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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근 Mar 23. 2020

돈이란 무엇인가

하얀 보름달이 머리 위를 비추는 추석,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자리를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오시고는 손주들을 한 곳에 불러 모으셨다. 눈치가 빠른 머리 큰 손주들은 기웃거리며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지만 분위기 파악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저들끼리 닌텐도에 한창이었다. 보다 못한 이모가 나섰다. “너희들 지금 안 오면 용돈 없다!” 이모의 한 마디에 아이들은 하교 종소리라도 들은 냥 부리나케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이라며 손사래를 치며 뽀뽀를 거부하던 아이들도 할머니 손에 지폐가 들려 있는 만큼은 주저 없이 볼을 내어주곤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돈이다. 그 달콤한 사탕도 나이가 들면 멀리하기 마련인데 돈은 여든 넘은 어르신도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매력이 있나 보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돌아오는 차 안이면 받은 용돈을 꺼내 가게놀이를 하곤 했다. 손에 쥔 과자를 누나에게 삼만 원에 팔고 다시 삼만 원에 사는 이상한 가게였지만 두둑한 돈을 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문제는 그 돈이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서랍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한 장씩 꺼내 썼을 뿐인데, 손가락 열개보다도 많던 돈이 어느새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또 어느새 한 손으로 세고도 남을 정도가 되어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한 장을 꺼내며 아껴 쓸 걸이라며 후회하는 짓은 어른이 된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 숙제이다.


돈은 바람둥이다. 내 품에 들어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가 싶더니 조금 누리려 하면 어느 순간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없다. 돈이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금융에서는 더하다. 직접 지폐를 건네면 얇아지는 지갑 두께라도 알 텐데, 클릭 한 번이면 수십만 원의 돈이 왔다 갔다 하니 돈이 사라지는 속도는 정말 눈 깜짝할 새이다. 또 내숭도 좀 피우면서 천천히, 꾸준히 마음을 주면 좋으련만 들어올 땐 물밀듯이 들어오고 없을 땐 찢어질 듯이 없는 것도 돈의 특성이다. 하지만 이런 천덕꾸러기 같은 매력이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돈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돈은 냄새의 매력도 지니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병균을 가진 것이 돈이라고 하지만 나는 돈 냄새를 맡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쳐서 찢어지고 바래진 돈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추석, 장터에 말린 고추를 내다 팔아 내 손에 쥐어 주던 할머니의 용돈에서 풍기는 먹먹한 흙냄새를 나는 맡았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돈이다. 돈은 낚시와 같다. 잡으려 할수록 도망치는 물고기처럼 돈도 가지려 한다고 해서 쉽게 모이지 않는다.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투자나 주식을 하지만 최고급 낚싯대를 물고기가 알아차릴 수 없듯 잡히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이다. 지혜로운 강태공은 지평선 너머의 풍경과 물결에 따라 흔들리는 가슴을 즐기려 낚시를 한다고 한다. 우리도 돈의 척박함과 같은 어두운 면 대신,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고 그 속에 담긴 사람 냄새를 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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