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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미정 Sep 16. 2022

다시 만날 여행

친구들과의 부산 여행기, 일상에서 벗어나 깨달은 것들

부산: 친구들과 2박3일로 여행을 갔다. KTX를 타고 창가에 앉아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하다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2시간 30분이 금방 지나가며 부산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갔다는 게 뚜렷이 느껴지지도, 도착한 부산역의 풍경이 서울과 다르지 않아 이곳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KTX의 창가자리는 참 좋은 것 같다.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딱 그런 시골의 풍경을 보며 꿈을 꾸는 듯 기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러한 시골에도 곳곳에 뾰루지가 난듯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서며 뒷 배경인 산을 가려 서운했다. 아파트는 내게 도시의 상징이자 삭막함이고 적이다. 아파트에 사는 것과 시골의 작은 집에서 사는 것은 다른 삶의 환경을 가져오는 것 같다. 부모 없이는 아무 곳도 가지 못하던 어렸을 적, 명절마다 시골에 내려갔었다. 그때는 시골이 이렇게 좋아질 줄 몰랐다. 명절마다 내려가기에 나에게는 당연했고 가끔은 그만 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면 항상 즐거웠다. 시골에선 시간이 늘어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른 아침 일어나 외양간에 소를 보러 가고, 옆집 개를 보러가고, 길가에 난 도랑에서 우렁같은 작은 생물들을 잡고, 밭에 놀러가서 뛰놀고, 출출하거나 입이 궁금하면 10분 정도 걸어 마을에 딱 하나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 간식을 사먹고 그렇게 신나게 놀아도 오전이 다 지나갈 뿐이다. 남은 오후에는 주변을 산책하고 하루가 참 길다는 것을 느낀다. 나에게 시골은 따분한 곳이 아닌 있는 그대로 먹고 즐기며 살아있을 수 있는 곳이다.


브루카가 떠올랐던 블라인드를 내린 창문이었다. 뒷자리에 앉으신 분이 햇빛이 싫다며 우리가 올린 블라인드를 내리셨다. 처음에는 좋지 않았는데 내리고 본 바깥 풍경으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브루카가 떠올랐다. 촘촘한 그물로 본 건 풍경이었나 너무 답답하고 갑갑하고 곧 시력이 나빠질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부산역 이전의 역에서 뒷자석이 비어 다행히 끝까지 갑갑하게 가는 것은 면했다. 블라인드를 걷히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 이런 풍경을 보지 못하고 갔다면 두고두고 아쉽고 좌석 선택에 대해 후회했을 것 같다. 종교가 올바른 의미로 해석되었으면 좋겠다.


해운대첫날 본 바다다. 바다가 이렇게 예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지 처음 알았다. 물론 그 감정에는 주변에 즐거워 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친구들과 놀러온 나의 즐거움과 쨍쨍하게 좋았던 날씨가 함께 담아있어 이렇게 느꼈을 것이다. 바다 위로 일렁이며 다가오는 파도들이 내 앞에서 하얀 모습으로 아스라질 때 그 모습은 잊지 못한다. 해운대 바다에 반한 것 같다. 덕분에 모래 알들이 내 발 사이사이로 진득히 붙어도, 바지가 젖어 무거워져도 즐거웠다.


빌라엠 미미키스스무살 내가 마셨던 술 중 가장, 제일 맛있었다. 달달하면서 시원하게 마신 화이트 와인이 다른 어떤 음료수보다 맛있었다. 와인샵가서 와인을 고를 때 프랑스를 좋아하니 프랑스 와인을 봤었는데 와인을 잘 모르는 우리가 마시기에 좋을 것 같은 설명의 이탈리아 술을 골랐는데 너무 맛있는걸. 다시 생각해보니 프랑스보다 이탈리아 음식이 더 내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고. 첫날 야식으로 회와 아페리프레의 치즈를 먹었다. 부산의 야경과 친구들과 즐기는 수다, 추억이야기 등등 오두막에 온 듯 편안하고 즐거웠다. KGB는 레몬 음료수였고 대선 소주는 정말 상쾌한 알코올이었다. 술 마시면 눕고 싶어진다. 무중력같은 느낌이 든다. 바닥이 나를 잡아당기는 기분이 든다.


