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자친구가 새로운 블루투스 스피커를 선물받았다.
이사 기념으로 형이 준 꽤나 고급의 스피커였는데,
내가 근 한달간 매달렸던 자소서 첨삭 값이랑 맞먹는 정도였다.
역시 직장인은 멋지다.
아무튼 그 비싼 물건을 보고만 있을 수 있나, 들어봐야지.
당장 “레미제라블”을 연결해서 안방을 영화관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레미제라블도, 제인 에어도, 해리 포터도 본 적 없는
꽤 당황스러운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러한 고전들이 우연히 찾아올 기회가 없었고
누군가 보라고, 꼭 봐야 한다고 언질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내게 고전은 봐도 좋고 안 봐도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유년 시절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꼭 봐야 하는, 그런 것이다.
먼저 다가가야만 접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만약 엄마가 있었다면 온갖 책을 다 섭렵했을 것은 확실하다.
(엄마도 어지간한 독서광이었다.)
여하튼, 엄청난 사운드로 장장 두시간 반 가량의 명작을 시청한 후
갑자기 반대쪽 안방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헙?.. 이게 무슨 소리야?”
“쿵 쿵 쿵”
정확히 두 번 그 소리가 들린 후 벽에 귀를 대어보자 어떤 부부의 싸움 소리가 들렸다.
그들 자신의 문제인지, 우리가 그 싸움의 시발점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등에 식은땀이 절절 나기 시작했다.
2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그런 말을 했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남들보다 두 배는 큰 목소리 탓이다.
늘 화통 사운드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맘 먹고 발성을 내지르면 옆에 있는 사람 고막 쯤은 문제도 아니다.
아무래도 오랜 교회 찬양단 생활로 단련된 복식 호흡 때문인 듯하다.
오빠를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그랬다.
“아우 귀 아파”, “승희야,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돼”
이런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던 터라 사운드를 좀 조절할 줄 알게 됐나 보다.
나도 모르게 커지는 목소리를 붙잡으며 타인의 귀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겪어 보니 귀가 아픈 게 생각보다 큰 고통이더라.)
나는 주목받는 게 좋으면서도 싫었다.
쉽게 달아오르는 얼굴로 인해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본성은 조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을 기쁘게, 웃게 하는 게 좋았고
덕분에 중고교 시절은 체면을 버리고 재미를 택했다.
누군가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큰 목소리가 생명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목소리가 축복이자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더는 남용하지 말아야지, 너무 아끼지도 말고.
어쩌면 지금의 내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오빠를 만나게 해준 목소리니까.
(오빠는 나를 교회에서 처음 보고 “목소리 진짜 큰 애”라고 생각했댔다.)
그러니,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사랑해서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