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올린 지 5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1년에 한 번 정도는 들렀던 것 같다. 예전 티스토리 시절에 쓰던 계정이 휴면은커녕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뒤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나 로그인했다, 살아있다, 그러니 내 계정 지우지 마!" 뭐 이런 마음.
그러다 이제 다시 글을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전부터 시작된 희한한 느낌 때문이다. 이런 느낌이다. 지인과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데 그 사람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 거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고, 나도 수 없이 겪어 봤던 상황이다. 그런데... 그 기억 안 나는 느낌이 예전의 기억 안 나는 느낌과 뭔가 많이 달라진 것이다.
'예전의 기억 안 남'은 꽉 차있는 바탕화면에서 필요한 파일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 다 있는데 단지 복잡해서 찾지 못하는, 기억해 내고 찾아내는 시간과 스킬의 문제 같았다. 그래서 결국 기억해 냈을 때 기분도 좋고 스스로 대견한 기분도 들고 그랬다.
그런데 '요즘의 기억 안 남'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머릿속이 온통 찐득한 슬라임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안에 내가 알던 것들이 인절미 가루(이걸 생각해 내는 데도 꽤 걸렸다.)가 되어 섞여 있는 느낌이다. 무언갈 끄집어 내려해도 그 찐득함에 속도가 나지 않고, 막상 꺼내었을 때도 이것이 내가 찾던 것인지 확신이 바로 서지 않는다. 다행히 맞았다 해도, 그 과정에서 손에 묻은 찐득한 것들 때문에 어딘가 찜찜함이 남는다.
문제는 이 느낌이 단지 기억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무실에서 양치를 하려고 일어났는데 막상 화장실에 가 보니 빈손이고, 열심히 적어 다이소에 갔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적지 않았고, 맛있는 걸 해 먹겠다고 캠핑을 갔는데 버너와 가스만 쏙 빠져있고, 해외 간다고 짐을 싸놨는데 딱 여권만 안 챙긴 일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이제 이 말을 내가 입에 달고 다니게 됐다. 그래도 아직 병원에 갈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노화의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기분이 곱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맨 정신에 건강하게 100살까지 사는 게 꿈인 나에게는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5년 동안 속된 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소기업 직장인에서 소기업 사장이 됐고, 한 달 한 달 월급날과 결제일만이 관심사였다. 글을 끄적일 시간 있으면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셨고, 생각할 시간 있으면 유튜브를 보며 내 생각의 시간과 퉁쳤다. 슬라임은 그렇게 단단해져 갔겠지.
내 머릿속 이 찐득한 슬라임의 확장을 어떻게 하면 줄이거나 늦출 수 있을까. 그래서 브런치를 다시 찾았다. 내 손으로 물을 섞고 휘져어 묽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적어도 내 생각과 기분과 마음을 들여다 보고 글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해놓고 보니 브런치에 글 쓰는 게 무슨 회춘의식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지금 저 '회춘'이란 단어를 생각하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런 거 보면 '회춘'까지는 아니어도, '회복'은 맞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기억하고,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을 온전히 할 수 있게 도와주니까.
5년, 시간은 그렇게 갔고, 나는 이렇게 됐고, 그리고 지금 다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5년 만에 이런 글 자체만으로도 기분이가 좋구나.
고마워요, 브런치. 자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