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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미정 Nov 24. 2022

색깔 편식

여름날 부산

예전엔 파란색을 싫어했다. 파랑은 우울을 뜻하는 색이었으니까. 스스로도 우울이 주기적으로 오는데 그 우울을 뜻하는 색은 나에게 깊은 늪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 것 같았다. 물건을 사든 배경화면을 바꾸든 모든 생활에서 파란색이 조금이라도 들어갔다면 피했다. 그러나 푸른 바다를 보며 파랑을 좋아하게 됐다.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는 파도와 바다는 갑갑한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게 했고, 바다가 준 선물에 반한 듯 파란색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 색이 있다. 보라색. 보라색은 뭔가 혼탁하고 혼란하다 느껴진다. 여러 색이 섞인 색이여서 그런가. 평소의 내 뇌 속 상태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온갖 생각들이 자기의 색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이 뒤섞인 듯한 보라색의 이미지가 들어온다면 혼돈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색깔 편식이 심했을 때는 원색만 좋아했다. 빨강, 노랑, 초록. 초록은 자연의 색이라서 좋았다. 파스텔톤도 싫어했는데 요즘은 무거운 마음에 얼음을 대준 듯한 느낌이어서 좋다. 어느날 보라색이 내게 강렬한 인상과 경험을 준다면 그땐 보라색도 좋아하게 되겠지. 다채로움을 좋아하는 나는 이러한 점에서 스스로 모순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모순이 좋다. 모순을 풀어가는 과정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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