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 올린 것들을 따라가면서

그라나다 2

by 최열음

그라나다에서의 마지막 날 밤이다. 2박 3일을 위해 이곳에 왔단 게 믿기지 않는다. 이 작고 따뜻하고 붉고 아름다운 소도시. 내일 아침이면 그라나다를 떠난다.


아침부터 알함브라 궁전을 돌아보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알함브라 궁전은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다고 한다. 그라나다에는 두 포인트의 관광지가 있다. 하나는 그라나다 대성당이라는 시내 쪽 스팟, 하나는 알함브라 궁전이다. 그렇게 두 종교와 문화가 그라나다를 단단히 받치고 있다.


이곳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생기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인이 정말 많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동양인을 보면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인이냐고 물었는데 여기서는 보자마자 코리안이냐고 한다. 투어로 몇십 명씩 이동하는 사람들 틈에서도 한국어가 들린다.

알함브라 궁전은 가는 곳마다 이곳이 천국인가, 생각했다. 비록 이슬람 건축물이지만 그 자연과 색감과 평화가 어마어마했으니까. 몇 발짝 안에 포토존이 그득하다. 그치만 모든 곳이 포토존이 되어버리는 순간, 관광객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일단 가만히 걸어본다. 참을수록 가치로워지는 순간을 위해.


유럽 사람들이 자주 스페인을 찾는다고 한다. 그 햇빛과 열기 때문에. 비교적 우중충한 서유럽 쪽 사람들이 특히 광합성을 하러 내려온단다. 그 생각을 하면 좀 귀엽다. 레인부츠 신고 우산 들고 축축한 얼굴로 내려올 것만 같은. 가만히 앉아서 햇빛만 받아도 더 필요한 게 없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그라나다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 다양한 높이에서 그라나다를 본다. 조금씩 같고 또 다르다. 그라나다를 한눈에 담고 나니 그 속에 살고 있을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이름도 예쁜 그라나다에서 살게 된 사람들, 살고 있는 사람들.


저녁에 니콜라스 전망대를 올라가면서 기타 치는 예술가들을 봤다. 어쩐지 기타를 연주하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다 구슬픈 노래만 연주한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다 같이 들썩이면서 요란하고 경쾌한 연주를 하던데, 여기는 기본적으로 음이 단조다. 한 맺힌 우리나라 민요의 모양새다. 무수히 많은 언어와 함께 언덕을 올라간다. 다양한 언어 속에서 나는 자주 새로웠다가 또 서러워진다. 내가 얼마나 외딴곳에 떨어져 있는지 다시 실감하면서.


전경이 야경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모녀끼리 여행 오는 걸 곧잘 봤지만, 이들은 좀 달랐다. 둘의 화법이 너무 사랑스럽다는 점? 웬만해서는 싸우지 않겠다는, 장기 여행자의 배려가 묻어난다. 가족이라면 서로의 약점 포인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배려의 총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주 틱틱대게 되는데, 이 모녀는 서로를 극진히 배려해 주었다.

때로는 서로를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는 이들과 대화를 하다가 사진을 찍어주고, 같이 밥을 먹기로 한다. 서로의 첫 동행이 되어주기로 한 것. 너무 특별하고 신기해서 자주 몽롱해졌다. 실제로 매우 피곤하기도 했고.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경험을 묻고 우리의 폭도 넓어지게 됐다.


이 여행을 위해 스타벅스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교회에서, 집에서. 많은 날들을 끌어 모았던 걸 생각하면 어떻게든 즐기기만 하겠다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여행이란 게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까. 내 마음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인 거니까. 그 흐름에 몸을 맡겨보는 게 이번 여행의 미션인지도 모른다. 신의 마음과 생각대로 모든 게 흘러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