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 Nov 05. 2021

건강염려증, 조금 머쓱할지라도

일단 병원에 가고 보는 편입니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눈에 거슬렸다. 작은 점이 하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상처가 나서 딱지가 앉은 줄만 알았는데 삼사일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점인 것 같았다. 그때 머릿속을 스쳐가는 TV 화면이 있었다. 흑색종 환자가 나온 다큐멘터리였다. 아주머니는 발에 점이 생긴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다 했다. 그렇게 크기가 계속 커지자 병원에 갔고 진단은 '흑색종'이었다. 초기 발견을 놓쳐 암은 다른 장기까지 전이가 되어있는 상태라 했다. 그때 알았다. 발가락이나 손발톱에 갑자기 점이 생기는 경우는 병원에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흑색종 : 멜라닌 색소를 생산하는 멜라닌 세포로부터 유래된 암종



곧 재택근무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아침밥을 포기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검색창에 머릿속을 떠다니는 단어들을 입력했다. 발가락 점, 흑색종 증상, 흑색종 피부과 등등... 검색을 하고 뉴스, 사진과 블로그 글을 보면 볼수록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떡해... 나 흑색종인가 본데? 내 발가락에 난 점은 어떻게 봐도 흑색종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했다. 불분명한 경계,  비대칭 형태, 일정하지 않은 색깔 등등 너무나 그 특성을 같이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읽고 아마 눈치챘겠지만... 그렇다. 나는 암에 대해, 아니 건강에 대한 불안함이 큰 편이다. 암 가족력이 있고 1년마다 추적검사를 해야 하는 용종도 지니고 있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검색을 멈추는 것이 나를 위해 좋았다. 검색을 할수록 불안함이 어디까지 침범할지 몰랐다. 점심시간에 갈 수 있는 가까운 피부과 검색을 마지막으로 흑색종에 대한 걱정은 잠시 멈추기로 했다. 


나만 불안한 거야? 나만?



다행히 잡생각은 할 틈도 없이 업무가 몰아쳐준 덕분에 오전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도 솔직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맞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보험을 확인해 봐야 하나부터 시작해서 회사는 다닐 수 있으려나 등등 아주 갖가지 상상을 다 했다. 

의사 선생님을 뵙자마자 냅다 양말을 벗어던지고 발가락을 들이밀었다.

"발가락에 갑자기 점이 생겼어요. 처음엔 상처가 난 줄 알았는데 점이었어요."

나는 제법 심각한 선생님의 얼굴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근심 걱정이 어린 얼굴로 아마도 대학병원 검사를 권유하시지 않을까? 그런데 선생님이 심드렁한 얼굴로 뱉은 말씀은 정말 의외였다.

"이거 그냥 실핏줄 터진 거네. 괜찮아요."

음... 솔직히 말하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점인데요? 다시 좀 자세히 봐주셨으면 좋겠지만 선생님은 더 볼 가치도 없다는 듯이 이미 허공을 응시하고 계셨다. 얼른 썩 물러나라는 듯이.

"그러면 한 달 정도 있다가도 없어지지 않으면 다시 올까요?"

아직 걱정이 가시지 않은 나의 물음에 선생님은 역시 눈길도 주지 않으신 채로 딱 한마디 덧붙였다.

"없어져요."


영 찜찜한 기분을 안고 나와 수납을 하려고 서있는데 문 뒤로 선생님의 외침이 들렸다. 수납받지 말아요! 아니... 돈도 안 받으신단다. 저는 없던 셈 치시는 건가요...? 웃으며 그냥 가시라는 간호사의 배웅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오자, 어찌나 머쓱한지. (하필 또 점심 직전이라 내원객이 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했던 온갖 걱정이 무색해졌다. 그렇지만 머쓱함은 잠깐, 곧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나 흑색종 아니다! 암 아니다!  

병원 가는 길에는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죄다 예뻐 보이고 빛나 보였다. 이렇게 햇살이 따스했나? 돌아가는 길에는 내 최애 카페에서 라떼도 한 잔 사서 가야지. 옆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커피라도 사주고 싶을 정도로 상쾌한 기분이었다. 무럭무럭 자라던 불안을 해소한 뒤 찾아오는 이 안도감. 정말 좋다.

 


순식간에 천국 오픈 



사실 이런 일은 나에겐 자주 있는 일이다. 어딘가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기 전까진 늘 이렇게 걱정이 저만치 앞서 가 있으니까. 

아마도 내 건강염려증의 팔 할은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일 거다. 소화가 계속 안된다던 아버지는 병원에서 역류성 식도염이라 하니 그런 줄만 알았다. 몸 안에 암덩어리를 키우는지도 모르고 몇 달간 소화제를 먹으며 시간을 버렸다. 그때 '혹시나' 하는 의문을 좀 더 가졌다면 어땠을까? 좀 더 병을 빨리 발견했다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래도 '혹시나'에 대해 예민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이런 건강염려증 때문에 머쓱한 순간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이런 거 때문에 병을 의심한다고? 검사를 받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그렇지만 나는 이게 마음 편하다. 조금 머쓱할지라도! 내 마음의 평화와 정신 건강을 위해? 일단, 병원에 가고 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