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병신으로 살고 싶으면 수술 안 해도 됩니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리 한 숨을 크게 쉬어 보아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조용히 책상에 앉아 연필을 잡았다. 나는 약 1시간 전 무릎을 다쳤다. 축구공을 받으려 살짝 뛰어올랐는데 무릎에서 ‘뚝’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내 신경은 온통 무릎의 통증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3분여간 쓰러져 있다가 스스로 내 발로 일어나 축구장을 걸어 나왔다. 상상하기도 싫은 이 장면이 이젠 조금 익숙해지려 한다.
나는 두 번의 십자인대 파열을 경험했다. 때는 2014년 10월 3일 개천절이었다. 그 날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라 고향에 내려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타 대학팀과 경기를 한다는 소식에 예약해 놓은 버스를 미루고 목동 축구장으로 향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골은 못 넣지만 골대는 맞추는 정도의 플레이를 보여준 무난한 경기를 치렀다. 2시간의 경기가 마무리되는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골키퍼는 경기장 중앙을 향해 공을 찼다. 굳이 받으려 뛰어들지 않아도 되는 공이었다. 나는 그 공을 향해 하늘 높이 뛰어올랐고, 그리고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그 후 20년 인생을 살며 겪어보지 못한 숨 막히는 통증을 겪었다. 웬만한 고통에도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내가 TV나 영화에서 나올법한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5분여 정도가 흘렀을까 일어 나보라는 선배의 말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어나 자장면을 먹고 오락실은 간 나는 2주 후 혹시나 하고 찍어 본 MRI 검사에서 우측 전방 십자 인대 완전 파열을 진단받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나의 축구 인생 속에서 부상은 늘 나와 함께했다. 그리고 별 무리 없이 자연스레 회복되는 나의 몸을 보며 스스로 ‘강한 남자’라는 자부심도 생겼었다. 나에게 우측 전방 십자인대 파열을 진단하시는 의사 선생님께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여쭈었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신다. 강한 남자인 나는 내 몸을 믿고 당당하게 한 마디 던졌다. “수술 안 하면 안 됩니까?” 이에 그토록 선한 인상을 가진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다. “다리병신으로 살고 싶으면 수술 안 해도 됩니다.” 나는 진료실을 나와 곧장 수술 상담실로 향했다. 십자인대는 재생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붙이려 연결해 놓아도 한번 끊어진 인대는 저들끼리 붙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수술을 통해 다른 십자인대로 교체하는 것인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신기하게도 십자인대는 통증이 오래가지 않는다. 처음 사고 당시 5분간의 숨 막히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그 후 무릎은 평온하다. 약간의 붓기와 뻐근함이 있지만 일상생활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다. 내가 십자인대 파열 이후 2주 동안이나 잘 지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고통은 수술 이후 모두 되돌려 받는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고 나면 그 통증은 마약성 진통 스티커를 붙여도 해결되지 않는다. 또 한 달간 발을 땅에 디딜 수 없다.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천천히 걸을 수 있지만 얼핏 보면 멋진 변신 로봇 같은 철로 된 무릎 보조기를 세 달 동안 하고 다녀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세 달이 지나면 수술한 다리가 겨울의 나뭇가지 마냥 앙상하게 말라있다. 다리를 사용하지 않아 근육이 빠져버린 것인데 이를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는 최소 세 달의 재활이 필요하다. 그 지옥 같은 석 달의 고통이 조금씩 잊혀가는 어느 날 나는 좌측 전방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다.
2016년 4월 3일 경복 고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연초 신입생이 들어와 축구 동아리가 가장 활기찼던 때로 기억한다. 재활 기간 동안 감독 자리에서 선수들만 지켜보던 나는 재활을 끝낸 후부터 다시 축구화를 신었다. 밖에서만 보자니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예전만큼의 기량은 아니었지만 다른 선수들에게 욕 들어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칭찬받기 위해 더 열심히 뛰었다. 어느 정도 공이 발에 붙는다는 느낌이 오려던 찰나 나는 다시 쓰러졌다. 이번엔 공을 잡으려 혼자 뛰면서가 아니라 다른 선수와 부딪히며 쓰러졌다. 보통 십자인대 파열은 몸이 뛰어올랐다 착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설마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우두둑’ 하는 소리 후 오는 숨 막히는 고통은 이미 한번 겪어본 느낌이었다. 어김없이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난 5분 후 스스로 일어나 경기장을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다음날 아침 수술했던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 말했다. “축구를 하다가 다쳤는데, 오른쪽 십자인대 다쳤을 때랑 느낌이 똑같아요.” MRI 촬영 후 진료실에 들어선 나를 본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는 “예감이 틀리지 않네요.”이었다.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한 번,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두 번 총 세 번의 대성통곡을 치른 후 형광색 축구화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마취가 풀리고 난 후의 고통을 다시 한번 느꼈고, 한 달간의 목발, 세 달 간의 보조기 생활을 다시 한번 겪었다.
