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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엄마, 내 엄마

by Sonia

"언니야, 언니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런데?"

"왜? 엄마가 또 뭐라 했어?"

"늘 난 삼월이냐고~ 하다 하다 새언니들 삼월이도 모자라서 조카 삼월이를 해야 해? 도대체 울 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

"나도 가끔 내 엄마가 참 싫다~"


여기까지 들으면 나와 언니는 이복 자매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한 동복자매다. 그리고 때로는 미운 엄마인 언니 엄마가 내 엄마다. 엄마에 대한 소심한 반항으로 화가 나면 아니 속상하면 언니 엄마라고 칭한다. 언니도 때로는 엄마가 없다. 평소에는 아들 엄마니까 말이다. 내가 하소연할 때는 어김없이 언니 엄마가 된다. 그럴 때 언니에게는 어떤 엄마가 될까?


"너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봤니?"

"아니 완결될 때까지 안 볼 거야. 한 번에 몰아보려고. 유튜브로 대충 줄거리는 보고 있어."

"너 그거 보면 울걸?"

"언니야, 양관식과 오애순은 드라마에 있어. 현실에는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사는 나의 세상에는 없었어."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긴 하다"


왜 현실에서는 양관식과 오애순은 없을까? 분명 어딘가에 누군가의 아빠, 엄마로서의 양관식과 오애순은 존재하고 있을 테다. 실존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이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다만 예전 언젠가의 나에겐 세상 다정한 그분들은 없었다. 아니 없었다고 생각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시청자의 영혼을 달래준다.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고 원망 가득했던 성장이 멈춘 어른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 준다. 마치 말없이 아이들의 등을 두드려준 양관식 아빠처럼 말이다. 드라마 속 엄마와 아빠는 세상 한없이 넓은 바다였다. 바다에 아픈 속, 미운 마음, 짜증 다 내뿜어도 밀물처럼 다가와 그 마음 안고 썰물처럼 물러난다. 지를 만큼 지르고 나면 다음 밀물 때까지는 살만해진다.


세상의 자식들도 다 그럴까? 미안해서 짜증 나고 속상해서 짜증 나고 고마워서 짜증 나는 것이 자식이다. 양금명이 한없이 부러웠다. 짜증 내도 괜찮은 엄마 아빠가 있어서 부러웠다. 사람으로 대해주는, 아니 인생의 1번으로 대하는 부모여서 부러웠다. 난 늘 스스로 엄마의 다섯 손가락 중 안 아프고 미운 손가락이라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속내가 서운하고 화나고 미웠다. 난 바라는 것이 없는데 엄마는 왜 이렇게 바라는 것이 많을까? 나에게서 못 빼앗아서 안달 났다고 생각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엄마를 다 알지 못한다. 그저 엄마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당신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가니 이제는 눈치를 보고 있을 것 같다. 당신 성질 대로 하다가는 본인만 피곤해질 것이라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엄마는 말했다. 부모복 없으면 남편복 없고, 남편 복 없으면 자식복이 없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아주 일찍 병으로 돌아가신 것과 외할머니의 재가로 어린 시절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엄마의 마음 한켠이 늘 빈 채로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 했던 그 아이가 눈에 보였다.


어느 날 엄마가 미우면서도 안쓰러운 막내딸과 그 딸이 제일 필요한 엄마가 오랜만에 다정한 사이로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날이 생겼다. 문득 엄마의 어린 날이 궁금해졌다.

"외할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냐. 재산 많았다면서 엄마는 왜 무일푼으로 시집갔어?"

"(엄마의) 할머니가 엄마(외할머니)를 서둘러 시집보냈어. 그 시절에도 꽤나 예쁜 얼굴이어서 혼자 사느니 좋은 곳으로 재가하는 게 낫다면서 안 간다는 사람을 보냈어"

"안 가면 되지? 그냥 자식이랑 산다고 버티면 되지~"

"그게 그렇게 안 되는 것 같더라. 20대의 젊은 나이에 쉽겠니?"

"외할아버지 재산은"

"그 시절에는 누구 명의라고 할 수 없지. 할머니가 그거 갖고 큰아들네로 들어가신 것 같더라. 나중에 크고 나서 대충 눈치를 챘다. 근데 뭐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그때는 그랬어"


엄마는 무남독녀로 외할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엄마 표현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해야 하고, 먹기 싫은 것 안 먹고, 갖고 싶은 것 안 사주면 어디론가 숨거나 굶거나 했다고 한다. 그런 고집쟁이 딸을 보면서 외할머니는 부지깽이를 들다가도 결국 달래려고 밥만 먹으면 다 해준다며 빌었다고 한다.


엄마의 어린 시절을 듣노라니 엄마와 엄마의 엄마 사이는 좋아 보였다. 적어도 생떼도 부려보고, 짜증도 내고, 고집도 마음대로 피워봤구나 싶어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괜한 심통을 부렸다.

"그래도 엄마는 하고 싶은 거 다 했네 뭐 짜증 부려도 받아주시고, 나는 안 받아줬잖아~"

"내가 언제 그랬냐?"


누구나 그렇듯 엄마에 대한 기억은 나만의 오롯한 기억이다. 엄마는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도 있고, 딸이니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난 한 번도 엄마가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때론 어디서 들어온 업둥이 일까도 고민했다. 그런 고민은 큰언니가 한방에 해결해 줬다.

"엄마가 널 낳는 거 봤어"

주변에서는 나와 엄마가, 나와 형제들이 너무나도 판박이 마냥 닮았단다. 같이 살아서 닮은 것만은 아니겠지?



엄마 이야기를 바탕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어른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엄마를 극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야 사춘기와 갱년기를 한 번에 앓는 중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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