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렌토 2
올라, 쨔오 같은 인사들을 배우며 지낸다. 스페인어 그라시아스와 이탈리아어 그라찌에는 아주 비슷하다. 감사하다는 뜻이다. 감사하다는 말에 웃음을 준다는 것도 비슷하다. 겁을 먹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 여행이었다. 겁을 먹지 않았다면 오히려 빠르게 해결되었을 문제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발작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그것도 차차 고쳐나가고 싶은 부분이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는 것. 누군가의 열린 마음에 부지런히 응답하는 것.
최근에 느낀 것들. 여긴 너무 건조한데 먼지가 많아서 코딱지가 많이 생긴다. 그래서 얼굴에 기름은 잘 안 생기지만, 무언가 좋지 않은 것들이 붙는 느낌은 든다. 석회수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좋은 것을 보면 카메라를 드는데, 그걸 드는 동안 이미 지나가 있다. 그런 이유로, 찍힌 것들은 본 것들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기차 안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데 친구가 가리킨 곳에 바다가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탄성하며 카메라를 들자 터널이 시작되었다. 아주 오랜 터널이라서 카메라를 든 손을 내려야 했다. 아마 혼자 앉아 있었다면 보지 못했을 아주 파랗고 예쁜 바다였다. 레몬이 아주 유명하다는 아말피로 가면서 그곳에서 파는, 그러나 한국 다이소에서 사 온 레몬 사탕을 먹었다.
#2512. 소렌토 숙소의 공동현관문 비밀번호다. 2박 3일간의 소렌토 일정을 끝내고 이제 피렌체로 올라갈 것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이동해서 저녁 무렵 새로운 숙소에 도착할 것이다.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새로운 도시로 가는 날에는 하루를 몽땅 써도 아까워하지 않는 게 좋다. 아까운 마음이 들면 이동할 수 없다…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이 두려운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큰 감정 없이, 번잡한 생각 없이 몸을 끌고 간다. 오히려 즐거운 마음에 속한다. 이곳 지리와 사람과 교통편에 무지한 우리가 이 모든 난관을 헤쳐나가고 있음을 기억한다. 스스로가 자주 대견해지는 여행이다.
피렌체를 가기 위해 나폴리 역으로 간다. 나폴리는 치안이 안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음식이 맛있는 곳이라고도 들었다. 그 두 가지가 함께인 게 아쉽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피자만이라도 먹어보기로 한다. 피자 먹으려고 나폴리 가는 거지 뭐, 하고 쿨하게 말해보고 싶기도 하고.
아주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피자를 먹으러 가는 길이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분명 가치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여행에서는 불확실한 무엇에도 일단 믿음을 가져야 반은 성공하는 것 같다. 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든 우선 내 정신이 온전해야 그걸 선이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아무리 예쁘고 좋은 걸 봐도 우울한 정신으로는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날이 아주 좋은 날이다. 나폴리로 가는 동안 역방향으로 기차를 탔지만 바람이 살짝 불어오는 탓에 멀미가 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든 바람만 살짝 불어온다면 크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바람 효과 같은 게 있나. 누군가 내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본다면, 이곳에서 다양한 바람을 맞으며 지낸다고 말하고 싶다.
아주 파아랗고 청명한 바다 앞에서 바람한테 싸대기를 맞기도 하고, 나폴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기도 하고, 소렌토 방 안에서 아주 추운 밤바람을 맞기도 한다고. 그리고 나는 자주 어떠한 바람을 갖는다.
이곳에서만큼은 넉넉히 풀어지겠다는 바람. 조급하거나 종종거리지 말자는 바람. 종종 웃어버리고 농담하자는 바람. 좋지 않은 기억들은 적당히 잊어버리자는 바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아주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