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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pr 29. 2020

"안녕하세요" 다섯 글자의 힘

청소부 여사님이 건넨 인사

몇 달 전, 오피스 빌딩의 우리 층 담당 청소부 여사님이 바뀌었다. 보통 한 회사가 전부 사용하고 있는 다른 층 사정과는 다르게 우리 층은 4개의 회사들이 함께 쓰고 있어서인지 유독 담당 여사님이 자주 바뀌고는 했다. 지나가며 들은 바로는 우리 층이 특히 화장실을 험하게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빌딩에서 가장 청소하기 힘든 구역이라고 한다. 참으로 민망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소개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렇게 힘든 자리에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이 여사님에게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다.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화장실로부터 들려온 낯선 목소리였다. 일단 ‘네. 안녕하세요.’라고 조금 머쓱하고 다급하게 대답을 하고 보니 여자 화장실 세면대를 닦다 말고 웃어 보이시는 여사님이 보였다. 아, 새로 오신 분이시구나. 그렇게 다시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이 이상한 기분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hallo, hello, 안녕하세요.

  


생각해보니 이 큰 빌딩에서 직장 동료 외에도 매일 같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참 많은데 인사를 나눈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옆 사무실 사람들은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시로 마주쳐서 어쩔 땐, 인사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는 게 더 어색할 때도 있었다. 어제 입었던 옷이 무엇인지, 바뀐 헤어스타일을 알아차릴 만큼 익숙하지만 인사는 건네지 않는다. 그것이 마치 서로에 대한 미덕이고 배려인 것처럼 말이다. 특히나 이 여사님과는 하루에 네댓 번도 더 마주치지만 (주로 여자 화장실에 상주해 계신다) 인사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7층의 모두는 인사하지 않으면서 한 공간을 공유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온 여사님이 그 적막을 깨기 시작했다. 여사님께서는 마주치는 모두에게 주저 없이 인사를 건넸다. 내가 오늘 이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던가? 인사를 해도 되려나? 따위의 고민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분명했다. 방금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나오는 길에도 또 인사를 건네셨으니까. 처음에는 내 얼굴을 기억 못 하시는 걸까? 했지만 지금은 나도 고민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인사하는데 뭘 고민까지 해.

덧붙이는 다른 말은 없다. “안녕하세요.” 딱 이 다섯 글자가 전부였다. 여기에 말을 덧붙이기 시작하면 서로 부담스러워질 수 있는데 반갑게 인사만 나누면 되니 그럴 것도 없다. 그렇게 출근길에, 업무 중 잠시 쉬려고 나온 복도에서 마주친 여사님과 나누는 인사에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웃을 기분이 아니었어도 인사에 답을 하면서 웃게 되고 밝은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게 되었고 그 온도에 내 기분도 한결 따뜻해짐을 느꼈다. 인사는 곧 예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블라블라... 를 모두 떠나서 이래서 좋은 거구나 새삼 느꼈다.  인사라는 건 그 짧은 찰나에 주변의 공기가 바뀌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땐, 옆집 할머니께도 늘 꾸벅 인사를 했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모르는 언니, 오빠들에게도 늘 인사를 했다. 그러면 모두 웃는 얼굴로 인사를 잘해 예쁘다고 갖고 있던 사탕 하나, 초콜릿 하나를 손에 꼭 쥐어주었다. 그러니 인사라는 건 좋은 거구나. 사람들을 웃게 하고 내 손엔 달콤한 것이 들어오게 하는구나 싶어 더 열심히 인사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떤가. 익명의 시대라는 말이 꼭 맞다. 이웃인 어린아이들에게 먼저 살갑게 인사를 하면, 대체 왜 인사를 하냐는 눈빛만 받고 민망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하루는 여사님이 늘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동안 나도 자연스레 인사를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고. 그래서 오늘은 꼭 먼저 인사를 드려야겠다 싶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어색함과 쭈뼛함이 뒤섞인 “안녕하세요.”였지만. 

그런 못난 인사에도 여사님은 한층 밝은 톤으로 “네~안녕하세요.” 답해주셨다. 여사님의 인사 덕분에 내가 받았던 좋은 기운을 나 역시 돌려드리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조금이나마 닿았으려나.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담당 여사님의 휴무날, 다른 층을 담당하시는 분이 오실 때가 있다. 

-안녕하세요.

나는 이제 너무나 익숙해진 인사를 건네는 것뿐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분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신다. 내 뒤통수가 멀어져갈 때 즈음 들려오는 “아, 네.” 에서  '왜 인사를 하지? 참 이상하네.' 라는 속마음이 충분히 느껴진다. 하긴 나도 처음, 다짜고짜 인사를 받았을 땐 그랬으니 그런 건조한 반응이 딱히 신경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뵐 때 마다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해보니까 우리 담당 여사님의 마음을 알겠더라고.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하신 건 아니셨구나. 그저 인사를 건넬 때의 내 마음이 좋아서 하는 일이구나 라는 걸.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라 글로 써내려갔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것도 딱히 없다. 7 층은 여전히 조용하고 서로를 알지만 아는 척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장실 앞에서 하루에 몇 번씩 “안녕하세요” 이 다섯 글자가 들려온다. 때때로 웃음이 섞여있고 활기찬, 또 따뜻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다섯 글자. 이제는 여사님께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몇몇 늘엇다. 여전히 다른 말들이 더 오가진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서로의 안녕을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층의 공기는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안녕하세요."

이 다섯 글자의 힘이 모두에게 가닿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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