가 그동안 힘들었구나? 오구오구. 알았어 알았어. 앞으로는 좀 고쳐나가 보자. 그럼 됐지?



물론 그 뒤로 한 달이 된 지금까지 변한 거라곤 그날의 징징거림에 대한 보복성인가? 싶을 만큼 일이 몰려 야근과 주말근무까지 해야 했다는 것 외에는 없다. 똑같다. 같은 이유로 스트레스받고 여전히 나는 당장 사직서를 내던지고 치앙마이로 뜨고 싶다. 다만 지금은 알고 있다. 퇴사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회사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든 길은 있겠지만 그전에 날카로운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로 했다. 



환절기에 감기가 유행하는 것 처럼, 퇴사병도 유행할 때가 있다. 유행이니까 한번 해봄직한데? 싶겠지만 명심하자. 나처럼 계산기 두드려보고, 사람안 훔쳐보고 조용히 눈물만 훔치게 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당장에 가시밭길을 걸어나갈 용기나 튼튼한 발이 되어줄 경쟁력이 없었다. 이것만 있다면야.  why not?

그렇게 나는 하마터면 퇴사할 뻔했으나 용한 명의를 만나, 퇴사병에서 잠시 벗어났다. 나의 현 위치를 파악하다 보니 절로 병이 낫는 기적을 만난 거다. 퇴사하겠다며 혼자 난리부르스를 추고는 얼마 못가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조금 낯 부끄럽다. 이럴 거면서 왜 그랬대...


 

그러나 이 병은 재발이 무척 쉽다. 

언제 또 퇴사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를지 모르고, 그땐 정말 앞뒤 재지도 않고 떠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를 대비해 좀 더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굳이 예고된 가시밭길을 걸어 나가지 않고 초고속으로 꽃길까지 도달할 수 있게, 세그웨이;;같은 거라도 비장의 무기로 갖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 그날이 오긴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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