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아, 다 같이 만날래?"
모처럼의 일요일, 잘 걸을 자신은 없지만 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꽤 긴 거리를 걸을 예정이라 걱정은 되었지만 이렇게라도 걷지 않으면 걷기의 마중물을 챙기지 못할 것 같아 얼른 신청하고 당일 출발장소로 향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혼자서 8-10km 거리는 걸어낼 수 있습니다. 최근 체중이 불기 시작하면 점점 걷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나도 모르게 군것질 거리가 집 여기저기에 쌓여가게 되는데,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었기에 주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참이죠.
모임장소에서 만난 몇 분과는 반가움의 인사를 하고 그녀와 조우했습니다. 늘 다정한 그녀는 다른 분들에게도 칭송을 많이 받습니다. 친구로서 그녀가 참 예뻐 보입니다. 그녀를 좋아한다던 A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녀가 반갑게 "A 왔네. 많이 달라져 보여. 다이어트했어?" 고개 들어 보니 A가 서 있네요.
나 : "오~~ 살 빠졌네."
그녀 : "어디가? 모르겠는데?"
나 : "왜~ 턱선이 갸름하잖아"
그녀 : "OO아 넌 A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 A가 있으니 그렇게 좋아? A야, 네가 오니까 OO이가 너무 좋아하네!!!"
도대체 이게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발견하고 살 빠짐을 말해놓고 처음 듣는 것처럼 모르겠다니요. 아무리 내가 돌아서면 까먹는 단기 기억상실증 증세를 갖고 있다고 해도 금방 들은 말조차 기억이 안 날까요? 그리고 좋아하긴 뭘 얼마나 좋아한다는 걸까요? 거의 일 년 만에 모임을 나갔으니 일 년 만에 만났으니 반갑기야 하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좋아한다는 문장을 쓰기에는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A라는 녀석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그녀가 내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불편하고 부담스럽다고 A와 자신을 엮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자꾸 나랑 어울린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그 녀석을 너무 좋아한다고 합니다. 나야 별 다른 사심이 없으니 동생처럼 편히 말을 하고, A도 생각보다 편히 대하는 듯 합니다. 당연히 일회성의 대화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녀의 표현을 써보자면 "난 A랑 전화통화 안 해. 번호도 지웠어."(어쩌라고... A를 소개한 것도 그녀, A에게 내 번호를 준 것도 그녀, A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그녀...)
"그래 그래 잘했어. 니 편한 대로 하려무나~"
아래는 예전의 대화를 잠시 인용한 것입니다.
그녀 : "그날 네가 A와 정말 알콩달콩 하고 있는 거야. 아유 가까이 낄 수가 없더라~"
나 : "뭔 소리야? 네가 B님과의 대화가 끝이 없길래 A랑 말하고 있었을 뿐인데, 왜 둘이서만 얘기한다고 하는 거야? 그날 들어온 후 한 시간 넘게 둘이서만 대화하고 있었잖아. 난 그날 A와 처음 말문을 텄을 뿐인데~ 뭔 다정씩이나 같다 붙이냐~~~ 한참 어린 동생뻘이니 편히 대했을 뿐이지. 그럼 정색하고 있냐? 뻘쭘하게. 아님 대화삼매경에 빠진 너를 빤히 쳐다 보고 있으리?."
그녀 : "아닌데, 너네 둘이 너무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길래 말을 못 걸었어~"
나 : 처음으로 A와 대화한 건데 뭔 다정씩이나 말하겠니? 모임 때마다 매번 함께 다녔던 네가 더 친하겠지. 이런 말 들으니 불편하다. 앞으로 너무 잘 어울린다. 다정하다 이런 말은 삼가자. 괜한 구설수 만들기 싫으니까~ 그리고 A랑 나랑 다정해 보이는 게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는 거 한 번은 생각하고 말하기 바란다~"
수일이 한참 지난 후(우린 대락 한 달~3개월에 한 번 통화하는 정도이다)
그녀 : "OO아. 곤란할 수 있으니 A이야기는 하지 말자~"
나 : "응 너만 안 하면 돼~"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어떻게 그 녀석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냐니? 먼저 알아본 것은 그녀인데? A에게 희망고문의 여기를 남기려 해서 그러지 말라고 말려준 것이 나인데? 정색을 하고 말할 때는 어투가 딱딱해지는 편이라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나는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결국 마음 단단히 먹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나 : "A와 나를 엮는 말 하지 마라~"
그녀 : "아니~ 난 너와 너무 잘 어울리니까~"
나 :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 너 생각이고. A와 엮일 수 없고, 엮여서도 안 되는 거지. 가벼운 대화일 뿐이야. 그 이상 할 게 없지. 나는 네가 그 녀석과 엮여서 말하는 거 듣기 싫다 해서 전혀 말하지 않는데, 넌 아무 상관없는 나를 그 녀석과 엮는 거냐? 네가 듣기 싫은 말이면 나도 듣기 싫다는 거 생각 못하니? 앞으로 절대 하지 마라~"
그녀 : "응 알았어~"
평소 모임에서 보는 그녀는 사람들에게 정말 친절합니다. 그녀도 사주에 병화가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다정하죠.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는 말은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알게 됩니다. 즉 본인이 다 말하는 거죠. 사실 자발적 아웃사이더인 필자는 모임에서 아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매회 모임마다 참석하는 것이 아니어서 나로서는 일회성 만남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활동하시는 분들은 적당한 거리에서 그들을 보게 되죠. 그들에게 필자는 가끔 나오는 회원 정도의 의미입니다.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면 상황과 사건의 중심에는 그녀가 있습니다. 그녀의 외형은 누구나 호감을 가질 만큼 환한 미소와 친절한 애티튜드가 있어 많은 분들이 좋아하고 편히 대하더군요. 반대로 자발적 아웃사이더인 나는 아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친구가 있으면 친구 옆에서 같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혼자 걷습니다. A이던 리더이던 혹 그날 만난 분 중에 대화가 잘 통하는 분이 있으면 공감이 되는 주제로 그날의 대화만 할 뿐이죠.
여지없이 이번 모임에서도 어떤 분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 불편하다며 내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녀의 귀띔이 아니라면 전혀 알 수 없죠. 이미 들은 것이 있으니 옆에 함께 있어줄 뿐입니다. 필자는 그 사람에 대한 얘기는 전혀 건네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난 그분을 전혀 모르니까요. 싫다고 하니 싫은가 보다 하는 거죠.
약간의 황당한 감정을 겪은 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자신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많이 얘기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하는 데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거나, 일면식도 없는데 자신을 함부로 대한다거나 등의 얘기인데요. 뉘앙스가 부정적인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모임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서도 늘 모임에 나갑니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의 중심에서 햇살처럼 빛난 미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뭘까요?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다거나 라는 결론적인 의미보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귀로 듣고 흘리자니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상대가 한 말을 너무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서요. 모임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들게 만든 하루였습니다. ㅠㅠ
이 글도 부끄럽지만 밖으로 내 보냅니다. 생각 정리가 필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