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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나의 욕심이었다

마음이 허전하다. 내 주위는 넉넉한데 내 안이 허전했다.

by 욱근


마음이 허전하다. 내 주위는 넉넉한데 내 안이 허전했다. 마음을 채우고 싶었다.


나는 며칠 전 이곳 ‘수 하우스’로 이사를 왔다.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한 빌라의 원룸이다. 비록 월세 40만 원의 단칸방이지만 나에게는 펜트하우스나 다름없었다. 이전에 살았던 고시원과 비교하면 말이다. 나는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애플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건물 이름은 마치 ‘아이폰’을 연상하게 하는 세련된 서구적 느낌이지만 애플 고시원 앞은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가 풍겨오는 썩은 대추 냄새로 가득했다. 애플 고시원의 난방 시스템은 중앙 통제식이었는데, 한 겨울이 되어도 그 중앙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굳이 환기를 시키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였다. 공용 샤워실에 들어설 때면 내가 씻는 건지 내가 화장실을 씻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공용 세탁기는 내 옷이 세탁기를 청소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사 온 ‘수 하우스’는 달랐다. 입구에는 대추나무가 아닌 비밀번호를 눌려야 열리는 유리문이 있었고, 유리문 안의 대문도 열쇠로 여는 것이 아닌 전자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었다. 방 안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 왜 두 번의 암호를 풀어야 들어올 수 있는 방인가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앞사람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개인 세탁기와 개인 화장실, 내 손으로 직접 작동시키는 보일러, 게다가 침대 앞에는 내 눈 안에 꽉 차는 크기의 TV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새집에서의 첫날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방안은 훈훈하게 데워져 있고, 입었던 옷은 화장실 앞에 있는 세탁기에 넣고 바로 돌리는 이 현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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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만의 펜트하우스에서 정확히 사흘이 난 후, 내 마음이 허전했다. 불편 하나 없이 모든 것이 편해졌는데 내 마음 어딘가가 허전했다.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세탁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어야 할 세탁기가 잠잠했다. 화장실도 조용했다. 화장실 앞은 언제나 물 떨어지는 소리와 누군가의 흥얼거림이 있어야 하는데 화장실이 적막했다. 허전함을 잊으려 애써 무엇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개운했다. 분명 침대가 좁아 팔이 양쪽 벽면에 닿아야 하는데 말이다. 인기척이라도 느끼려 헛기침을 해보았다. 내 입에서 나온 기침 소리는 방 안의 빈 공간을 가득 채운 후 다시 내 귀로 들어왔다. 방 안에는 오로지 나뿐이었다. 나 말고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세탁기도 책상도 TV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을 찾고 싶었다.


몇 시간 후 여의도에 사는 친구 집을 찾아가 열대어 한 마리를 받았다. 베타라고 불리는 파란 물고기였는데 꼬리가 유난히 길어 헤엄칠 때 드레스 마냥 팔랑거리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베타의 특성상 와인 잔 같이 작은 곳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지만 ‘수 하우스’에 걸맞게 베타 평균 어항의 5배 정도 되는 어항에 살게 해 주었다. 더 활기차게 헤엄치라고 1등급 고급 먹이를 사주었고 물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염소 제거제도 뿌려주었다. 주인을 알아보는지 어항 가까이 눈을 갖다 대면 잠시 내 눈을 맞춰주고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어항을 보고 있으면 귀는 조용해도 눈을 바빠져 괜찮았다.


그리고 정확히 사흘이 더 지난 후, 사흘 전의 허전함이 그리웠다. 베타를 키우게 된 후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도 챙겨 먹지 않는 아침밥을 베타에게 챙겨 주어야 했고 행여 새벽 늦은 시간에 들어와 저녁밥을 챙겨주지 않은 날이면 베타 눈치부터 살피게 되었다. 수 하우스에 적응했는지 나날이 사달라는 것도 늘어갔다 (사실 그렇게 느낀 것은 나였지만). 물 온도가 낮아 몸에 하얀 점이 생겨 마트로 달려가 히터기도 사고 혹시나 히터기가 불량이지는 않을까 수중 온도계도 샀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심심하진 않을까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알게 된 ‘스킨답서스’ 인가하는 수중식물도 넣어주었다. 물이 탁해질 때마다 기존의 물을 빼내고 하루 동안 받아 둔 물로 갈아주어야 했다. 사흘 전 침대에 누워 헛기침 소리를 감상하던 내가 그리웠다.


결핍을 느끼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소유가 부족해서이고 또 하나는 완벽한 존재를 추구해서 이다.


다시 애플 고시원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끔 열대어를 받기 전이 그립다. 열대어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열대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산다고 해서 허전함이 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나의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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