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수 없어 숨기고 싶은데 찌질함만 들키는 걸
찌질한 성격이 가장 싫을 때는 바로 다른 사람에게 들킬 때다. 감춘다고 감춰지겠냐만은 그래도 평소 조심하려고 노력하던 상대에게 들킬 땐 그야말로 수치심에 푹 절여지는 기분이다.
며칠 전, 두 명의 사람과 카톡을 하는 중이었다. 둘 다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한 명은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한 명은 흠...? 그냥 또 다른 친한 친구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상태가 좀 멍한 상태에서 카톡을 했다. 평소 나는 카톡 상대를 헷갈리거나 해서 A에게 보낼 카톡을 B에게 보낸다거나 이런 실수는 잘 하지 않는데 그나따라 그런 일이 일어나버렸다. 심지어 보낸 바로 당시에는 잘못 보낸 줄도 모르고 바로 카톡 창을 끄고 다른 일을 했었기에 카톡 삭제도 할 수 없었다.(더블체크는 이래서 중요하다, 젠장)
평소 고등학교 동창과는 아주 막역한 사이로, 친한만큼 편하게 대화한다. 표현도 직설적으로 하고, 서로 속마음도 얘기를 많이 해와서 이 친구 앞에선 찌질함을 굳이 숨기진 않는다. 예컨대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내 처지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궁상맞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일이 일어났던 당시에도 근황과 함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동시간에 카톡을 했던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돈에 대해서는, 왜냐면 없어 보이기 싫으니까. 가난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지만 최대한 숨기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당시 그 사람과 나는 이튿날 만나기로 한 상태였다. 그런 중에 내가 고등학교 동창에게 보내야 할 ‘아, 돈 부담되서 대충 밥만 먹어야겠다’(차마 원문은 정말....)라는 말을 당사자에게 보낸 것. 잘못 보낸 걸 확인하고 난 뒤엔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당연히 상대방은 어이없음에 아주 화가 났고, 서운해했다. 그 자리는 내가 밥을 사는 자리도 아니었고, 상대방이 만나자고 매달린 것도 아니었다. 뒷담화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자기 얘기를 잘 모르는 또 다른 사람한테까지 하기까지. 앗, 지금 보니 돈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막말하는 것도 문제였군.(이것도 찌질함을 이루는 한 축!) 어쨋든 나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해졌다. 물론 지금도 미안하다.
돈과 소중한 것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내가 미워진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할 때마다 고민하면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때때로 살까 말까, 쓸까 말까 고민에 쏟는 시간과 힘이 아까워질 정도다. 그리고 이게 습관이 되고, 사고방식으로 굳어질까봐 무섭다.
대충 쓸데없는 상상까지 해봤다. 백수인 나는 지금 자주 밥을 얻어먹는다. 사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사준다. 당연히 나는 은혜를 갚고 싶다. 시간이 지나고 다행스럽게도 우짜든동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막상 지인들에게 밥을 사주려고 보니 돈이 아깝게 느껴져 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ㄱ이런 은혜도 모르는 띠용?1 같으니가 되버린다. 사준다고 해도 아까운 마음으로 사주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여기까지만 썼는데도 정말 싫다....)
만약 돈이 ‘충분히’ 많아지면(물론 ‘충분히’의 기준은 무한대) 안 그럴까?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도 불행하지만, 돈이 있는데도 쓰는 게 아까워서 못하는 것도 불행하다. 불안해서 불행하다.
이런 불안은 시야를 허무하게 만든다. 주위의 응원을 공허하게 만들고, 자꾸 내 방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든다. 방도 안 치움시롱.
여튼 이런 찌질함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취소되지 않았다. 나는 엄청나게 사과했고, 무엇보다 상대방이 너그러웠다. 심지어 선물도 받았고, 밥도 얻어먹었다. 그리고 “제발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소리 좀 하지 마”라는 말도 들었다. 더 부끄러워졌다.
꼭 저때 들은 말이 아니었어도,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로 나를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 찌질함에 못 이겨 징징댈 때조차 나보다 나를 더 좋게 봐주고, 또 잘 될 것이라 말해준다. 사실 그 말을 전부 믿진 않지만 마음은 따뜻해진다. 하지만 좋은 말도 자주 들으면 익숙해진다. 하는 사람도 지겨워질테니 빨리 궤도를 잡아야지. 앗, 다시 불안이.....?!
굳이 적고나니 괴롭고 또다시 창피하다. 그래도 잊지 않으려고 적었다. 탈찌질은 바라지도 않고, 적어도 다시는 들키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