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못해도 혼자 떠나는 여행 1일 차
혼자서 스페인에서 1박을 했다.
'그까짓 거 혼자 잘 수도 있지 그게 뭐라고~ 호들갑이야' 할 수 있는데, 소심 대마왕인 나에게는 이조차도 용기다. 29살에 첫 해외여행이자 혼자 여행이었던 일본 배낭여행 이후 몇 년 만인지 감개가 무량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혼자 다니는 것에 대해 겁이 많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기에 선뜻 출발은 했지만 팔뚝에는 긴장성 닭살이 돋아있다.
14시간 가까운 비행시간 동안 2시간 정도 잤기에 졸릴 줄 알았는데, 새벽 3시(현지 시간)부터 잠이 깨었다. 결국 해야 할 일들을 이것저것 떠오르면서 노트북을 켠다. 5시간 동안, 다이어리 쓰기, 줌 참여, 책(내가 사랑한 유럽의 도시) 읽고,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통화하고..
딱 가볍게 아침 먹기 좋은 비즈니스호텔이다.
시리얼, 간단한 샌드위치, 커피로 아침 먹자(아침은 Desayuno 데사유노)
아침을 빵으로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행 중에는 무조건 든든하게 먹어두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나 보다. 빵 주스(100%란다) 요거트 야무지게 먹어둔다.
기차 시간이 10시 15분. 현재 시간 8시 30분
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모르는 동네니 미리 가보는 것이 나을 듯싶다. 어차피 2시간으로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것도 쉽지 않을 터이다.
구글맵에서는 산츠역까지 500m란다. 지도에 표시해 둔 곳으로 가다 보니 실수할 뻔했다. 내가 미리 체크한 산츠역의 위치가 전혀 다른 산츠메트로였다. 정말 먼 곳은 아니지만 시간 맞춰 도착했다가 당황할 뻔했다. 놀란 가슴 쓸어안고 뒤돌아 걷는다. 나란 사람 꽤 용기 있어 보여도 속으로 많이 놀래는 타입이다. 워낙 길치여서 걱정도 불안도 많다. 그래서 더 급하게 미리미리를 외치는 것 같다.
바르셀로나 산츠역(서울역과 동급이지 않을까?)으로 가기 위해 대로변이 아닌 골목길로 걷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조용하다. 앞에 보이는 회색박스는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이다.
산츠역 가는 동안 우산을 접어서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나무가 보인다. 원예 조경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어떤 나무인지 알아볼 생각은 안 했지만 여행을 왔구나라고 실감하는 이국의 풍경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바르셀로나 산츠역이다.
바르셀로나 산초역은 우리로 치면 서울역이다. 여기서 마드리드로, 발렌시아로 스페인의 여러 도시로 이동한다.
산츠역 정문을 들어섰을 때 기준으로 왼쪽에 있다. 발렌시아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올 때 이곳에서 나왔다. 그때는 지하철 통로인가 생각했는데, 도착 후 역 밖으로 나가는 개찰구였다.
정면에서 우회전했을 때 기차를 타기 위한 대합실이 있다. 처음 와보는 장소임에도 낯설다는 기분은 없다. 외모도 다르고, 언어도 달라서 이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들리는데 편하다. 스페인 한달살이의 첫날을 상큼하게 시작할 수 있겠다. "어서 와 바르셀로나는 처음이지? 일행 없이 혼자 다니는 여행이어도 괜찮다며 잘해봐" 라며 토닥여주는 듯하다.
전광판 아래에서 수화물 검사하는 기계가 있다. 수화물 검사를 지나가면 입국장처럼 기차를 타기 위한 장소로 이동한다. 혹시나 누가 내게 말을 걸까 봐 조금 긴장도 해보지만, 흘깃 쳐다보기는 하지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나는 VIA 1 라인에서 탑승한다. 아직 내 차례는 멀었기에 책을 꺼내어 읽기도 하고 사람구경도 해본다.
바빠 보이는 역무원들에게 내 표를 보여주면 적당한 친절함과 미소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려준다. 외국에 나오면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한 경험을 갖게 될까 봐 내심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인지 우리와 같은 적극적 친절은 기대하지 않는다. 필요한 정보만 습득하면 되지 뭐.
스페인어 몰라도 여행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일단 들이대기 일 것이다. 극소심 대마왕인 나는 해외에서는 꽤 잘 묻고 다닌다.(번역기로) 나도 이해 안 되는 나의 장점 중 하나가 모를 때는 '무조건 물어보자'다.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확실한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먼저 탑승한 사람들이 캐리어 놓는 자리를 다 채워버렸다. 통로에 놓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선반에 올리자니 힘이 없다. 이걸 어쩌면 좋을지 고민해 보지만 답이 없다. 뭐 마려운 강아지와 같은 표정을 대놓고 보이기로 했다. 그리고 스페인 남자들을 흘깃 쳐다보면서 무언의 SOS를 쳤다.
영맨들은 안 본다. 결국 젠틀해 보이는 초로의 신사분이 도와줬다.(미안해요 가방이 너무 무겁죠?)
MZ와 친해지기 어려운 것은 전 세계가 공통인 듯하다.
아님.. 나의 외모가 그들의 호감을 끌어내지 못했거나~(이건 아니길 간절히~~)
앞으로 4시간 후면 메리와 비쎈떼가 있는 발렌시아에 도착한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는다. 톡으로 기차를 탔다고 메시지를 보내둔다. 메리는 시간 맞춰서 나와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집에도 무사히 기차를 탔다고 톡을 남겨둔다.
책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기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스페인에 다시 왔구나 싶다.
