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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피스 천문대, 음악으로 기억을 추억하는 법

LA 다섯 번째 이야기

by summer


여행은 많은 감각을 이용할수록 기억이 강렬하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계획한 여행지마다 상황에 따른 테마곡을 정해 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비가 오면 paris in rain을 들어야지' 라거나 '연말 여행엔 last christmas를 들어야지' 따위의 생각 말이다.



유치한 것 같지만 한국에 돌아와 우연히 그 노래를 듣게 된다면 노래를 듣던 순간의 기억과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져 일상 속에서 설렘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정한 테마곡들이 있었다.



첫 번째, 포틀랜드에선 Billie Eilish


두 번째, 미국에선 백예린의 'Square' 앨범 수록곡


그리고 세 번째, 그리피스 천문대에선 'LaLa Land' ost



나는 영화 촬영지 방문에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닌데 라라랜드의 그리피스 천문대는 꼭 가야 했다. 보랏빛 일몰이 펼쳐지는 하늘과 화려한 야경을 보며 lalaland 노래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피스 천문대에 가는 날은 고되었다. 올라가는 방법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셔틀버스 정거장이라며 기다리던 곳엔 버스가 멈추지 않았고, 현지인들도 왜 멈추지 않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결국 힘들게 우버를 불렀는데 올라가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돈은 돈대로 내고 기대했던 일몰마저 택시 안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택시에서 내렸을 때는 새빨간 태양빛이 지평선 위로 얇게 남아 있었고, 금방이라도 새까만 밤이 될 것 같았다.




태양은 금세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유명한 LA의 야경이 펼쳐졌다.


자동차 불빛인지 건물 불빛인지 모를 빛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J는 준비해온 것이 있다며 폰을 들어 보였다. LALALAND ost였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라라랜드라니! 정말 뻔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만큼 로맨틱한 것도 없었다.

우리는 한참을 같이 서서 야경을 내려보다가 잠깐 각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폰 줄을 타고 들려오는 'A Lovely Night', 그리고 마치 준비된 무대처럼 선율에 맞춰 반짝거리던 야경들.

그 순간 온 우주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내 세상의 중심은 나고 주인공도 나라는 것을 실감한 느낌이었다.

지금도 가끔 lalaland의 'A lovely night'을 들을 때면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느낀 충만감과 황홀함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항상 음악에 기억을 덧씌운다고 하는데, 이것은 여행에서의 꿈같던 추억을 현실로 가져오는 가장 낭만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추억의 빛이 바랠까 봐 좋아하던 노래를 자주 꺼내 듣지 못한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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