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로마에 도착한 후로는 자꾸 길을 잘못 든다. 오래된 도시기도 하고 조금 허술한 내 성격 탓이다. 구글맵을 보긴 하지만, 경로를 찍어놓지 않고 그냥 길을 따라가려고 하니 막히고 만다. 한국만큼 길이 잘 되어있을 거라고 짐작했던가. 로마는 길도, 건물도, 음식도 새것이 잘 없다.
여행을 하며 나는 시골보다는 도시가 더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밝고,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도시가 더 매력적이다. 더 안전하고. 언제나 안전한 쪽을 추구하는 나였다. 그래서 그렇게 스스로를 모험의 기회에 던져놓았는지도 모른다. 안락함에 길드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인지 길을 잘 못 들 때마다 불편하다. 평화와 안정에서 몇 발짝 떨어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서 이 퍼즐을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이 든다. 완벽한 여행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정도 완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의 나약함과 강점과 우선순위를 곧잘 파악하게 된다. 진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봐야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기 마련이다. 스스로의 밑바닥도 자주 경험하게 되고…
하루에 세 번, 사진 열 장 정도씩을 모아서 보내는 카톡방이 있다. 남자친구와 가족과 친구들 몇 명. 고정적으로 사진을 모아서 그들에게 보낸다. 생존 신고를 겸해서. 그 후 인스타에 올린다. 대체로 까칠한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편안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어딜 가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스페인보다 이탈리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한국에서 스페인, 스페인에서 이탈리아. 전자의 이동보다 후자가 더 어렵다. 많은 것을 스페인과 비교하게 된다. 날씨와 사람, 치안과 음식. 스페인 사람들은 겉과 속이 비슷해 보였다. 눈을 마주치기 전부터 웃고 있는 사람들. 알 수 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이탈리아인들은 일단 매섭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들은 어쩐지 집에 가고 싶어 보인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시의 첫인상도 쉽지 않았다. 테르미니 역 뒤쪽이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는데, 캐리어를 들고 내리자마자 실감했다. 캐리어와 함께 정신을 꼭 붙들어야겠다고. 거리의 모든 것이 자유분방했다. 갑자기 누가 시비를 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왓 더 헬, 이라고 외칠 마음의 준비를 계속했다. 외국어로 욕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 없었다.
어제 로마에 도착하고, 오늘 관광을 시작하자 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거리에 가득한 고대 유적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오래 지속된 것들에 대한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생겼다. 여전히 핸드폰과 가방은 꼭 붙들고 있지만.
겉과 속이 다른 로마, 그리고 로마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겉과 속을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그래도 겉바속촉인데, 나는 겉바속바일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촉촉하지 못한 나를 알기 때문에 자주 실망하곤 한다. 그래서 여행을 하다가도 자꾸 생각에 잠긴다. 여행지에서는 자기한테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억지로 덮으려다보면 어딘가 어긋나 있다. 솔직할수록 오래 남는 여행이 될 것이다.
오늘 일정은 계획했던 것과 정반대로, 그러나 무탈하게 흘러갔다. 그걸 견딜 수 없었는데, 자주 헤매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빈틈이 생겼다. 빈틈을 메우는 여행이 아니라 빈틈을 만드는 여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틈이 생겨도 괜찮다는 믿음, 어디에 있든 사랑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으니 충분하다는 생각. 로마에선 그걸 얻어간다. 아주 소중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