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네 번째 이야기
LA 일정을 짜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 디즈니랜드, 그리피스 천문대, 산타모니카 유명한 명소들을 다 가는데 정작 LA 다운타운을 본다는 계획은 없었다는 것이다. 워낙 많은 콘텐츠를 품고 있는 도시라 정작 진정한 LA는 내 관심에서 조금 빗겨 난 듯했다.
우리는 The broad를 가는 김에 다운타운을 구경하기로 했다. 루트는 주로 구글맵을 통해 정해졌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Bradbury building
1893년, 백만장자 브래드버리가 의뢰하여 지어진 이 빌딩은 미국 국가 역사 기념지로 지정되며 LA의 건축 랜드마크가 되었다. LA엔 특히 독특한 건축물이 많았는데 브래드버리 빌딩은 그중 하나였다.
센트럴 마켓의 건너편, 블루보틀 옆에 위치한 빌딩은 무료로 개방되어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관광객에게 허락된 공간은 아주 제한적이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나 구조물을 구경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브래드버리 빌딩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붉은 자재들과 철제 난간이 눈에 들어오는데, 클래식하면서 묘하게 세련된 모습이었다.
바로크나 로코코처럼 옛 건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식 건물도 아닌 것이 이상하게 매력적이었다. 현재는 경찰청의 일부 부서 및 정부 기구들이 입주해 있다고 하는데 뭔가 '브루클린 나인 나인'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의 건물이었다.(브나나의 배경은 뉴욕이지만)
두 번째 명소는 Grand central market
이곳은 얼마 전 서울 코엑스에 상륙한 에그 슬럿으로 유명한 마켓이다. 1917년부터 LA에 자리 잡은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다양한 먹거리와 간식거리를 팔아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J는 에그 슬럿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매장을 한 바퀴 둘러싼 줄을 보더니 곧장 먹고 싶지 않아 졌다고 말을 바꿨다. 실제로 에그 슬럿은 센트럴 마켓 맛집으로 소문나 한국인 관광객들이 노리는 메뉴였다. 당시에 '한국에 생길 거야. 생기면 가자'라고 했는데 정말 생길 줄이야.. 한 후기에선 에그 슬럿을 먹기 위해 2시간이나 기다렸다던데 우리는 사서 고생하지 말자며 빠르게 포기했다.
센트럴 마켓은 정말 넓었다. 그리고 내가 다녀본 웬만한 시장들보다 맛있어 보이는 메뉴가 많았다. 일식부터 양식까지 없는 게 없었다. 나와 J는 식성이 비슷한 듯 다른 터라 각자 먹을 것을 사고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미리 봐 둔 해산물 가게로 향했다.
가게의 이름은 prawn. 새우라는 뜻인데 주로 유럽-미국의 해산물 요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프랑스식 홍합탕부터 시애틀식 해물탕, 크램차우더, 해산물 튀김까지 각양각색이었다. 나는 직전까지도 결정을 못하다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메뉴를 주문했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주문한 메뉴는 'shrimp butter boil' 버터향이 폴폴 풍기는 국물에 밥과 감자, 옥수수콘, 새우가 섞여 나왔다. 언뜻 보면 개밥 같지만 맛이 한국과 미국 사이 어딘가에 있는 맛이라 술술 넘어갔다. 빠에야와 죽의 중간지점 같은 식감이었다. 맛은 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는데 간이 센 해물탕에 밥과 버터를 넣고 살짝 끓여낸 듯한 맛이었다.
Grand central market에서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 식당이었다. 물론 다른 맛집들도 많을 것이다. J는 멕시칸 푸드를 파는 가게에서 브리또를 사 먹었는데 이렇게 큰 부리또는 처음 먹어본다면서 좋아했다.
세 번째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Cathedral of Our Lady of the Angels, COLA)
나는 무교지만 외국에 나오면 종교 건물들은 괜히 한 번씩 들여다보게 된다. 그 나라의 문화와 사상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사들의 모후 대성당' 역시 LA 다운타운에 있었다. Union station에 가는 길에 잠깐 들렀는데 세련되고 독특한 건축양식이 인상 깊었다. 그동안 유럽의 고풍스럽고 화려한 성당들을 봐오다가 이런 현대식 성당을 보니 새로웠다. 건축에 관심이 많다면 한번 들러봐도 좋을 장소라는 구글맵 후기를 보고 간 것인데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뻔했다.
천사들의 모후(COLA)는 1994년 LA 대지진 이후 성 비비안나 성당이 파괴되고 2002년 새로 설립된 대성당이라고 한다. 내부는 무료입장이 가능해 잠깐 들렀는데 성당이 이렇게 현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내가 여행을 제외하고는 성당을 찾아다니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커다란 성당 안은 넓고 깔끔한 느낌을 주는데 기존 고딕 양식에 스테인글라스가 가득한 성당보다 캐주얼한 분위기였다. 아마 내가 LA에 살았다면 COLA에 오고 싶어서 종교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천사들의 모후에선 매주 수요일 오후 오르간 연주회도 진행된다고 하니 여행 간다면 시간에 맞춰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네 번째 'the last bookstore'
'the last bookstore'은 LA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이다. 2005년에 시작한 서점은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서점이 되었다고 한다. 새 책은 물론 헌 책도 볼 수 있고 레코드나 그래픽 노블 등 다양한 장르의 서적들이 구비가 되어있다.
방대한 서적의 수도 서점이 유명한 이유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the last bookstore의 포토존 때문일 것이다. 해리포터가 연상되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서점은 2층으로 올라가면 책으로 구성된 여러 포토존이 있다. 무지개 책장, 책동 굴 등 유명한 스폿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설 정도이다. 우리는 시간에 쫓겨 서점을 여유롭게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기록은 남겨야겠다며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책 한 권 정도 기념으로 사가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다섯 번째 'The broad'와 'Walt Disney concert hall'
더 브로드는 전 포스팅에서 소개한 LA의 현대 미술관이다. 재벌의 예술작품 컬렉션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기회. 다만 핫플레이스라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30분 이상 대기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옆 Walt disney concert hall은 월트 디즈니의 아내였던 릴리안 디즈니가 남편을 기리기 위해 착공된 음악센터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수 있지만 나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서 들어가 보진 못했다. 실제로 The broad 가는 김에 옆 블록에 있던 디즈니 콘서트홀을 보고 왔는데 두 건물 다 디자인이 독특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LA 다운타운엔 분명 더 많은 핫플레이스들이 있을 테지만 나 역시 시간에 쫓기며 보고 온지라 구석구석 구경하지 못했다. 짧은 여행으로는 아쉬운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