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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X, 징동의 은밀한 물류연구소-1

A to Z가 아닌 ABC to XYZ

표면적으로 일을 그만두긴 했지만, 이상하게 할 일이 많다. 백수는 결코 여유롭지 않다. 게다가 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므로(=돈이 없음), 가끔 구직 사이트나 카페를 들락거리면서 현실감을 잃지 않으려 다분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루 한 번 정도는 좋아하는 중국 매체 사이트에 들어가, 새로운 소식이 있나 살펴본다. 그러다가 어떤 기사를 보게 됐다. 그 기사를 보고 나니 문득 쓰고 싶었지만 잊어버렸던 소재가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한없이 나약한 나의 의지력이란. 하하  


맥락이 있는 글을 완성하기 위해선 약간의 배경 설명을 써야 할 것 같다. 새삼스러운 사실이지만, 최근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라스트마일(Last-mile) 배송에 대한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한 고객의 경험은 '실제로 상품을 전달받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최후 물류거점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이커머스 물류의 마지막 단계인 라스트마일은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고민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이게 중국 업체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이동의 마법이 일어나지 않는 한 모든 온라인 사업자들이 언제나 '어떻게 하면 가장 싸게, 가장 빨리, 최대한 많은 상품을 배송할 수 있을까'란 고민에 부딪히게 된다.  


중국의 이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은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동화를 생각했다.(이 역시 중국 기업들만의 생각은 아니지만) 이 역시 너무 당연해서 쓰기가 민망하다. 효율화를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 자동화는 아니지만,  모든 자동화는 효율화를 위한 것이니까. 


그리고 자동화의 수단 중엔 로봇이 포함되어 있다. 알리바바(阿里巴巴,  Alibaba), 징동(京东, JD.com), 쑤닝(苏宁, Sunning)과 같은 유통기업은 물론(←이제 다들 하도 많은 것들을 해서 '단순히' 유통이라고 하기에도 뭐하지만 일단 시작은 유통이었으니)  텐센트(腾讯, Tencent), 바이두(百度, Baidu) 같은 IT기업까지 자체 연구개발팀을 두거나, 기술업체와의 제휴나 투자를 통해 입출고, 분류, 배송 등 각 물류 부문의 업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로봇 기술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제대로 된 명령이기만 한다면, 로봇은 시스템의 명령애 맞춰 정확히 움직이게 된다. 하루 24시간, 365일 일을 시켜도 불평하지 않는다. 일하다 누구처럼 슬쩍 졸거나 얼른 퇴근해서 게임할 생각에 멍때리지도 않는다.(그냥 아는 사람 얘기) 부가적으로 업무 과정 개선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에도 더 유리하다.  


특히 텐센트와 바이두를 제외한 앞선 세 개의 유통업체들은 모두 물류자회사를 독립 분사시킨 상태다. 알리바바-차이냐오(菜鸟), 징동-징동물류(京东物流), 쑤닝-쑤닝물류(苏宁物流).(갱장히 직관적인 이름이구먼) 물류 자회사가 있으니 현장 적용 테스트를 하기가 수월하다. 


이들이 연구 개발한 자율주행로봇, 드론, 무인 배송차 등은 이미 언론을 통해 상당수 공개된 바 있다. 하나하나 나열하면 무지 길고 노잼이라 굳이 쓰지 않는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각 업체마다 집중하는 분야(혹은 외부에 강조하고 싶은 기술)가 조금씩 다른 모습이긴 한데, 그런 와중에도 '무인 배송차'는 '잇템'이 되어 다들 하나씩 선보이고 있다는 것. 

왼쪽부터 징동, 쑤닝, 알리바바(차이냐오)가 선보인 무인 배송차들. 다들 귀엽게 생겨서 그러려니 했는데, 생각보다 크기가 크다.


업체들은 계속해서 무인차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꾸준히 이를 공개하고 있다. 이 글의 메인 업체인 징동의 경우, 얼마 전 중국 장샤(长沙)에서 열린 박람회에선 로봇들과 함께 처음으로 스마트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지도가 공개돼 다시금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글빨이 후져서 이 정도 깔아놓고서야 겨우 징동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이 글은 징동의 사업부 중 하나인 'X사업부(X事业部)'에 대한 이야기다. 징동에서 새로운 버전의 드론이나 배송 로봇이 공개되면 항상 'X사업부'라는 부문이 함께 언급된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이름부터 비밀스러운 징동의 X사업부는 대체 뭘 하는 곳일까?


