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네가 아픈 게 뭐라고

by Sonia

몹시도 배가 아팠다. 위가 아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3이 되기 전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 시간 이상 걸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작은 내 방 한 구석에서 이불도 펴지 않은 채로 베개만 베고 누워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오면 다 나을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편두통과 어지러움에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략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은 5시 전후였던가? 까무룩 잠이 들었었나 보다 주위가 조금 어둑한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오나 보다 싶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서 "엄마, 나 여기 있어~"라며 엄마를 불렀다. 벌컥 열리는 문 뒤로 짜증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엄마의 뒤엔 아무도 없었다.


"밥 안 했니?"

"나 아퍼, 배가 아퍼"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들어온 엄마는 나를 힐긋 보고선 발로 나를 차버렸다. 엄마 퇴근하면 배가 고플 건데 밥도 안 차려 놨냐는 짜증을 내면서 말이다. 내가 아프다는 말에 "네가 아픈 게 뭐라고~"라는 말을 내뱉었다. 엄마가 돌아오면 계란이 풀어진 하얀 죽에 올려진 참기름 한 방울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따뜻한 엄마의 손이 내 배를 쓰다음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걷어 차인 몸뚱이가 한없이 비루했다.


아프다는 자식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이 쓰리지 않을 정도로 엄마를 화가 나게 한 이유는 뭐였을까? 지독한 배고픔? 함께 퇴근했지만 어딘가 사라진 아빠로 인한 화?


훗날 이 이야기를 언니들에게 했을 때 아마도 아빠가 원인이었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작된 엄마살이(?)라고 했었다. 언니들도 이미 그때쯤 겪고 있었단다. 자신들도 저녁을 차려둬야 했었단다. 집안일도 하기 시작했었단다. 5남매의 막내였던 나는 언니들과 8-10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꼬맹이였던 나는 언니들의 엄마살이를 알 수 없었다. 결혼한 언니, 서울에서 취업한 언니들로 인해 공백이 생겼을 뿐이고, 그 뒤로는 아들들이었으니 엄마살이는 중단된 것이다. 귀한 아들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는 엄마였으니까


밥통에 있는 밥과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저녁을 준비하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다만 자식이 아픈 데 공감을 하지 않는 엄마가 미웠을 뿐이다. '아프냐? 죽이라도 먹고 약 먹고 쉬어'라는 말과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렸던 어린 소녀는 서러움 하나를 적립했다.


--------------------------------

그 소녀는 중년이 되어서도 덜 자란 어른아이가 되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내면 아이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이제 웃어도 된다고 안아주고 싶었다.

하나씩 꺼내어 대화하고 이젠 지우자며 기억 지우개를 꺼내 들었다.


오늘 지운 것은 그때의 미성숙한 엄마였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갑자기 대가족 살림을 떠맡은 그녀, 부족한 살림에 보태기 위해 취업전선 뛰어든 그녀, 친구들과 노는 게 좋은 남편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녀.

엄마 역시 벅차고 힘들고 도망가고 싶었을 것 같다. 자신의 마음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솟구치는 화를 감당하지 못해 만만한 곳에 자신도 모르는 화풀이를 하면서 풀고 있었던 마음이 어린 엄마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언니 엄마, 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