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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근 Mar 23. 2020

시래 씨의 2050년

“2050년 3월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1천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사망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베이비 붐 세대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이른바 ‘묘지 투어’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승기 기자입니다.” 시래는 뉴스를 보다 조용히 채널을 돌렸고, 엄마는 조심스레 시래를 불렀다. “딸…” “응” “엄마가 아직 말 안 한 게 있는데 목요일에 307호 언니랑 묘지 투어 갔다 왔어.” 시래가 화들짝 놀라며 엄마를 보았다. “응?’ “아니 미래 투어에서 패키지로 싸게 나왔길래…” 시래는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마. 진짜 죽을 사람도 아니고…” 부모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시래는 엄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자리를 피하곤 했다. 방학 숙제를 끝내면 방학이 끝나버릴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그 해 가을,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않던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시래가 결혼식을 올리고 난 후부터였다. 처음엔 단순한 몸살감기라고 생각해 동네 병원엘 다녔다. 그런데 엄마는 이상하리만치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시래는 엄마를 데리고 큰 병원엘 갔고, 의사는 입원과 정밀검진을 권유했다. 병실에 누운 엄마를 보자 시래는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 곱던 피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나 있었고, 아이 셋 업어 키운 굵은 팔뚝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하는 듯했다. 언뜻 스쳐 들은 것 같은 천 만이라는 숫자가 너무나도 크게만 느껴졌다. 그날 밤,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려는데 엄마가 시래를 불렀다. “딸, 자?” 시래는 엄마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시래야.” “……” 시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삶이란 산부인과 병동에서 태어나 몇몇 병동을 거쳐 영안실로 포장되는 거래.” 불 꺼진 병실, 침대를 감싼 커튼 사이로 엄마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말을 이어갔다. “엄마가 죽으면 시신 호텔에 잠시 재워줘. 요새는 화장하는데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병원 냉동창고에서 열흘을 기다려야 된데. 병원 말고 거기서 쉬다가 가고 싶어.” 냉동창고에 보관되길 원치 않는 시신들을 위한 망자 호텔이 나타나고 있었다. 시신이 부패하지 않을 최소한의 온도를 유지하는 유리관 속에 시신을 모셔 두고 자녀들이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시래가 눈물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엄마가 묘지 체험 가서 느낀 건데, 엄마는 묘지나 납골당에 갇혀 있는 건 싫을 것 같아. 너희가 찾아와서 관리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도 않고. 그러니까 엄마는 하늘에 뿌려줬으면 해. 너희가 못 오더라도 엄마가 항상 볼 수 있게.” 사망자가 많아지자 납골당의 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주장을 시작했다. 대형 풍선에 유골을 넣어 성층권에 쏘아 뿌리는 것이었다. 엄마는 침대에서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앙탈 난 아이처럼 매섭게 불었다. 혹독한 겨울이었다. 엄마에게 수차례의 위기가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엄마의 몸에는 생명 연장 장치가 하나씩 늘어갔다. 더 이상 버텨낼 힘이 없을 법도 한데 엄마는 생사를 넘나들 때마다 아직은 아니라며 이승의 끈을 붙들고 버텨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닌 듯했다. 다만 자신이 타야 할 버스를 신중히 고르고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듬해 봄, 시래는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짙은 눈썹이 시래를 꼭 닮은 딸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손녀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고서 하늘로 떠났다. 딸이 마음 편히 출산을 끝낼 수 있도록 끝까지 기다린 것이었다. 


2055년, 시래가 딸 소혜와 함께 영암군 천동마을 입구에 서있다. 엄마는 고향인 강진 앞바다에서 우주장을 진행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하얀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던 엄마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풍선에 길게 매달린 꼬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혹 하늘로 돌아가는 선녀 같기도 했다. 시래가 엄마의 모습을 선녀처럼 기억할 수 있는 데는 시신 호텔의 공이 컸다. 차갑게 얼은 모습 대신 편안하게 잠든 엄마의 모습을 마지막 기억으로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의 뜻을 완전히 따르지는 않았다. 시래는 유골의 일부를 덜어내 엄마가 살던 동네의 소나무 밑에 뿌리고는 작은 비석을 하나 세웠다.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찾아갈 곳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석 앞에 선 시래가 딸 소혜에게 말했다. “딸” “응?” “할머니 보고 싶어?” “응, 할머니 볼 수 있어요?” 시래가 휴대폰을 꺼내 비석에 적힌 QR 코드를 찍자 눈 앞에 홀로그램으로 엄마의 모습이 나타난다. 딸 소혜가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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