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차이
"내까짓게 글을 쓴다고?"
너가 아니라 나
내까짓게 무슨 글을 쓴다고 여기저기 떠벌렸을까?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떠벌리진 않았다. 글 잘 쓰네요 라는 적당히 추켜세워주는 말을 들떴을 뿐이다. 나에 대해 상당히 엄격하고 인정은 눈곱만큼도 안 해주는 내가 주변의 입에 발린 말에 그렇다고, 그럴 것이라고 정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잘 쓰고 싶은 것과 잘 써지는 것과 쓸 수 있는 것은 다른 것 같다. 말하듯이 주절주절 써대는 것이라면 앉은자리에서 1만 자도 써 내려갈 수 있을 테다. 다만 주제가 명확해야 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이 정리가 되어 있을 때의 상황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 나의 주변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늘어난다. 처음에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듣다 보면 어느새 일장연설을 하고 있는 나를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듣고 있노라면 내가 무슨 전문가가 된 듯하다. 과거의 일을 계속 꺼내어 곱씹는 주제에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걸까? 10분 정도 떠든 듯한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을 때는 꽤나 당황스럽다.
그렇게 말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글로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말하듯이 쓰면 될 것 같은데 안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말은 내뱉아도 바람결에 날아가 버리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상대방도 거의 흘리듯이 듣는다. 중요한 대화가 아니니 서로 묵시적으로 그러려니 할 것 같다. 날아간 대화를 글로 쓰려면 문장 구조를 따지기 시작하게 되니 조금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나 어제 그거 봤다! 있잖아 내가 잘생겼다고 말한 배우가 나온 드라마 그거~" "아!! 태양의 후예?"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하는 형태의 말은 대화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글에서는 그렇게 쓰기 어렵다. 읽는 사람이 몹시도 불편하기 때문에 잘 쓰려고 애를 쓰게 된다.
또 하나는 글을 쓰다 보니 단어의 범위가 상당히 좁다. 말할 때는 살짝 모호하게 말해도 어느 정도 의미가 통하기도 한다. 글에서는 쓰이는 단어가 제한적인 것을 발견했다. 브런치 스토리에서도 가끔 발견하고 출간된 책에서도 명문장을 발견하면 한없이 부럽다. 나도 입에 착 달라붙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오르면서 부럽고 샘난다. 그럴 때마다 혼자 좌절하는 나를 보면서 나에게 한마디 퉁명스럽게 던진다.
"글공부도 안 하는 내까짓게 글을 쓴다고? 까불지 마~"
맞다. 책도 안 읽고 명상도 필사도 제대로 안 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글을 쓰겠니. 겉멋만 잔뜩 들어서는...
서평 제의를 받은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어두운 밤이 가져갈까 봐 급히 휘갈겼다. 자기 검열 그만하라고 말했다. 읽고 생각하고 쓰다 보면 조금은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쓰고 싶은 문장이 떠오를 때 바로 쓰지 않으면 생각은 밀가루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어 불지도 않는 바람사이로 숨거나 미세먼지 사이에 끼어서 빼꼼히 나를 본다. '넌 내가 기억나니?"라며 묻는 듯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겪었던 정체성과 당황스러웠던 내면에 대한 기억들을 써두고 싶었다. 1인 출판의 형태로라도 남기고 싶었다. 절반은 써두었다. 쓰면 쓸수록 내 이야기가 재미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갔다. 혹자는 그냥 쓰라고 한다. 너 재미있게 잘 써~ 그러니 그냥 써봐~라고 한다. 근데 누군지도 모르는 독자의 시선을 당겨 신경 쓰느라고 나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다.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억이 사라지는 그 속도만큼은 아니지만 감정 또한 사라지고 있으니 곧 포기하겠지. 그러면서 "내까짓게 무슨 글을, 책을 쓴다고, 제기랄!!!"이라고 말해버릴 것 같다. 그런 내가 부끄러워 두문불출하다고 지레 숨어버리겠지.
신년의 계획에 딱 하나, 올해는 세상에 나를 내어놓는 해로 정했다. 한걸음만 내디뎌 보자. 하고 싶은 마음이 1%라도 있다면 일단 하는 거다. 실패를 두려워 말자. 1호 독자가 행복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마음먹고 다시 주저하는 나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
글쓰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생각보다 글 쓰는 것이 재미있다. 냉정한 2호 독자가 괜찮은데? 말해주면 그걸로 족하다. 누군가의 성공은 그 이면에 하기 싫어져도 참고 꾸준히 지켜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더 크게 빛을 발한다.
이 매거진에서는 부정의 언어와 생각투성이인 자아가 긍정과 도전의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의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