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다. 피렌체로 돌아온다는 말이 웃기다. 마치 내가 원래 속해있던 곳인 것 같아서. 다시 조금은 익숙한 이곳으로 돌아온다. 이탈리아는 소도시들이 참 매력적이다. 그러나 소도시는 그야말로 소도시다. 결국은 볼 게 많지 않아서 대도시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이탈리아 소도시 중 소렌토, 포지타노&아말피, 시에나, 아시시를 가보기로 했다. 모두 어감이 아름다운 곳들이다.
그러나 듣기에만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어제 다녀온 시에나는 피렌체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마을 끝 광장까지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곳이지만 골목마다 따뜻함이 배어난다. 맛의 고장이라는 토스카나, 그중에서도 시에나. 그런데 돈이 없는 우리는 첫날엔 중식, 다음날엔 피자, 그리고 마지막 식사에서 첫 양식을 맛보게 된다.
토스카나에서는 식전빵을 관 같은 나무상자에서 스윽 꺼내서 투박하게 썰어준다. 그리고 무슨 보자기에 넣어서 준다. 메이드 인 이틀리가 적혀 있는 주머니다. 괜히 맛있어 보이는 느낌이 든다. 무맛인 빵을 질겅질겅 씹다 보면 파스타나 고기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우리는 트러플 파스타와 티피컬 미트, 즉 전통적인 고기를 시켜봤다.
그래서 나온 음식은 장조림과 트러플 까르보나라였다. 조금 기대를 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평범할 줄은 몰랐다. 기대와 실망이 비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시에나에서 먹었던 건 그게 마지막 기억이다. 도착하자마자 먹은 중식은 저렴하고 든든했고, 길바닥에서 먹은 피자는 저렴하고 얇고 향긋했다. 토마토소스가 듬뿍 발린 화덕 피자였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맛있는 젤라토를 먹은 곳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온갖 종류의 파스타와 피자를 먹어보게 된다. 그게 유명한 나라이기도하고, 실제로 많이 팔고 있으니까. 길바닥에서 먹을 수 있게 테이크 아웃으로도 잘 나와 있다. 무엇보다도 빵이 정말 살맛 나게 한다. 평소에도 빵을 자주 사 먹던 나이지만 이곳의 빵과 커피는 각각 1.5유로 정도라서 가능한 매일 먹게 된다. 한화로는 빵과 커피를 합쳐 4500원 정도인 셈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먹는 가격에 진짜 맛있는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를 먹을 수 있는 것. 따뜻한 커피는 쳐다보지도 않던 나였지만 이탈리아 카푸치노는 너무 보드랍고 양도 적당하고 따땃해서 저항 없이 원 카푸치노, 를 외치게 된다. 처음엔 아이스커피가 없어서 못 먹었는데, 지금은 아이스 음료가 있어도 그냥 카푸치노를 먹는다. 금방 적응해 버린 내 혀가 우습다.
아점으로 빵과 커피를 먹으면 많은 것들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빵을 든든히 먹기로 한다. 어제 피렌체에서 유명하다는 티본스테이크를 먹었으므로, 당분간 아낄 필요가 있다. 스테이크도 정말 기가 막힌 맛이었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생각날 것은 분명 빵과 커피다. 사소하게 기쁜 것들이 자주 나를 살맛 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첫 일정은 구글맵 후기가 좋은 집 앞의 카페. 이미 점심이 다 되어버린 시간이라 아침 손님들은 다 빠진 듯했다. 카페에도 자릿세가 있다 보니 많은 이탈리안이 서서 에스프레소를 한잔 꺾어 마시고 냅다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잘 그렇지 못한다. 카페에 온 김에 겸사겸사 쉬고 싶기 때문이다. 내게 테이크 아웃은 메가커피 전용이다. 오늘의 카페에서 둘이 빵을 네 개 고르고 커피와 주스를 시켰다.
그리고는 계산을 안 하고 나와버렸다. 이미 몇 블록을 지난 후에야 깨달았기 때문에 너무 놀랐지만 일정을 마친 뒤에 다시 돌아가서 계산하기로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빌지를 먼저 받고 나중에 계산을 하는데 순간 깜빡해 버린 것. 오후쯤 다시 가서 계산을 하러 왔다고 횡설수설하니까, 서버들이 상황을 살피다가 유 아 쏘 스위트, 하고 말해준다. 갑자기 달콤하고 다정한 사람이 된 우리는 오히려 미안했다가 고마워져 버린다.
최근에 보았던 수많은 바리스타들과 군밤을 팔던 노동자들과, 야광 풍선을 팔던 노동자들을 떠올린다. 모두 이탈리아인들은 아닌 것 같았는데 어쩌다 이곳에 자리를 잡아 그런 것들을 팔기 시작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묻고 싶어졌다. 메이드 인 이틀리, 라고 적혀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가죽 시장의 상인들도. 우리가 지나가면 짧은 한국말로 불러세우던 그들의 삶은 어떨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며 누구와 함께 살아가는지.
대규모 관광지는 관광객과 상인의 격돌인 것 같다. 많이 고상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딴 세상이고.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얽혀서 피렌체의 역사에 한 겹을 더하는 것 같다. 자주 붉은빛을 띠는 이 도시, 역사와 야경과 가죽이 있지만 질서는 조금 없는 이 도시, 우리가 거쳐간 이 도시, 또 우리가 사랑한 이 도시.
오늘 피렌체로 다시 돌아왔던 것처럼 언젠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 같다. 나의 외로움이자 막막함이자 기쁨이자 회복의 장소인 이곳으로. 사랑과 낭만과 모기가 가득한 이곳으로. 언젠가 이 두오모 돔을 보러 다시 올 것이고… 그때는 티본스테이크를 두 번 사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