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가 퇴사에 미치는 영향
지금 회사에서 일한지 9년 차가 되었다. 이 작은 회사 속에서 나는 어느덧 상사보다 후배가 훨씬 많아졌고 반면, 눈치 볼 일과 사람은 줄어들었다. 업무에도 물론 능숙해져서 예전처럼 이게 맞을까? 하는 고민 없이 어떤 일이든 자신감 있게 해치울 수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이 무기가 되어주었다. 모두 그간의 시간과 노력이 성실하게 만들어온 성과다. 그러니 나는 감히 편안에 이르렀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와서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어렵게 이른 편안을 집어던져버리기로 한 것이다.
내가 처음 퇴사라는 단어를 회사에 내뱉은 것은 일 년 전이었다. 그땐 업무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고 나에게 쏠려있는 것이 힘들고 지쳐서 퇴사하겠다고 했다. 일단 살아야겠어서 앞뒤 재지도 않고 질렀다. 위에서는 처우개선을 약속했고 나는 이 일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기에 마지못해 붙잡혔다. 예상한 것처럼 역시나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와서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잘하는 일과 오래 알고 지낸 좋은 사람들, 그리고 재택근무 환경까지 더해지니까 내가 조금만 참으면 그리 나쁠 것도 없는 회사생활이었다. 직장인이 다 그렇지 않은가? 매일 출근하고 싶어 죽겠는 사람이 있을까? 일이 없는 것보다는 많은 것이 낫지. 당장은 아무 생각 말고 월급만 보자. 뭐 이런 '을'마인드만 장착하면 다니기에 썩 괜찮았다는 말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퇴사 생각도 나니까, 아예 생각을 말아야 했다. 나름 충실히 해왔던 것 같다. 다행이도 작년에 회사는 어느 해보다 실적이 좋았고 그만큼 일을 처리하다 보면 일주일이,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거기에 아직 지지부진한 막내를 키워내는 것도 내 몫이었으니까. 허튼 생각을 할 틈이 없었고 덕분에 시간은 잘도 갔다.
그렇게 2021년이 별일 없이 지나갔다. 연말 즈음되어 한 해를 돌아보니 이렇게 담백했던 1년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더 보탤 말이 없더라. 그냥 일만 하면서 보냈다. 그게 다였다. 누군가는 그걸로 된 것이 아니냐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1년이, 이토록 편안에 이른 순간이 아쉽기만 했다. 내가 이른 편안이란 곧, 회사에 매몰되어버린 나와 맞바꾼 보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뭔 어그로를 끄는 말인가 싶을 텐데 진짜로 이 브런치가, 요놈의 브런치가 내 퇴사에 불을 지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퇴사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쉽게 결심할 수는 없었다. 벌써 직장인으로 살아온 지가 12년째였다. 몇 차례 언급했지만 나는 직장인 DNA를 타고난 사람이다. 직장인으로서 해야만 하는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잘 맞고 업무를 통해 얻는 보람, 사람들과 마찰하며 얻는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걸 스스로 잘 알고 있는데 퇴사를 한다는 건 위험한 모험이었다. 아아, 그리고 나는 이직할 생각이 없기에 더욱 그랬다. (예단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이런 내가 퇴사를 한다? 하루에 백번 질문을 던지면 99번은 아, 잘 모르겠는데 싶은 거다.
그때, 내 등을 떠밀어준 게 브런치였다. 작년에 의뢰가 들어오는 글을 제외하고는 내 글이 써지지 않아 힘들었다. (구독자가 한분씩 늘어갈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음을 고백한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쓸 이야기가 없었다. 말했듯이 아무 일이 없어서 쓸 말도 없는 거다. 지난번 퇴사 면담 이후로는 더 이상 회사에 기대하는 바도 없었고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업무에는 몰두하고 집중할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업무가 끝나면 완전히 방전 상태였다. 내 머리와 가슴을 자극할만한 것이 없었고 억지로 쥐어짜낸 글감은 몇 줄 쓰지도 못하고 휴지통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번아웃 상태가 줄곧 이어져 왔는데 그것조차 몰랐던 것 같다. 미련하기 짝이 없지... 쯧.
글로 써 내려가고 싶은 일이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건 치명타였다. 내 삶은 곧 회사가 아니고 결코 회사를 위해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흐릿하기만 했다.
브런치와 내 책에 적힌 소개를 곱씹어 봤다.
나는 내가 정말 저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패가 익숙해도 도전하는 것을 즐겼다. 첫 직장생활을 정글과도 같은 곳에서 시작했고 그만둔 후에는 잠깐이지만 카페 사장님도 꿈꿔봤다. 서른 살에는 평범한 직장인을 벗어나고 싶다며 작사 공부를 시작했고 몸과 마음을 갈아가며 몇 년을 매달렸다. 그걸 발판 삼아 브런치를 시작했고 책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정도면 괜찮다며 자위하고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지 않은가. 이쯤이면 작가 소개 글 바꿔야 마땅하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우유부단하고 또 어딘가 우유부단 합니다.」라고...
그래서 용기내었다.
편안에 이른 순간, 퇴사를 하기로!
브런치 덕분에 나는 퇴사하기로 했다.
보고 있나 브런치?
/ 퇴사까지 딱 3일 남았습니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