처음 보았던 스페인은 드넓은 들판과 커다란 구름, 파랗다 못해 시린 하늘이 가득했고, 25일 동안 질리도록 봐왔는데 이 날의 풍경은 새삼스러웠다.
3년 4개월 만에 이 땅과 하늘을 본 것이다. 이곳으로 다시 와야 하는 이유도 목적도 없는 여행이다. 코로나19가 이유인지 그 핑계로 웅크리고 있었는지는 모호하지만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발표에 이젠 갈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까미로를 향한 대열에 끼어볼까 했더니 무릎이 안 좋다. 체중이 급작스럽게 불어나고 갑상선 수치는 3배이상 올랐다. 운동을 안 하니까 대사량이 심하게 부족하다. 4년 전처럼 몰입해서 운동할 여력이 안된다. 친구들이 까미노를 위해 비행기를 탈 때 나는 발렌시아로 향했다.
유행처럼 퍼지던 한 달 살기에 슬그머니 나도 동참한다. 비용 계산을 위해 메리에게 인근 에어비앤비로 예약할 까봐 했더니 그와 그녀의 집으로 오면 된단다. 집주인 비쎈떼의 동의도 받았단다. 이런 감사한 일이~
늘 내게 말해주었다. "넌 한국에 있는 우리의 가족이야~"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기차도착시간을 알리니 정말 좋아해 줘서 오히려 감사하다. 갈 곳이 생겨서 갑자기 목적이 생기는 듯하다. 그저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남들과 다른 걸까? 난 여행에 목적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통장의 자비가 가득할 때는 조금 먼 곳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산 내에서 돌아다닐 뿐이다.
발렌시아로 향하는 마음이 들던 그때의 나는 변화가 필요했고, 돌아올 즈음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도 알 수 없지만 일단 마음먹었으니 실행하고 싶은 것이다. 난생 처음 안정제를 먹어야 했고, 끝없는 수면 속에서도 알수없는 죄책감에 불편했다. 평생 해온 고민을 새삼스럽게 또한다. 이 생각들의 근원을 알아야겠다. 메리는 여행하고 싶은 여행지를 생각해 오라고 했지만 아무 선택 없이 그냥 출발했다. 인근의 도시를 여행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고, 발렌시아 시내안에서만 머물러도 좋다. 생활하는 공간의 변화만으로도 일단은 되었다.
발렌시아 기차(렌페) 역, 발렌시아 호아킨 소로야 역에 도착했다. 약 4년 만에 만나는 그들은 반갑게 나를 맞이해 준다. 아마 3km 정도 떨어진 거리이고, 25~30분만 걸으면 집이지만 짐 때문에 택시를 타잖다. 올 때는 걸어왔다고 한다. 뒤통수를 스치는 서늘한 기분은 이분들은 10km는 늘 걷는 분들 즉, 생활속에서도 순례자들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웬만한 거리는 거의 걸어 다닌다.
앞으로 한 달간 지내게 될 내 방이다. 1인용 침대와 벽장, 스탠드가 전부다. 메리와 비쎈떼가 직접 페인트 칠 하고 가꾼 방이며, 이전에는 아르헨티나 남자 베르니도 일주일간 이방에 머물렀고, 4년 전에는 여행쟁이님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이방에 있었단다.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까미노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내어 줄 방이고, 나 이외에도 여러 친구들이 다녀가는 곳이라고 말해준다.
짐을 정리하느라 잠시 혼자 있는 동안 옅은 한숨이 나온다. 정말 왔구나. 한 달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서울을 떠나고 그토록 분리하고 싶었던 끈을 잠시 놓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과 그래도 되는 걸까? 문제가 없을까?라는 여러 생각이 한 번에 몰려온다.
어쩔 거야 이미 저질렀는데 여기까지 와버렸는데 툭 털기로 한다.
대신 그렇게 보고 싶었던 스페인의 가족(?)을 만나게 되었으니 첫 번째 좋은 거다. 그리고 내 속에 가득한 수십 개의 물음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테니 그래서 두 번째로 좋은 거라고 괜찮아.
메리가 부른다.
오후 2시에 도착했느니 내게는 늦은 점심이지만 이들에게는 이제 점심 먹자의 시간이다. 오랜만에 먹게 되는 메리의 요리. 순례길에서는 재료가 많지 않아 최소한의 재료로 뚝딱 만들어 주던 그 음식들을 그들의 집 식탁에서 먹게 되었다. 매번 톡으로만 나누던 대화를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맛을 평가하자면 맛있다. 근데 짜다! 이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기억에 남아있는 스페인 음식은 그리 이질적이지 않았는데, 음식의 간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이 날 메리의 음식은 조금 짰고, 이후 한동안 향수병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어때?라는 두 분의 기대 어린 표정에 정직하게 대답한다. 응 조금 짜긴 하지만 아주 맛있어. 냉장고에는 다양한 종류의 캔맥주가 있었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란다. 술을 잘 먹지만 맛을 평가하면서 먹지는 않는 터라 가벼운 것을 하나 집었다. 4년 만의 만남이라 가벼운 흥분 상태다.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로 오기까지 대략적인 대화를 나누고, 잠시 쉬었다가 5시 이후에 발렌시아 시내로 구경을 가자고 한다. 저녁은 밖에서 먹자는 의미로 해석하고 내 방으로 돌아가 짐을 마저 정리한다.
브런치에 글을 게재하는 것은 나와의 약속의 시작입니다.
성격은 급한데 뇌와 몸은 조금 아니 많이 게으릅니다.
이를 극복하고자 일주일에 3번은 연재를 스스로에게 약속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