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를 보내며

시에나

by 최열음

옆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여기에 왔으면 좋았을 사람들, 이것을 먹으면 좋았을 사람들, 이것을 봤으면 좋았을 사람들. 그들에게 하나하나 전해줄 수는 없으니 내 눈에라도 제대로 담는다. 그런 중에도 잡다한 생각 때문에 좋은 것들을 온전히 흡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아빠의 캐리어와 친구들이 준 손수건, 남자친구가 선물한 운동화와 친구가 준 크로스백. 그 사람들 대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몸에 붙들고 다닌다. 붙들고 다니지 못할 때도 그들을 항상 생각하며 지낸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잠시 떨어져 있는 게 애틋해지고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떨어져 봐야 얼마나 긴밀한 마음인지 알기 마련이다.


혼자의 시간을 자주 보내지는 못한다. 저렴한 여행이라 우리는 하나의 방에서 같은 시간에 먹고 쉬다가 씻고 나간다. 누군가와 한 침대를 공유하는 게 처음이라, 서툴기도 하지만 차차 적응해가고 있다. 난데없이 돈과 살림을 합쳐버린 엉터리 부부 같기도 하다. 연애 없는 중매결혼이 이런 느낌인가, 짐작만 한다.

하지만 가끔 혼자의 시간이 올 때면 글을 쓰기로 한다. 같이 있어도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만의 글을 쓸 수 있을 테니까. 여행을 하다가도 여행이 끝난 뒤를 자주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서 나의 인생의 방향을 좀 결정해 보겠다는 무지막지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스페인과 이별하고 이탈리아에서 여행하는 동안 스스로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얼마나 알량하고 가벼운 생각을 하며 사는지. 홍진경 씨가 기도 노트에 ‘교만한 눈, 교만한 생각’이라고 적은 걸 본다. 동시에 나의 교만함에 대해 생각한다. 어찌나 객관적이지 못한 눈과 마음인지를 생각한다.

생각이 몹시 많은 사람이지만, 그게 엄청 원망스럽지는 않다. 골몰하는 만큼 기민하게 반응하고, 그렇게 글을 쓰기도 하니까. 나의 잡다한 생각들로부터 생산적인 글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꾸 막연하고 원대한 것들을 바라게 된다. 바라는 만큼 생각도 많아진다.


매 순간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할지는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걸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않는 연습을 한다. 나에게 영향을 미친 누구의 탓도 아니고 오직 나로 인해 내려진 결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에게 그런 생각과 결정의 권한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자주 기억하려고 한다. 그걸 잊는 순간 교만한 눈과 교만한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게 두렵다.

누군가 가장 인상 깊은 여행지로 꼽는다는 피렌체, 그리고 시에나를 돌아보고 있다. 아직은 이곳이 얼마나 좋은지 잘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각각 크고 아름다운 도시, 작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만 느낀다. 과연 이곳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사람은 여행을 하는 도중 그런 생각을 한 걸까, 아니면 집으로 돌아간 후에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린 걸까. 후자라면 솔직히 믿을 수 없다. 여행은 좋은 일면만을 기억하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86일의 여행 중 어떤 여행을 최고라고 부를까. 순위를 매길 수는 있을까. 지금까지는 스페인의 세비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게 최고의 여행지는 그곳에서 얼마나 빛나는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걸 글로 얼마나 잘 주워 담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알 수가 없다. 언젠가 이 여행이 그리워져서 내 글을 다시 열람할 때쯤이면 알 수 있으려나.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으니 열심히 흡수하기로 한다. 어떤 좋은 마음을 얻게 될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