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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 대한 어떤 것(4/16)

구름과 이불의 시간

광주에 온 지 4일 차(할머니 방문 3일 차)에 처음으로 쓰는 글. 앞으로 매일 쓸 것.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입원(혹은 입소) 한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체감상으론 10년쯤 된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부모'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할매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키운 것은 할매였다. 나는 할매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할매에게 한 잘못들을 가끔 떠올리고, 돈이라는 '썩을 것'을 벌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할매를 생각했다. 


이렇듯 나는 할매를 굉장히 좋아하고 자주 생각했지만, 그만큼 할매를 찾진 않았다. 자주 혹은 항상 바빴(다고 핑계를 댔)기 때문이다. 외국에 있었을 때도 있었고, 취업 준비를 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적도 있었고, 일을 시작하고 나니 피곤했다. 그래서 한국에 완전히 돌아온 뒤에도 1년에 두 번 정도가 최대였다. 


그러다 얼마 전 몇 달 전 퇴사를 했다. 말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면서 내 상태가 괜찮아지니까 할매 생각이 났다. 할매를 찾아갈 '적당한 때'를 낼 수 있었다, 이제서야! 수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살았지만, 크게 후회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어쩐지 할머니에 대한 것에선 아무리 소용이 없어도 후회하고 자책하는데, 나는 항상 할머니에게 너무 늦게 왔고, 아주 찰나의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 1/16


그래서 16일의 시간을 내어 할매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나는 기차를 탔다. 할매가 있는 요양원은 함평에 있었지만, 함평에선 숙소를 구하기 어려워 광주에서 지내기로 했다. 


작고 핑크핑크한 숙소. 오래만에 보는 마시마로가 나를 반겨줬다.


첫날은 바로 요양원에 가지 않았다. 숙소에 오후 늦게 숙소에 도착했고, 요양원 방문은 저녁 6시까지 허락되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매우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근처 숙소 근처를 2시간 정도 크게 빙 돈 뒤(중간에 비를 조금 맞았다), 마트에 들러 식량과 필요한 물건들을 좀 샀다. 


광주로 출발하던 날 새벽에서야 겨우 잠들었기 때문에 나는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관련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그것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라기보단 주로 어떤 의문들이었다. 할매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할매는 행복할까, 아흔을 코앞에 두고 어떤 생각을 할까, 할매의 삶 후반부에 있었던 나는 할매에게 어떤 의미일까 등이었다. 답은 알 수 없었고, 나는 시간과 시대와 할매가 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생각하며 굉장히 서글퍼졌다. 그리고 날이 조금 밝고서야 잠이 들었다. 

그냥 걷기 심심해서 찍은 바닥들
깔맞춤


# 2/16


둘째 날 새벽에 잠이 든 나는 그날 오전 느지막이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광주 종합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편도 3600원에 표를 끊고, 30여 분 정도 버스를 탔고 애매한 오후 시간 즘 함평 공용터미널에 도착했다.


요양원엔 특별히 연락을 하진 않았다. 한적한 곳에 있고 출입이 까다롭지 않은 곳이다. 들어가자마자 할머니의 이름을 말하니 바로 안내해줬다. 할매는 주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갑자기 찾아온 사람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저저번쯤인가 더 전인 언젠가 할매를 보러 왔을 때는 할매를 보자마자 울어버렸던 것 같다. 1년에 한 번보다 더 오래간만에 할매를 만난 것이었고, 작아지고 쪼그라지고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충격을 받았다.  


이번엔 울지 않았고, "할매~ 나 왔어~"라고 크게 인사했다. 한동안 할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란 걸 알았다. 나는 할매에게 내가 누군지 소개하고, 매일의 계획(매일 올 것)을 말했다. 나는 원래 살던 곳(할매는 거기서 나와 살았다), 이름, 어떻게 왔는지, 어디서 자는지 등을 천천히 말했고, 할매는 위 아랫니가 골고루 거의 다 빠져서 부정확해진 발음으로 알겠다고 대답하다 다시 비슷한 것을 물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할매와 만난 첫째 날 할매의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인지 할매는 내내 누워있었다. 할매는 풍에 걸린 적이 있어 오른쪽 상반신과 하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누워있는 할매 배 위에 놓여있는 왼손 위에 내 손을 두자 할매는 왼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보통 크기의 주름지고, 껍질과 뼈로 이루어졌지만, 손톱은 매끈한 손이었다. 할매보다 탱탱하고 퉁퉁한 내 손은 얼마간 할매 손에 잡혀 있었다. 


손을 빼고서도 나는 한동안 할매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앉아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조금 지겨워져서 시계를 봤는데 두어 시간 남짓 지나있었다. 이 안의 시간은 밖과 다르다. 할매는 거진 모든 시간을 침대에서 보낸다. 자다가 중간에 일어나서 하루 3번 밥을 먹고, 가끔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간다. 얼마 전까지 집에서 허송세월하며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루가 다 갔네" 혹은 "시간 개빠르네"라고 말했는데 말이지. 그런데 할매를 나의 시간과 달리 할매의 시간은 빨리 가지 않을까? 잠을 많이 자니까. 


