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연재 일기 _ 산티아고
D+13
206.4km
294,363 STEP
< Mansilla de las Mulas >
처음 이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지갑엔 1 달러가 있었다. 그냥 지갑에 1달러가 있었을 뿐, 돈이 없었다.
걷기 전부터 순례길의 대표 상징인 조개 모양 목걸이를 개발해 팔아야겠다 생각했고, 순례길 첫날 12유로에 목걸이를 판매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산티아고가 시작됐다. 시간이 나면 하루에 한 개 또는 두 개 정도 목걸이를 만들었고, 목걸이가 팔린 돈으로 생활을 유지한 지 2주가 됐다.
액세서리가 팔린 날은 삶의 질이 업그레이드됐다. 텐트에서 숙소로, 빵에서 샌드위치로.
여행 초반에는 돈을 아끼는 것에만 집중했다. 편한 잠자리 보다 현지 민박집에 자거나 탠트 노숙을 했고, 요리를 해먹을 수 있을 때에는 파스타 면에 소금을 처넣은 염 파스타를 해 먹는 적도 있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항공료를 포함해 소비한 돈이 280만 원이었으니, 정말 악착같이 여행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각종 법칙이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말을 거는 사람과 대화하지 마라.’
‘밤에는 혼자 걷지 않는다.’
‘일몰보다는 일출.’
그중 하나가
‘만원이면 하루 여행.’이었다.
만 원짜리 밥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이 식사가 내 마지막 여행 하루와 바꿀 가치가 있는지를 고민했다.
5만 원짜리 투어를 할 때에도 이 투어가 나의 마지막 여행 5일과 맞바꿀 가치가 있는지를 다시 한번 고민하고 선택했다.
약 900일이 지났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나의 호불호를 알아가고, 주관이 강해졌다.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가끔은 궁상맞고, 구차 해질 때도 있었다. 사실 이 여행은 아직도 지속 중이므로, 오늘도 텐트를 치고 잠을 자겠지. 탠트에서 자는 것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때로는 귀찮고, 외롭고, 무섭다.
오늘은 참 사람이 그립다. 친구들. 가족들.
친구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이라 하고, 가족은 한집에 함께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친구와 가족이 없이 지낸 지 오래됐다. 나는 어느 면에서 참 감정적인 사람인 것 같다. 외로움, 헤어짐 이 두 가지 감정은 아무리 반복돼도 그때마다 마음을 후벼 파 공허하게 만들어 버린다.
만원에 하루 여행도 좋지만, 식당에서 밥다운 밥을 먹고 숙소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