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게 재수없는 날
어쩐지 꿈자리가 사나웠다.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멍했다. 꽤나 잘 봤다고 생각했던 면접이었는데 탈락 문자가 날라왔다. 집 앞 커피집에 갔는데 에스프레소 머신이 고장나 커피를 먹지 못했다. 잡채를 먹고 싶어서 순남시래기에 갔는데 모든 반찬 중에서 잡채만 없었다. 두 번째로 온 커피집에선 뚜껑 없는 테이크아웃 잔에 커피를 받았는데 조금 많이 쏟아서 손에 물집이 잡혔다.
이상하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꾸준히 재수가 없는 날이다. 화가 나진 않는데, 기운이 좀 빠져버렸다. 이렇게 좌절하고 나서 무기력함에 빠질까봐 무섭다. 새로운 것을 할 활력도,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이 사라질까봐 또 좀 무섭다. 사실 이미 좀 그런 상태긴 하다. 1시부터 밖에 나와있었는데 해야할 일 중 20분의 1도 안했다. 그래도 밥은 먹는다, 배고프니까.
사람이 무기력해지면 오히려 오만가지에서 ‘의미’를 찾아댄다. 그리고 다시 무기력해진다. 의미를 찾는 건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 내가 운동 좀 더 한다고 해서 세상이 평화로워지나, 내가 열심히 일 좀 더 한다고 해서 대단한 영향력을 일으키나, 라는 둥의 꼴같잖은 냉소만 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일이면 내 기분은 좀 나아질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면 모레라도. 소소하게 재수없는 날이 있다면, 어쩐지 끊임없이 운수가 좋은 날도 오겠지.
아주 싫었던 것이 예전보다 덜 싫어지고, 아주 좋았던 것도 예전만큼 좋지 않다. 그 사이엔 마음의 평화가 있다. 무기력에 잠식당하지 말고 무럭무럭 둥둥 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