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할 수 있는 작고, 가볍고, 쉬운 취미들

이런 것도 취미가 됩니다

by 구어령
#1. 그 돌의 속사정, 작은 돌 수집


돌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용암이 굳어 생긴 화성암, 퇴적물이 쌓여 생긴 퇴적암, 열과 압력을 받아 성질이 변한 변성암이 그것이다.


한라산에 있는 화성암이라면, 그는 엄마의 땅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토박이인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 있는 돌이라면, 게다가 어느 담벼락에 파묻혀 한쪽 볼만 간신히 내밀고 있는 신세라면, 우리는 그의 엄마도, 고향도, 그가 누구인지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


골목길이나 아파트 화단에 굴러다니는 돌들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는 돌을 낳지 못하니까. 도시의 돌은 모두 생이별당한 고아인 셈이다. 그래서 도시의 작은 돌을 모은다는 것은 도시인으로서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데려와 씻기고 살펴, 적어도 엄마가 누구였을 거라는 이야기는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그들의 사정을 엿보다 보면, 우리의 오늘에 더 감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일에 대단한 일, 하찮은 일의 구별 같은 것은 없다. 오직 내가 즐거워하는 일만 있다. 마음이 가야 깊이 보게 되고 좋아하게 된다. 작은 일이라도,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이더라도,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서 당신의 즐거움을 만나게 될 것이다.


#2. 내일 퇴사해도 한 그루의 나무를, 나무심기


꼭 식목일에만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꼭 지구를 위해서만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억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살아보고 싶은 풍경이 있다면, 그저 세상에 무언가를 남겨보고 싶다면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 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채울 수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나만의 나무를 심어 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지만, 내 것이 세상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곳에서 자라고 있을 그 나무를 떠올려 보는 것 만으로 순간은 여행이 되고 추억이 될 테니까.


‘묘목’으로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나무에 따라 다르지만 1~2년 정도 자란 유실수 한 주 가격이 보통 1~2만 원 선이다. 나이가 많아지면 당연히 가격도 많이 올라간다. 택배로도 받아볼 수 있고 소량구매도 가능하니 당장이라도 시작해 볼 수 있다.


주의할 점은 다른 사람의 사유지에 심을 경우 나무는 땅주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뽑아버려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오래오래 보고 싶다면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곳에 심는 것이 좋다. 또 한 가지, 나무도 생명이다. 잘못 심으면 서서히 죽어간다. 자주 가볼 수 없는 곳에 심는다면, 꼭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확인하고 만들어주어야 한다.


한 그루의 나무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그렇지만 한 그루, 한 그루와 시간이 만나 거대한 숲을 이루어 내 듯, 내 삶도 그렇게 조금씩 풍성해져 갈 수 있다.


#3. 결국 마음이 떠나야 여행, 퇴근여행


출근길은 늘 바쁘다. 집에서 조금 여유 있게 나와도 저 멀리 열차 문이 열리면 나도 모르게 뛰게 된다. 굳이 안 뛰어도, 이다음 다음 열차를 타도 늦지 않을 시간이지만, 일단 뛴다.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급한 탓이다.


그래서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시간은 퇴근길이다. 출근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집에 가야 할 시간은 내가 정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면 하루쯤은 퇴근길 여행을 떠나보자.


늘 타던 버스에서 내리지 않으면 된다. 늘 내리던 역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내리면 된다. 가본 곳이어도 좋고 안 가본 곳이면 더 좋다. 여행이라고 마음먹으면 그 시간은, 그 장소는 또 새로운 곳이 될 테니까.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온다면 우리 동네도 여행지가 된다. 처음 와 본 사람의 마음으로 퇴근길에 가볼 수 있는 곳들을 하나, 둘 둘러보다 보면 그곳이 바로 여행지가 된다.


몸이 떠나도 마음이 떠나지 못하면 여행이 아니다. 바다 건너 휴가를 가도 회사에서 계속 연락이 온다면 쉬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음이 떠나야 여행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의 모든 일이 끝난 퇴근길은 여행하기 참 좋은 시간이다.


#4. 상처도 예술이 된다, 판화


판화를 만드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과 비슷하다. 상대를 내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집요하게 상처를 입힌다. 상대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저 상처를 입을 뿐이고 점점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되어 갈 뿐이다.


판화와 사람의 다른 점은, 사람에게 있어 이 상처 입힘이 쌍방향이라는 것이다. 상처를 입고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상대도 같이 칼을 들고 나를 향해 자기만의 그림을 완성해 간다. 그렇게 상상하는 이상형을 그려가다, 잘 되면 데칼코마니가 되고, 안 되면 서로 상처만을 가득 안고 돌아선다. 판화는 그럴 걱정이 없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될 때까지 원하는 만큼 상처를 낼 수 있다.


상대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의 상처가 그렇듯, 판화도 한 번 잘못 파면 되돌릴 수 없다. 파냈던 조각을 그대로 붙여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흉터는 남는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의 상처는 내 마음까지도 상처를 낸다. 그래서 한 칼 한 칼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온 신경을 쏟았기에 완성되었을 때 성취감은 더 크다. 롤러에 잉크를 묻혀 한 장 찍었을 때 내가 생각한 바로 그 모습이 거기 있다면, 예고 없는 상여금처럼 마음이 꽉 찬다. 게다가 판화는 나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다양한 판화 재료를 인터넷으로 살 수 있지만, 시작은 고무판화를 추천한다. 학창 시절 했던 그것, 그 고약한 고무 냄새가 나는 바로 그것 말이다. 칼질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싼 재료를 사놓고 후회할 수도 있으니, 학창 시절 추억도 떠올릴 겸, 처음은 부담 없는 것이 좋다.


판화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번호를 붙인다. 작품 아래 3/20라고 쓰여있으면, 이 판화는 세상에 총 20개밖에 없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그중 3번째로 찍은 작품이란 뜻이다. 그래서 판화는 분모, 분자의 숫자가 모두 작을수록 가치가 높다. 당신의 작품에도 그런 번호를 붙여보면 어떨까. 처음 만든 작품은, 호기롭게 1/1로 하는 것도 좋겠다.


#5. 다시 꿈틀거리는 어린 날의 욕망, 펜 돌리기


학창 시절 펜 한 번 안 돌려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부가 아닌 다른 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던 시절, 책을 펴놓고도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가 펜 돌리기였으니까. 나름의 성취감도 높았다. 마치 프로펠러처럼 손등에서 흔들림 없이 돌 때면, 손가락 사이에서 미꾸라지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무대에 선 마술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펜 돌리기를 잊어 갔던 건 더 이상 숨어서 놀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직장인이 된 지금 펜 돌리기가 절실하다. 우리의 모니터는 밝다. 멀리서도 일을 하고 있는지 쇼핑을 하고 있는 한눈에 알 수 있다. 책을 보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일도 없지만 마음 놓고 놀지도 못하는 상황, 바로 이때가 펜을 돌릴 시간이다.


화면에는 업무용 자료를 띄워놓고 뚫어져라 모니터를 주시한다. 그리고 손으로는 펜을 돌린다. 손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도 집중하는 눈으로 바뀌게 된다. 누구 하나 지적할 수 없는 완벽한 놀이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터넷에 ‘펜 돌리기’를 검색하면 관련 커뮤니티는 물론, 다양한 강의 동영상과 돌리기 전용 펜까지 구입할 수 있다. 펜 돌리기 세계 대회도 열리고 당연히 세계 챔피언도 존재한다. 더 이상 숨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다시 어린 날의 욕망을 마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