그리고 오늘 2017년 2월 6일 국민대학교 운동장에서 또 한 번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일어나 경기장을 나왔고 지금 학교 열람실에 혼자 앉아있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리 한 숨을 크게 쉬어 보아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다. 왜 빨리 병원에 가지 않으냐고 함께 축구했던 친구들이 연락이 온다. 병원에 가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병원에 갈지 말지 잠시 고민을 했다. 먼저 의사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그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그 단어가 너무나도 듣기 싫었다. 다시 한번 그 단어를 듣는다면 나는 결코 대성통곡에서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그 단어를 듣지 않기 위해 어디로든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도망칠 수 있을 때까지 도망치고 싶었다. 또 그 듣기 싫은 단어를 들으려 40만 원의 MRI 비용을 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런데 검사를 받기 전까지 끊어졌을까 안 끊어졌을까를 내 육감만으로 진단하며 밤새 조마조마할 내가 더 싫었다. 그래서 늘 다니던 병원에 전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날 수술했던 의사는 응급수술 중이라고 한다. 내일 오라고 하신다. 그래서 지금 열람실에 앉아 있는 것이다.
다친 무릎보다 가슴이 더 답답하다.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 생각이 자꾸 난다. 어머니께 또 다쳤다는 말을 할 자신이 죽어도 없다. 예전에 한번 장난스럽게 “엄마, 나 큰일 났어요.”라는 했었는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혹시 또 다쳤나며 역정을 내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다. 인생 중 두 번의 서울 나들이가 두 번의 아들 다리 수술이었던 어머니께 세 번째 상경을 준비하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말해야 할 것이다. 나에겐 그 어마 무시한 수술비도 아니 40만 원의 MRI 검사비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절대 축구를 하며 다쳤다고 말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냥 빙판길에서 넘어졌다고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내일 병원에 가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한 시간 전을 상상하며 위로를 해본다. 지난 두 번의 경험과 다른 점을 찾으려 안간힘을 써본다. 일단 앞서 경험한 두 번의 소리가 ‘우두둑’이었다면 이번은 ‘뚝’ 소리다. 또 지난번 고통의 시간의 5분이었다면 이번엔 3분 정도다. 또 아무리 사고 후 통증이 없다지만 이번엔 없어도 너무 없다. 뛰라면 뛸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너무 익숙하다. 십자인대 파열의 레퍼토리와 너무나 닮아있다. 심지어 내가 지금 적는 이 위로마저도 예전에 한 번 생각해본 기억이 있다.
도대체 축구를 왜 했을까? 축구가 뭐라고 참여한다고 약속하지도 않은 연습에 굳이 내 발로 찾아갔을까? 축구가 뭐라고 쓰레기통에 던진 축구화도 잊고 운동화를 신고 축구를 했을까? 정말로 한 시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앞으로 내 인생에 축구의 축자도 얼씬거리지 못할 것이다. 축구를 내 인생 최고 수준의 금지 행위로 설정할 것이다. 그런데 무섭다. 소름 돋게 이 다짐도 익숙하다. 예전에 한 번 생각해 본 기억이 있다.
사람들은 원한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은 하루빨리 자신의 기억 속에서 잊혀 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 잊혀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그 아픔에 대해 무뎌지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망각의 능력 덕분이다.
그런데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닌 듯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유행한 말이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것이다. 이 같은 실수가 바로 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숨 막히는 고통과 어머니까의 죄송함, 그리고 수술이라는 아픈 기억만 잊혀가는 것이 아니라 이와 함께 했던,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한 다짐도 동시에 잊혀진다.
나는 이제 좀 오래 아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