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블랴나에서 만난 사람들

류블랴나

by 최열음

아점은 맥도날드, 저녁은 서브웨이. 조금 그리웠다.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가득한 소비! 슬로베니아가 어디 있는지는 슬로베니아 사람들만 안다는, 귀여운 루머를 뒤로 하고 우리는 이곳을 찾아왔다. 이름에도 love가 들어갈 만큼(slovenia) 사랑을 중요시한다는 낭만적인 국가로.


무언가 굉장히 천천히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이 도시에서의 시간은 쉬어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어감이 슬로우와 비슷해서일까. 어쩌면 의도했을지도. 아무튼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4일을 머물기로 했다. 이곳에 발을 딛기 전까지는 류블랴나인 줄 알았다.


수도임에도 분명 작은 도시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고층 건물들이 즐비해있어서 조금 놀라고 신이 났다. 굉장히 서울스럽고 바르셀로나스러운 류블랴나였다. 이후에는 류블랴나스럽다고 말할 곳이 생길지도 모른다. 거리는 아주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치안이 꽤 좋은 곳이라고 들었다. 누군가 함부로 덤비지 않을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이곳에 도착했는데, 화요일까지 대대적인 휴일이라고 한다. 노동절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근로자의 날인데, 아마도 유럽에서 가져온 것이겠지. 나의 가장 가까운 근로자인 남자친구는 역시 출근할 예정이다. 유럽에서는 아주 대대적인 휴일인가 보다. 일요일부터 마트도 다 문을 닫고, 본격적으로 쉰다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아직 물도 사지 못했는데. 마트를 찾다가 결국 지나가는 슬로베니아인들에게 물어보았다. 관광객이 많다 보니 진짜 지역 주민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견주나 조깅러들을 공략하면 될 것 같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는 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일 테니까. 처음엔 견주에게, 두 번째는 산책하는 아저씨에게, 세 번째는 놀이터에 있는 부부에게 물었다.


그들은 모두 정말 한결같이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절대 웃음을 잃지 않는 유럽인들이었다. 우리의 공손함이라는 예의가 저들에게는 웃음이라는 매너로 치환되는 것 같았다. 땡큐 땡큐,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그들이 일러준 주유소를 찾아 나섰다. 주유소에서 무언가를 살 수 있다니, 조금 낯설지만 3일 동안 마실 물은 절대 미뤄서는 안 될 것이었다. 알고 보니 주유소에 작은 마트가 있었다. 노동절을 준비하지 못한 건 우리만이 아니었나 보다.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두가 쉬는 날에도 쉬지 않는 곳. 독점하고 쉬지 못하는 대신 매출이 몇 배로 뛸 것이다. 사장님들은 아주 기쁠 것이고 노동자들은 쉬는 동안 할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구매한 두 개의 물과 우유와 식빵은 다른 마트의 두 배 정도 가격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이래나 저래나 많은 돈을 벌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돈이 누구의 배를 불려줄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작은 도시에는 매우 큰 공원이 있다. 브리저튼에 나올 것 같은 나무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곳이다. 조깅을 하다가 산속까지 올라가게 될 것 같은 곳이다. 거대한 녹색의 풍경이 사람들을 널리 감싸고 있었다. 돗자리를 편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놀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너무 넓어서 새소리만 남은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을 한참 걷다가 물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아주 저렴한 대신, 캐리어 두 개를 펼치기 어려운 크기의 방 하나였다. 이곳에서 3일 밤을 자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단란하고 괜찮다. 물도 사온 김에 하나 남은 컵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공용 주방을 사용하고 있던 터키 남자들과 말을 트게 됐다. 그들은 우리가 코레아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반가워했다. 형제의 나라이기 때문일까.


터키는 유럽에서 가장 유럽답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24시간 열려 있는 편의점이 많은, 그래서 한국과 비슷한 곳이라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다른 유럽 국가로 넘어와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아주 늦게까지 운영하는 곳들이었다. 그런 끈기와 독기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터키는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것도 같다.


그들은 우리의 음식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보던 드라마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여기서 먹는 케밥이 사실 자기들의 케밥과는 다르다고, 무언가 향신료를 잔뜩 첨가한 듯한 음식을 먹으며 말해주었다. 요리에 있어서 향신료나 조미료, 소스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우리와 비슷해 보였다. 유럽은 소스가 메마른 곳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같은 전쟁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조상들의 연이라는 게 참 길게 이어지는 것 같다. 그들 중 한 명이 어떤 영화를 아는지 물었다. 한국에서 터키로 넘어온 전쟁 군인과 그 가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같았다. 한국에서 만든 거라고, 너무 좋은 영화라고 하는데 나는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미국 영화라서 그런 것 같았다.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 다큐멘터리를 좋아해 주는 형제들에게 아주 고마웠다.

사실 우리가 대화를 마치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그들은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가 한국 드라마를 보자 <오징어게임>을 이야기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한류의 열풍은 어디까지인가. 사실 나는 오징어 게임도 안 봤는데... 다들 본다고 하면 괜히 흥미가 떨어지는 건 어째서일까. 엄청난 열풍 속에 나만 쏙 빠진 느낌이라 어색하면서도 개운하다. 아무튼 그 터키 남자들도 한국에 대해 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밥과 드라마에 집중하고 싶어질 때쯤 다행히 그들도 방으로 들어갔다. 굳나잇이라고 해야 하는데 해브 어 굿 데이, 라고 말해버렸다. 나의 어설픈 영어에 민망했다. 복도의 소란이 사그라들자 몇몇 사람들이 씻으러 나오기 시작했다. 공용 주방과 공용 욕실을 쓰는 자들은 바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갈 때 문을 열고 나오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덕분에 우리는 라면과 라죽과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아주 작은 방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드라마를 마저 보다가 잠에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