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악화가 빠른게 특징입니다
퇴사를 생각했다. 열흘 전까지 말이다. 벌써 지금 회사를 6년째 다니고 있었고 점점 쌓이는 불만을 억누르는데 한계가 왔다. 이전에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술 한잔으로, 맛집 투어, 여행으로 풀어내고 말았는데 머리가 커가는 만큼 인내심은 줄어드는지. 어느덧 오늘은 어제보다 퇴사욕구가 1 더해지고 다음날 또 1이 더해지는, 뺄셈은 없고 덧셈만 줄줄이 계속되는 공식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퇴사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발병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처우의 문제였다. 뭐 쉽게 말해 '돈'이었는데 회사 사정 뻔히 알고 있으니 월급이 적은게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호봉제인 연봉체계가 불만이었다. 열심히 일했고 그에 따라 성과도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들이 반영되지 않는 연봉체계 때문에 일에 대한 의욕이 점점 사라졌다. 나는 사실 명예욕이 큰 사람이다. 그러니까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굉장히 크고 그걸 동력으로 일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데 고객들에게 인정받고 회사에서도 아무리 잘한다 잘한다 해도 연차대로 똑같이 받는 연봉체계로는 내 욕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는 거다.
그러다보니 내 멋대로 저 사람은 자리만 지키고 돈을 받아가는 사람이라는 버릇없는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고 프로젝트를 잘 해주어 고맙다는 클라이언트의 인사도 더이상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뭐해. 자리만 지켜도 받는 돈은 같을 텐데. 이런 못난 생각이 결국 자꾸만 더 잘하고 싶은, 일 욕심 많은 나와 충돌을 일으켰고 그런 순간 순간이 스트레스로 몸집을 불려갔다. 이러다보니 정말 별 것 아닌 것도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이유로 둔갑해버리곤 했다. 이를테면 이전에는 그냥 웃어 넘기던 대표님의 말 한마디에도 정색을 하게 되고 동료들의 실수에도 예민해졌다. 이게 아마도 초기 증상이이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좀 멋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순간에 내 눈에 띈 건 브런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퇴사 에세이. 나의 퇴사병 증세를 다이렉트로 중증에 이르게 한다. 정말 보이는대로 닥치고 읽었다. 서점에 가서도 퇴사 경험을 다룬 에세이집부터 뒤적거렸다. 예전에는 눈길도 안가던 것들이 두더지 게임에서 머리를 맞겠다며 통통 튀어나오는 두더지처럼, 나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느덧 퇴사 컨텐츠는 애써 찾지 않아도 늘 내곁에 있었다.
회사를 떠난 그들은 하나같이 멋있어 보였다. 상대적으로 잃을게 적은 20대만 퇴사하는 게 아니었다. 내 또래인 30대도, 이미 지켜야할 가정이 있는 40대도 퇴사를 했다. 그리고 각자의 방법으로 그동안 돌보지 못한 ‘나’를 찾는 일을 했고 그 결과,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였다. 부러웠다. 그들은 더이상 회사에 발목잡혀 젊은 날을 낭비하지 않는 것 같았고 이미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더 멋진 미래로 발을 내딘 것 같았다.나에게도 인생의 다른 막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화려하게 막이 오르길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록 나도 저들처럼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일단 공통적으로 여행을 다녀 오더라. 한 달 살기도 많이 하고. 나도 치앙마이에 가서 한 달 살기 해보고 싶은데...거기가 떠오르는 디지털노마드의 성지라는데. 집 앞에 딸린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썬배드에 누워서 책도 읽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글도 쓰고!
아니면 발리는 어떨까? 가면 아침마다 요가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던데. 어쩐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것 같다. 하나같이 달콤한 경험과 감성 돋는 사진들이 내 마음에 쏟아져 내렸고 그러다보니 나도 딱 한 달만 저기에 있고 싶었다.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이것만으로도 당장 퇴사해야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마치 퇴사를 하면 저런 삶이 보장되는 것 처럼 보였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운동을 다녀오고 집 앞 카페에 노트북을 챙겨가서 하고 싶던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삶. 예전에야 ‘열정’을 직장인이 꼭 가져야하는 덕목처럼 생각했지만 지금은 누가 그래? 시대가 달라졌다.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들 말하는 시대다. 역시 해답은 퇴사 뿐인 걸까? 분명히 그런 글들만 있었던 게 아닌데 내 눈에는 그런 것만 담겼다. 스스로 어떤 질문을 해도 답은 퇴사로 귀결되고 말았다. 맞다. 나의 뇌는 퇴사병에 장악당하고 말았다.