아침 유산소, 어제 먹은 야식과 저녁으로 타락을 경험했으니 깨끗해지고자 하는 작은 반성으로 호텔에 있는 헬스장에 내려가 공복 런닝을 뛰었다. 처음에는 음악을 들으며 뛰다가 음악도 지겨워져서 평소엔 관심도 없던 라디오를 들어봤다. 휴대폰 내에 있는 라디오로 들어서 채널명없이 오로지 주파수로 찾아 들었다. 신기했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음성으로 사연을 듣고 일상 인사를 나누는 게 신기했다. 처음에는 김영철님, 다음에는 장성규님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다. 라디오는 관심도 없던 매체였는데 소리에 집중해서 들으니 낭만있었다. 마침 어떤 청취자 분이 아침 유산소를 뛰고 왔다고 해서 한번 더 신기했다. 나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구나. 아침을 공유하는 기분이다. 집에도 트레드밀이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홈트와 사이클보다 접근성이 편하고 절로 몸이 움직인다. 상쾌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이튿날흰여울마을로 향했다. 이곳에서 국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바다를 갈 예정이었다. 국밥집으로 향하는 길에 비둘기들과 마주쳤다. 이들도 아침을 먹고 있었다. 모여서 밥먹는 게 귀엽다. 흰여울마을은 곳곳에 일반적인 시골 주택들에 파스텔 톤의 페인트들을 포인트로 새로 바른 것이 인상적이었다. 너무 시골처럼 촌스럽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요즘 디자인처럼 인스타스럽지 않으면서 흰여울마을만의 아름다움같았다.


빵순이 중에 찐 빵순이라는 걸 깨달았다. 국밥으로 든든한 배에 손바닥만한 도넛이 또 들어갔다. 친구들은 배부르다며 그만 먹는다 했다. 그러나 나는 불러도 계속 들어갔다. 빵과 크림 정말 좋다. 같이 마신 연한 아메리카노도, 눈 앞에 뻥 뚫린 바다도. 그 순간 자체가 좋았다. 좋아하는 음식과 풍경과 사람들과 있어서. 나는 좋아하는 순간에 있으면 횡설수설 말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너무 좋다는 걸 어떻게든 표현하려는 행동이었다.


흰여울마을은 여러모로 좋은 마을이었다. 가다가 본 고양이들이다. 소품샵들도 각자 개성이 강했고 그 중 고양이 굿즈샵에서 본 엽서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와 고양이가 웃고 있는 사진 엽서였다. 아늑하고 포근하고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고양이들은 귀엽다. 할머니들은 존경스럽다. 긴 세월 어떤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있든 살아 오셨고 그간 경험과 감정들이 녹아드셨다. 살아있는 백과사전이자 보물같다. 길고양이들이 많았고 상태가 좋진 않았다. 그러나 고양이를 보며 싫어하는 눈치를 가진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곳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은 간식이나 밥을 주시고 계셨다. 좋은 마을이다. 그리고 어떤 고가도로 밑에서 시원한 그늘아래 장기를 두시거나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을 봤다. 아름다웠다. 어르신들이 즐겁게 보낼 곳과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 어디서 놀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자아 실현을 해야할까. 시골 마을에선 있는 그대로가 놀이겠지? 사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자연을 보며 옆집사람들과 대화하며 길고양이들을 돌보며.


외딴 작은 섬 위 갈매기. 흰여울 바다터널을 가다가 본 갈매기다. 혼자 어떤 생각을 하며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것일까? 우리가 바다터널을 다 보고 온 후에도 그대로 그자리에 있었다. 넓은 바다 위에 홀로 고독을 즐기는 것인가 단순히 쉬고 있는 것인가. 귀엽다. 흰여울 바다터널을 지나 본 바다이다. 이곳은 해운대 해수욕장처럼 고운 모래가 있지 않다. 크기가 제각각인 돌들이 있다. 나는 이런 바다가 더 좋다. 모래가 심하게 발에 끼이지 않으며 진짜 자연의 바다같다. 이곳에서 파도와 장난치다 친구와 나는 바지가 젖은 채로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가장 재밌었던 곳을 고르라하면 이 바다다. 친구와 떠밀려 오는 파도를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맞으며 웃으며 놀때 정말 행복했다. 아무생각없이 올해 들어 가장 깨끗하게 웃었다. 서울에 남겨두고 온 고민과 걱정 없이 그때 그 순간의 즐거움에만 집중하며 어린 아이처럼 행복하게 놀았다.


밤바다와 라면. 이튿날 저녁에는 야식으로 라면을 들고 밤바다로 향했다. 시간이 오후 11시 50분쯤이었는데도 사람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먹는 육개장. 신발을 벗고 밤바다를 걸었다. 밤에 본 바다는 무섭고 고요하다. 









여행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미디어나 어디서든 여행가라고 여행가면 성장하고 좋다고 했는데 막상 자유롭게 여행한 적이 없었다. 타지에서 기댈 보호자 없이 있는 것도 처음이었고, 여행지에서 나는 의지할 장소나 큰 어른이 없었지만 있는 그대로 괜찮았다. 이곳에서 나는 무엇도 아닌 존재였지만 가만히 괜찮은 존재였다. 여행자였던 나는 무언가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냥 지금 있는 곳에서 즐겼다. 여행을 하며 진로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들이 떠오른다. 꼭 해야 할 것만 같던 것들이 꼭 필요했던 것이었는지, 진정으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윤곽을 살짝 보는 듯 했다. 다음엔 혼자서 여행을 한번 가봐야겠다. 잠시동안은 현실에서 해야 할일들을 하며 몇달이 지난 후 다시 여행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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