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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근 Mar 23. 2020

밥이란 무엇인가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와 ‘한 끼 줍시오’가 연일 상승곡선을 그리며 예능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프로그램 모두 밥을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기존 콘텐츠인 ‘먹방’과 공통점을 보이지만 단순히 배만 채우고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과는 차이가 있다. ‘삼시 세끼’와 ‘한 끼 줍시오’는 음식보다 사람에 집중한다. 밥을 만들고 함께 먹는 동안 나누는 출연진들의 일상적인 이야기 또 삶을 공유하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웃음에 집중했던 이전 예능과 달리 한 끼 식사 속에서 사람 냄새를 찾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학교나 단체에서 회의 시간이 주어지듯 가족의 회의는 매번 끼니때였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아침밥은 일어나는 순서대로 점심은 밖에서 해결하지만 저녁 식사만큼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숟가락을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조잘조잘 얘기하셨고 어머니는 태풍으로 야채 값이 올랐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으셨다. 누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방신기를 보느라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동생은 김치찌개 속 고기를 골라 먹기 바빴다. 비록 일주일에 한두 번은 눈물 젖은 밥을 먹어야 할 만큼 무서운 훈육 시간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가 부대끼고 앉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모두가 성인이 되어 전국 각지로 흩어진 지금 기껏해야 일 년에 두세 번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 끼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작업이 아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나무 아래 정자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대화의 장소이다. 문자나 통화 같은 온라인이 아닌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표정을 느끼며 나누는 그런 대화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밥공기를 다 비웠다고 한들 한 식탁에 앉은 다른 사람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먼저 일어나지 않는 관습을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한 끼 식사가 단순한 식욕 해결을 넘어서 식탁 위에서 나누는 대화 시간을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식탁 위에서는 오고 가는 대화와 반찬 속에서 서로의 정도 느낄 수 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갈 때면 매번 한 끼라도 더 먹고 가라는 할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 집에 와서 한 일이라고는 먹은 것뿐인데 도대체 왜 한 끼를 아쉬워하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그게 정이었나 보다. 평소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 내가 엄마와 아침밥을 놓고 실랑이를 벌인 날이면 유난히 그날은 점심때까지 배가 고팠다. 이는 밥 때문이 아니라 내가 거절한 엄마의 정에 대한 허기였을지도 모른다.


최근 ‘일일 일식’이나 ‘혼밥’ 등 끼니에 대한 새로운 용어가 생겨나고 있다. 이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같은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화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얼마 전 뉴스에 ‘상담실을 습격한 100명의 학생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서울 휘경공업고 한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해 직접 아침밥을 준비했는데 무려 백명의 학생이 모였고 무단결석률이 절반 가량 줄었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아침밥의 메뉴보다 선생님께서 주시는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소중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식사를 시작하며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다음 인사말은 “오늘 하루 어땠어요?”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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