오후의 가장 늦은 때 즈음, 집에 가기로 했다. 할매한테 "할매, 나 내일 언제 오까?"했더니 할매는 "아침에, 빨리"라고 말했다.  

나비축제로 유명한 함평. 나비 구조물이 종종 보인다.


# 3/16


하지만 나는 다음날이 되자마자 할매와의 약속을 어겨버렸다. 긴장이 약간 풀렸던 탓인지 셋째 날 정오쯤이 돼서야 쳐 일어났기 때문이다. 으휴 한심아~ 


부랴부랴 준비하고 요양원에 도착했다. 이날은 내가 할매의 침대로 간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분이 할매를 휠체어에 태워 접견실로 데려왔다. 굳은 표정의 할매는 한동안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마 단단히 화가 난 터였다. 옛날처럼 큰 목소리로 혼내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있었지만, 나는 그때보다 더 할매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할매에게 마구 말을 걸었다. 그러다 한껏 밝게 아침이랑 점심을 잘 자셨느지 물었는데, 할매가 먹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진짜, 어휴, 말할 가치도 없다. 


할매 앞에서 쫑알쫑알 대다 보니 어느새 할매의 노기도 조금 누그러졌던 것 같다. 할매를 침대로 다시 모셔놓고, 이 날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었다. 저녁이 시작되기 전에 "내일은 진짜 일찍 올게!"하고 한 번 더 약속하고 요양원을 나섰다. 금요일이라 광주로 가는 사람이 많아 한 대 버스를 보내고,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겨우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벌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먹은 육회비빔밥. 육회 양이 상당한데, 내가 '특'자를 시켰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여기선 챔기름 대신 돼지비계를 넣어 먹는데  석석하니 맛있었다.


# 4/16


그리고 대망의 오늘. 토요일이지만 무려 8시에 숙소를 나섰다. 그저께와 어제 이틀 내내 간간히 비가 왔는데, 오늘은 완전히 그쳐서 맑았다. 마침 오늘 함평 5일장이 있는 날이었는데,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바로 요양원으로 향했다. 


요양원 가는 길에 본 사료할인마트 광고. 커여운 동물 칭구들
뭘봐 X발


도착하니 할매는 아직 자고 있었다. 아침 일찍 깨어 다시 잠든 듯했다. 할매의 방에는 총 세 개의 침대가 있다. 즉 3인 1실인데, 한 할머니의 병원 입원으로 하나는 비어 있는 상태다. 나머지 한 침대를 사용하는 할머니는 우리 할매보다 젊어서 지팡이를 짚고도 혼자서 여기저기 잘 걸어 다닌다. 내가 들어갔을 때 깨어 계셔서 옆 자리 할머니에게 조용히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고 나서 받은 죽염사탕. 무슨 맛일까? 단짠단짠?


일찍 오라던 할매는 상당히 고의가 의심스럽게도 점심 때까정 잤다. 입을 벌린 채 색색, 고롱고롱 소리가 났다. 입이 벌어져 있어서 할매의 치아가 다 보였다. 금니, 은니, 멀쩡한 이, 조금 썩은 이. 할매는 짧으면 몇 분, 혹은 몇십 분 중에 한 번씩 잠깐 눈을 떴다가 곧 다시 잠들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도와주시는 샘이 할매를 깨웠고, 할매는 그때서야 나를 봤다. 내가 "일찍 오래매~ 할매 잠만 자더만~"하니 할매가 미간을 조금 찡그리며 웃었다.


이제껏 할매가 밥 먹는 것은 보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봤다. 오늘의 메뉴는 죽과 가지무침, 김치, 나물무침, 고등어조림이었다. 왕년에 알아주는 깔끔쟁이었던 우리 할매는 이제 턱받이에도 죽을 너댓번이나 흘리는 할매가 됐다. 


계속 옆을 지키는 나를 위해 요양원에서 감사하게도 따로 식사를 준비해줬다. 사실 어제저녁에 폭식기가 돌아서 거하게 폭식한 후 속이 더부룩한 상태여서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반 정도 먹었는데, 흐물한 가지무침이 조금 힘들었다(바삭했다면...!) 어쩐지 병원밥을 생각했는데, 김치와 나물의 양념이 생각보다 강해서 놀랐다.


점심을 먹고 할매는 다시 침대로 와 누웠다. 할매의 의지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할매는 다시 자기 시작했다. 오전처럼 할매는 자다가 중간중간 깨서 천장을 바라본다. 숨소리는 자는 것 같은데 눈은 감고 있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왼 손을 배게와 뒤통수 사이에 둔 채로 천장을 바라본다. 가끔 뒤척이거나 뜻 모를 "아!", "으어!"라는 큰 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제 할매 옆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할매가 갑자기 내게 "무슨 생각해?"라고 물었다. 나는 "책 읽어. 아무 생각 안 해~"라고 대답했는데, 그 대답을 듣고 할매가 조금 웃었다. 지금 내가 할매한테 "할매, 뭔 생각 해?"라고 물으면 할매는 뭐라 대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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