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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빛 Feb 02. 2023

코끼리 밧줄에 묶이지 말자

간호단원의 한국어 수업

 내가 활동했던 지역, 프레이벵에는 VIC(Veterans International Cambodia)라는 NGO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기구로 출발하여 지금은 완전히 현지화가 되었다고 한다. VIC에서는 신체에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위해 재활 클리닉, 팀하우스(기숙사), 다양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잠시 다녀간 일본인 NGO 단원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위해 자이카 단원 Chiemi에게 한국인인 나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Chiemi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VIC 담당자를 만났다. 귀국이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수업을 단기간 밖에 할 수 없고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바쁘면 언제든지 수업을 빼먹어도 되고 내가 시간 날 때 가르쳐 달라고 했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기만 하다면 무조건 좋다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그 예쁜 거짓말에 속아 매일 저녁 VIC 여자 기숙사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재활 클리닉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수업을 듣고 싶어 해서 해가 떨어지는 저녁에 수업을 했다.  

 예상과는 달리 매일매일 수업을 해야 하고, 깜깜한 기숙사 마당에서 달려드는 벌레들과 맞서 싸워야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왜 한국어를 배우고 싶느냐는 질문에 돈을 벌기 위해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여느 캄보디아인들과 달리 자신들이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 일도 해보고 싶고, 문화도 배우고 싶다는 학생들의 말과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임을 보여주는 학습 태도를 보며 많이 반성하고 배우게 된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이 재미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렇게 반짝거리는 눈빛들을 3개월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친구들은 영어에도 높은 학습 의욕을 보였다.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Peace Corps 단원 Peter와 Alec을 소개해 줬다. Peter와 Alec 모두 관심을 보였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아직 수업을 시작하진 못했다. 외국어에 대한 열의가 이렇게나 대단한데 왜 일본어는 배우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학생들은 익살스러운 웃음을 띠고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선생님(나)을 소개해준 일본인이 일본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했었는데 됐고, 한국어 배우고 싶다고 그랬어요!”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불난데 기름 부은 거 마냥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한국어 수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는 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가장 기초인 ‘-이예요’와 ‘-예요’의 차이점도 이때 처음 알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은 이 두 어미의 쓰임의 차이를 알고 계시나요?) 학생들이 선생님 이건 왜 이렇게 쓰나요? 저건 왜 저렇게 쓰나요? 하고 질문을 할 때마다 진땀을 빼곤 했다.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당연히 사용했던 말들의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법적인 요소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니까. 그래서 단원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해서 한국어 교원 3급 과정을 들었다. 비록 거의 바로 취업을 하고 다시 ODA프로젝트 현장관리자로 캄보디아에 돌아가는 바람에 자격시험은 못 봤지만. 뭐든 배워두면 쓸모가 있다고 하더니 진짜다. 봉사가 아닌 직업으로써 캄보디아 사람들과 일을 하는 건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때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쓸 예정이다.


 사실 처음 한국어 수업을 부탁받았을 때 살짝 고민했었다. 현지적응훈련 기간, 어느 한 선배 단원에게 현지인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들어주다 보면 너무 힘드니 적당히 자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미국의 코이카인 Peace Corps 단원 Sam이었다. Sam네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란적이 있다. 코이카 단원들은 비록 개도국이긴 해도, 지방으로 파견되더라도 보통 그 지방의 시내에서 활동한다. 단원의 안전 문제 때문이다. 집에는 세탁기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 변기와 샤워기도 있다.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당연히 집에 있어야 할 이 물건들을 Sam은 굉장히 부러워했었다. Sam의 집을 보고 그 이유를 실감했다. 개도국에서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어떤 집인지 설명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 집에서도 방 한 칸을 임대해 현지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생활비도 자비였다. 쌤은 자전거를 타고 프레이벵 곳곳을 누비며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또 어디 있을지 일일이 찾고 문을 두드렸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한국인인 나에게 가장 많이 요청한 것은 한국어 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호 단원이란 코끼리 밧줄에 묶여 내가 파견된 기관의 초등학생들을 위한 활동과 간호 분야의 일 외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캄보디아인이 한국인 봉사자인 나를 보며 제일 먼저 기대할 수 있는 게 한국어인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말이다. 나는 코이카에 취직한 것도 아니고, 캄보디아에서 보건 교사로 취직한 것도 아닌데 왜 주어진 일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까? ‘나’라는 사람이 아주 작게라도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마음, 코이카에 지원하고 처음 캄보디아에 발을 내딛었을 때의 열정 가득했던 초심을 다시 끄집어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다 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 정말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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