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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완벽한 그녀

by 욱근

제게는 한 명의 팬이 있습니다. 지난겨울, 동영상으로 만들어 SNS에 올렸던 제 비전 스피치를 방탄소년단의 연설인 양 수 없이 돌려보곤, 지금은 영상 속 대사를 저보다 더 잘 외우십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분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엔 1년 365일 제가 내려오는 법이 없습니다. 평범한 사진도 정성껏 ‘뽀샵’을 해 프로필에 등록해 주시는데 그 모습이 여느 아이돌 못지않아 저도 놀랄 때가 많습니다. 슬하에 자녀가 셋이라고 하던데, 이분께서 주시는 사랑 때문에 제가 남편분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입니다. 걸핏하면 택시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올 것 같은 나의 열성 팬은, 바로 우리 엄마입니다.


결혼에 있어서 누구보다 진지한 제가, 엄마 같은 사람과 결혼하리라 다짐할 만큼 엄마는 제게 완벽한 여자입니다. 엄마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깊은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시골 소녀가 생각납니다. 저는 지금껏 엄마의 입에서 싫은 소리가 나온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동생을 때린 폭행범과 삼자대면을 할 때도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 같은 다정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 가셨습니다. 매력도 넘치십니다. “모리콘 어디 갔니?”라고 말씀하시며 태연하게 리모컨을 찾으시는 모습이 옆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비록 염색하지 않은 달에는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린 백발 할머니가 되지만, 눈 옆의 주름을 무색하게 만드는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쩌면 엄마는 저에게만 완벽한 여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고개를 내민 봄을 시샘하듯 매서운 꽃샘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습니다. 서울에 놀러 온 이모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뜸 이모가 이상한 말을 던지셨습니다. “너는 너희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나?” 든든한 자식 셋에, 이모보다 경제력도 좋고,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 우리 엄마가 불쌍하다니.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되물었습니다. “왜요?” 며칠 전, 엄마가 동창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이모 집에 들렀답니다. 그런데 거실에 들어선 엄마의 모습이 물이 가득 찬 유리컵처럼 금방이라도 흘러 넘 칠 것 같았고, 엄마는 이내 굵은 눈물을 떨어트렸다고. 사연은 이러합니다. 친구들은 값비싼 코트에 광나는 구두를 신고 너나 할 것 없이 해외여행 얘기에 빠져있는데, 자신은 여행에 문외한이라 하나둘 맞장구만 쳐주다 지쳐 안주만 집어 먹다 왔다고. 집으로 오는 길, 자신의 몸에 걸쳐진 패딩점퍼와 운동화가 어찌나 비루하던지, 무얼 위해 이렇게 죽어라 살고 있나 싶었다고. “에이, 뻥이죠! 엄마가 그럴 사람이 아닌 거 이모도 알잖아요”라며 되받아치자 이모가 대뜸 목청을 높였습니다. “뭐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너희 엄마도 여자야 이놈아!”

저는 다 먹은 커피잔을 두세 번 빨다가 자리를 일어났습니다. 서둘러 카페 문을 나섰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제가 기분이 이상한 건 이모의 잔소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연기에 끔뻑 속아 넘어간 나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십여 년 전, 경제 불황으로 아빠의 회사가 문을 닫게 된 후 엄마는 생계를 위해 백화점에 들어가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다시 직장을 찾으셨지만, 엄마는 가게를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월급만으로는 나날이 커가는 삼 남매를 키우기 버거웠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백화점의 오픈과 마감 시간에 맞춰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 시간은 아침 10시부터 밤 10까지였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휴일이라곤 설날과 추석 당일, 일 년에 두 번만 쉬는 직장을 매일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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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늦잠을 자는 일요일 아침, 혼자 무덤덤하게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을 저는 수년간 봐왔습니다. 12시간의 노동에 매일 밤 부은 다리를 매만지시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런데 제가 잊고 있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후, 매일 아침 엄마에게서 오는 하트로 치장된 문자 속에서, 매번 부족한 것 없냐 물으시며 아낌없이 보내주는 용돈 속에서, 엄마의 고된 삶을 잊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현란한 보살핌에 속아 스스로 엄마를 완벽한 여자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 머릿속에선 한바탕 자책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고, 그제야 엄마의 프로필 사진 속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제 사진이 걸려있는 것이 내심 뿌듯하기만 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철없게 웃고 있는 제가 유난히 얄미워 보였습니다. 엄마도 다른 아줌마들처럼 제주도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을 테고, 한 번쯤은 두툼한 코트에 알 큰 선글라스도 껴보고 싶었을 터. 그런데, 자식들에게 신상 패딩만 사주느라 정작 자신은 자기 가게의 아동복 패딩만 입고 다니는 엄마에게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무리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사진을 올리는 대신 아들의 사진을 올려서라도 그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완벽한 여자? 엄마는 나에게만 완벽한 여자였던 것입니다.


이젠 내 차례. 여자이길 포기한 채 엄마로만 살아가는 당신이, 다시 온전한 당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이제 제가 그 앞길을 수놓아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 독립해 서 있으면서도 아직도 완전치 못한 저라서 사실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껏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제 과오와 불찰까지 사랑했던 그녀처럼, 저 역시 엄마를 놓아주고자 합니다. 이제 그녀가, 엄마가 아닌 자영 씨의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하고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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