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밟은 땅 위에서

류블랴나 3

by 최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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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아웃 후 길바닥에서 13시간째. 야간버스를 기다리며 맥플러리를 먹고 있다. 종일 걸어서인지 앉아있는데도 다리가 저릿하다. 오늘 새로 산 운동복 덕분에 오래된 맨투맨을 버리고 왔다. 의도치 않게 또 베이지색을 사버렸다. 퍼스널 컬러를 받은 후로 자꾸 그에 맞는 색상만을 선택하게 된다. 내 직감보다 수치와 결과를 신뢰하는 게 더 편해서인가. 이런 변화가 싫어서 퍼스널 컬러를 받지 않을 거라는 애들도 있었다. 정형화는 역시 간편하지만 찝찝한 구석이 있다.


류블랴나의 맥도날드는 음식이 나오면 무려 가져다준다.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고 번호표를 눈에 잘 띄게 갖고 있기만 하면 된다. 이토록 다정한 서비스라니. 맥도날드뿐만 아니라 유럽 식당에서는 서빙하기가 아주 피곤할 것 같다. 새로 온 사람, 주문할 사람, 주문한 사람, 계산할 사람이 혼재한 곳에서 서버들은 그들의 의중을 잘 살펴야 한다. 그렇게 손님들은 마음을 들킬 때까지 잠자코 앉아서 기다려야 하고.


방금은 어떤 남자가 우리 쪽을 향해 오더니 무슨 외국어를 열심히 남발했다. 혹시 구석에 앉은 우리에게 길을 묻는 건가 하고 돌아봤는데, 차이니즈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단호한 얼굴로 아니라고 해버렸다. 아무래도 자기가 아는 중국말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니라고 하니까 되게 미안한 얼굴로 떠났다. 그냥 선량하고 넉살 좋은 맥도날드 직원 같았는데 친구와 눈이 마주치고 우리 쪽으로 왔다고 한다.


이런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자주 차이니즈, 재패니즈, 코리안 중에 어떤 민족인지를 어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길을 가다가 냅다 니하오, 곤니찌와 하는 인사를 듣는다. 별로 안녕하지 않은데요. 코리아라고 하면 잘 못 알아들어서 코레아라고 해줘야 한다. 타국어로 인사를 받으면 아니라고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갈 길을 간다. 우리만 들리는 한국어로 중얼거리면서.


최근 이탈리아 대학생들이 동양인에게 니하오-라고 인사하고 웃으며 조롱하는 영상이 이슈가 되었다. 유럽에 있는 나로서는 그런 것들이 당연했다. 그 정도의 조롱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항상 시선의 대상이 되고 무지한 인사를 받기 마련이다. 그 영상 속의 대학생들은 신상이 공개되고 학교에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과연 내가 있는 곳까지 그 영향이 오게 될까. 우리는 인터넷의 힘만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의식이란 걸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차별받고 처벌받아야 할까.



2

류블랴나의 가장 큰 쇼핑몰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냈다. 건물 몇 채가 전부 쇼핑센터라서 길을 잃기 무척 쉬운 곳이라고 들었다. 많은 리뷰들로 예습을 마친 우리는 필요한 스팟들만 몇 개 추려놓고 가기로 했다. 길을 잃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했던 곳들에서는 몇 개 사지도 않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무자비하게 쇼핑을 해버렸다. 여태껏 가장 많은 옷과 선물을 사 왔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거대한 소비를 해버린 뒤엔 어떻게 될까. 자꾸만 실소가 나온다. 그리고 지난 소비와 오늘의 소비와 예정된 소비를 몽땅 돌아보게 된다. 조금씩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다. 꼭 필요한 무엇이었다고, 오늘이 아니더라고 사게 될 무엇이었을 거라고.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이미 벌어진 뒤에 되뇌는 말들이 구차한 변명 같아서 우습기도 하다. 그래도 내 물건보다 선물의 비중이 더 크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여행 고수들은 애초에 캐리어를 잔뜩 채워 오지 않는다고 한다. 비워 와서 채워 가는 식으로. 어리바리한 여행 초보들은 애초에 짐을 잔뜩 가지고 와서 새로 사는 만큼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할 운명에 놓인다.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르고 골라, 큰 쓰레기통이 보이면 냅다 쑤셔 넣는다. 오늘은 짐을 맡겨둔 호텔 화장실에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 맨투맨을 버리고 왔다. 꽤 지난한 여행을 하면서 채우는 것보다 비우고 닦고 처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하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친구는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현실감이 가득한 책을 읽고 있다. 사회적 압력이 축소되어 일상과는 다른 환경에 놓인 여행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또 인정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읽는 중이라고 한다. 류블랴나의 맥도날드에서 한국어로 책을 낭독하는 모습이 생경하고 웃기고 좋았다. 우리 뒤편에 앉은 한국인 커플도 아마 들었을 것이다. 이걸 들은 저들도 새로운 마음으로 여행하게 될지 모른다.


새로 산 트레이닝 복 바지가 벌써 더러워졌다. 외국 언니들 사이즈는 정말이지 감당 불가다. 위아래 세트로 산 아디다스인데, 상의는 딱 맞고 하의가 너무 길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나랑 같은 상체 길이에 다리는 한 뼘이나 더 길다는 얘기다. 우리는 정말 땅콩처럼 보이겠구나.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지 우리가 끌려 다니는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다르니 눈에 띌 수밖에 없겠다.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건 매우 피곤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잔잔한 개울에 던져지는 돌 같은 존재, 존재만으로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존재, 온갖 사회적 맥락을 가득 안고 걸어오는 존재. 우리의 피부색, 키, 조상, 음식, 냄새, 스타일, 언어, 체형, 웃음, 예의, 걸음까지. 우리가 가진 무수한 배경을 안고 그저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그 세상은 다양해지는 동시에 발전해야 할 위치에 놓인다.


우리가 있다고, 그러니 똑바로 보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새로워지라고. 우리가 발 붙인 곳에서 살 만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한식당에서 만났던 한국인 부부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발 붙이고 있던 협소한 주방을 떠올리면서. 그들이 류블랴나에 사는 내내 안녕하기를,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살기를 바라게 된다. 우리가 떠난 이곳에서 그들이 더 이상 모르는 언어로 인사받지 않기를 소박하게 바란다.


202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