사실 자의든 타의든 이젠 외부 세계에 X사업부의 존재가 드러나버리면서 중국 현지에선 덜 비밀스러워졌다. 그래도 한궈에선 여전히 크게 알려진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 한국에서 징동은 딱히 네임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징동도 안 유명한데 그 아래 사업부가 유명할리가 있나. 징동과 알리바바의 중국 내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80%가 넘는다. 그래서 최근 징동은 국내에서 소개될 때  '알리바바의 라이벌'이라는 수식어를 받으며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그래도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조금 후달리는 감이 있다. 알리바바의 시장점유율이 징동의 약 2배다. 


둘의 차이는 매출 성적에서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10일, 포춘지 중문판이 '2018년 중국 500대 기업' 순위를 발표했다. 징동과 알리바바의 2017년 영업수익은 3623억 위안, 2269억 위안으로 징동이 꽤나 앞섰다. 올ㅋ 

근데 진짜 리얼로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나타내는 순이익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두 기업의 순이익을 보면 징동이 1억 1600만 위안, 알리바바가 670억 위안으로, 대충 계산해도 600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네, 정말입니다. 글을 송고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브런치 글 송고할 때 넣는 태그에도 알리바바는 있는데 징동(징둥, 京东 포함)은 없었다. 인지도 ㄷㄷ;;


또한, 알리바바 사업부가 징동보다 다채롭고, 해외시장 확장 역시 알리바바가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서비스 진행 시 기반 조직을 내재화하려는 징동과 달리 알리바바는 외부업체와의 합작을 자주 이용한다거나 외부 업체를 인수를 하더라도 사업체를 그대로 유지시켜 자신의 생태계 안에서 뛰놀게 하는 전략을 주로 구사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기에 알리바바가 좀 더 활발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여기에 여기저기 쏘다니며 강연하고 인터뷰도 많이 하는 알리바바의 마윈(马云) CEO에 비해 징동 CEO인 리우창동(刘强东)은 매체 노출에 소극적이기도 해서 한국에선 징동을 덜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나마 '밀크티녀'로 한때 유명했던 이와 리우창동이 결혼했을 때 인터넷에서 잠깐 그의 사진이 돌아다니긴 했다) 

 

라이벌 구도로만 본다면, 알리바바와 징동은 약간 손오공과 베지터의 관계 같달까. 손오공이 더 강하지만 슬쩍 보면 라이벌 같은? 다만 리우창동이 5년 내에 성적으로 알리바바를 넘어서겠다고 했으니 지켜봄직하다.



본격적으로 징동의 X사업부에 대해 알아보자.(누군가는 궁금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징동의 X사업부가 설립된 것은 2016년 5월이고, 외부에 스스로를 까발린 것은 2017년 11월이었다. X사업부의 전신은 2013년 설립된 물류실험실(物流实验室)이라는 이름의 연구부문이었다. 


즉, X사업부는 기본적으로 물류 관련 연구부문이었던 것이었다! 정★말☆놀★라☆워★라☆~~~~~~~~~~~~~~~~~~~~~~~~~~~~~~~~~~~~~~~~~~~~~~~~~~~~~~~~~~~~~~~~~~~~~~~~~~~~~


돈은 거진 이커머스 사업으로 버는 징동이 굳이 별도의 물류 연구부문을 따로 설립해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맨 앞의 배경과 같은 맥락이다. 물류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원가를 절감하겠다는 아아주 본질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이커머스 기업은 물류업체가 아니므로, 이들에게 물류는 상품이 아니다. 상품을 전달하기 위한 지원 업무다. 따라서 물류가 잘 뒷받침되어야 고객 클레임이 줄어들고 더 많은 상품을 팔 수 있게 되는 것이다.(당연히 물류만이 성공의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물류 부문에서 효율이 나지 않으면 고스란히 비용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거다. 2007년 전면적으로 자가 물류를 하겠다 선언했을 때 징동의 핵심 목표는 "상품의 이동 횟수를 줄이자"였다. 상품의 이동=돈이다. 어차피 내가 하는 물류, 싸게 잘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징동이 물류를 '싸게'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자가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물류센터 짓고, 배송차량 사고, 직원 채용하고 하느라 돈을 한두 푼 쓴 게 아니다. 물류 관련 투자비용 때분에 징동의 실적은 지난 10여 년간 가난을 면치 못했다.(비슷한 예시로 한국에는 쿠X이 있다 읍읍...!)