이미 뇌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기에 남편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보통 결혼한 사람들은 가정이 있기 때문에 직장을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보통 가정이 있다는 건 책임져야할 것이 많다는 걸 의미하니까. 내 생각만 하면서 그만둘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 나를 말릴 수 있는, 나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남편일 거다!
그러나 남편은 나를 말리지 않았다. 예상은 했다. 대학생 때부터 봐온 우리 남편은 내가 하고 싶다 말 하는 걸 한 번도 반대하는 일이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나보다 나를 더 믿는다. 남편은 지금껏 봐온 나는 퇴사를 한다해도 뭐라도 할 사람이라고 했다. 돈이야...덜 먹고 덜 놀면 되지 않겠냐며 그만둬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음, 그건 아마도 돈 관리를 내가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집에 돈이 들고 나가는 일을 상세히 몰라서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 거다. 물론 나는 우리집 경제 현황을 훤히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했다. (말했지만 뇌는 장악당했다.)
어쨌든 괜찮을 거라고 했으니까. 내가 퇴사를 하겠다는 거지 놀겠다는 게 아니니까. 비록 아직은 내가 퇴사 후, 뭔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렇다 하니 그럴 것 같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 퇴사해도 괜찮겠구나! 철딱서니 없게도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증세는 심장까지 뻗친것 같다.
나의 퇴사병은 어느 명의가 와도 손쓰기엔 너무 늦은 말기에 이르렀다.
그 후 주변인들에게도 퇴사 고민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고민은 아니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거든. 그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나의 퇴사를 독려하는 대답을 해주면 되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그렇게 했다. 넌 회사 나가도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안되면 프리랜서 하면 되지. 사실 냉정하게 말해 주변 사람들은 내가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든, 프리랜서 선언을 하든, 집구석 백수가 되든 상관 없는 사람들이다. 친구로서 내가 너무 힘들다는데 그거 참고 계속 다니라고 할 수도 없을 거고, 그렇다고 내가 백수가 되도 책임질 일 없으니 그저 내가 듣고 싶어하는 답을 해주면 되는 거였다.
그들은 나에게 주로 주변에 퇴사 후 잘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작정 직장을 때려치우고 질릴 때까지 놀다가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 유튜브해서 받던 월급의 몇배를 버는 사람, 프리랜서로 전환해서 일 들어올 때 바짝하고 한 달 간 휴가를 가는 사람 등등...
-너도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아? 일단 회사를 나가야 뭐든 할 수 있어.
퇴사병 말기 환자가 이 말을 들으면 사람이 어찌될까?
말그대로 오늘 내일 하게 된다. 오해하지 말아주길- 오늘 내일 안에 사표를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단 뜻이다.
그래! 나는 퇴사해도 잘 먹고 잘 살거야. 봐봐.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럴 거라고 말해 주잖아! 괜히 고민했네. 출근하면 바로 대표님께 말씀드려야겠다. 뭐 이런 답없는 정신상태에 이르고 만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엇하나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그때의 나는 형체없는 확신이 가득채우고 있었다.
그때! 이 와중에 끝까지 살아남은 나의 결정장애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퇴사병이 오기 이전, 아주 오래전부터 내 몸에는 중증 결정장애가 있었다. 병세가 무섭게 악화될 때는 꼼짝도 못하던 애가 이미 다 끝난 판에 등판했고 결과적으론 나를 살렸다. 그만둬야지. 회사에는 언제 말하지? 고민하고 있을 때, 결정장애는 나에게 그래도 그만두기 전에 구직사이트를 들어가보는 것이 어떠냐며 권했다. 그래볼까? 기적처럼 나는 그걸 들어먹었고 그때부터 퇴사병은 자연 치유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 글이 길어져서 퇴사병 치유기는 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