부가적인 이야기지만, 물류를 잘 하면 아마존처럼 단순한 물류 효율을 넘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다. 징동 역시 2년 전부터 물류 서비스를 개방해 자신의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하지 않은 온라인 셀러들에게도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커머스 업체가 물류로 돈을 버는 바람직한 사업 확장이라니. 


이렇게 징동에게 물류가 갱장히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X사업부라는 이름은 어디서 따온 것일까? 그 유래는 리우창동이 얼마 전 칭화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연설에서 잘 나와 있다. 다만, 그걸 읽는데 점점 내가 써야 할 것이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ㅇ ㅏ ㅇ ㅏ ............X사업부가 뭘 하는지는 아직 시작도 못함.......아아.....


X사업부는 징동의 "ABC+XYZ" 전략의 한 축이다. 간단히 말해 ABC란 징동이 미래 확보해야 할 '기술적인 역량'이고, XYZ는 그 기술을 연구하고 상용화하는 작업을 하는 조직이다. 


 A는 인공지능(AI), B는 빅데이터(Bigdata), C는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의 줄임말이다. 여기에 아직 미비하지만 D와 E도 있는데, D는 사물인터넷(IoT)을, E는 전자실험실(Electronic Lab)을 가리킨다. 유치하고 단순한 말장난처럼 보이는데, 이해하기는 쉽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


그리고 이 기술들을 활용, 응용해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X, Y, Z의 역할인 것이다. 그중에서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부문이 바로 X사업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물류연구소에서 X사업부로의 개명이 이해가 간다. 본격적으로, 또한 전략적으로 물류에 '기술'을 융합하겠다는 것. 


X사업부는 무인화라는 맥락에서 로봇과학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로봇은 무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다. 그래서 X사업부의 주요 연구분야에 드론, 무인 배송차와 같은 로봇 자체뿐만 아니라 무인 물류센터, 무인 슈퍼마켓과 같이 로봇 기술, 자동화 설비가 잔뜩 활용되는 공간까지 포함되어 있다. 


리우창동은 해당 연설에서 "과학기술만이 세계 속에서 우리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물류센터를 언급하면서 "그중에서도 물류센터의 모든 업무는 AI와 로봇으로 수행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징동물류 홈페이지(http://www.jdwl.com/dynamic)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물류센터의 영상이 있기도 하다.  

징동물류 홈페이지에 공개된 '무인의길(无人之路;Journey of the Package)'라는 영상 중 일부. 무인 물류센터지만 사람들이 출입한다. 어차피 이 영상은 무인 콘셉트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니 사기 당했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다만 비교적 자동화하기 쉬운 업무인 분류, 물건 이동, 스캔 등의 업무 외에 물건을 차에 싣고 내리는 상하차, 물건을 집는 피킹, 크기나 모양이 크거나 특이한 상품에 대한 처리와 같이 인간 작업자가 아니면 수행하기 힘든 일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한편, Y사업부는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는 부문이다. 중국 전역에 600개 정도의 물류센터와 300만 가지의 SKU를 다루는 입장에서 AI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Z도 있는데, D와 E처럼 Z 부문은 아직까지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가 아니다. 다만 Z사업부는 특정 과학기술만을 위한 부문은 아니라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과 인간 작업자의 업무 사이에 균형을 찾는 연구를 위한 조직이 될 듯하다. 현재 징동에는 17만 명 정도의 정규직 직원과 100만 명 이상의 임시직(아르바이트) 직원이 있다. 단계적으로 어떻게 인간 작업자를 대체할 기술을 도입할 것인지 역시 징동이 풀어야 할 과제이므로, Z사업부도 조만간 정식 설립되지 않을까 싶다.   


(처참한 분량 조절 실패로 피곤해져서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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