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바티칸, 소렌토
어쩐지 이탈리아를 다녀온 뒤로 몸이 눈에 띄게 무거워졌습니다. 눈에 띄게라는 말은… 스스로 신경 쓰기 시작할 정도라는 뜻입니다. 딱히 확인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몸의 무게란 게 있잖아요? 아, 내가 빵살이 쪘구나. 이탈리아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철 지난 다이어트가 무색해져도 어쩔 수 없을 만큼 맛있어버리는 곳. 그래도 어깨를 까딱이고 바로 다음 빵집에 들어가 버릴 만한 무책임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이어트와는 반대되는 책임을 지며 많은 빵을 먹었습니다.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정말이지 많은 빵을요.
우선 티라미수. 사실 가장 유명한 곳은 첫 번째 사진의 ‘폼피’라는 곳인데요.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애정이 별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엄청 촉촉하고 작았거든요. 촉촉한 티라미수는 좋지만 작은 티라미수는 싫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투 사이즈’라는 곳을 더 좋아했어요. 이곳에서 기본맛을 두 번, 피스타치맛을 한 번 먹었어요. 손님도 ‘투 사이즈’가 더 많았습니다. 이곳은 더 단단하고 쫀쫀하고 묵직한 질감이었어요. 친절한지 불친절한지 조금 헷갈리는 이탈리아 아저씨가 주문을 받아줍니다. 현금밖에 안 되었고요. 어쩐지 티라미수에서 그냥 정성이 느껴졌어요. 자부심이 있을 만하다고 느껴지는 맛이었고요.
투 사이즈에서 이탈리아 첫 티라미수를 먹었습니다. 이렇게 컵에 듬뿍 담긴 티라미수는 보기만 해도 마음을 참 촉촉하고 꾸덕하게도 합니다. 로마 길바닥에서 퍼먹는 티라미수는 맛도 달랐지만 느낌도 달랐어요. 우리는 대개 맛보다 그 느낌을 찾아가잖아요. 여기서 티라미수를 퍼먹는 동안은 별다른 근심 없이 좀 행복해졌던 것도 같아요. 내가, 로마의 길바닥에서, 컵에 담긴 티라미수를, 퍼먹고 있다는 자각 때문입니다.
사실 여행하는 동안 자주 지쳤어요. 저의 연약한 육체로 인해 하루에 한 번은 카페와 커피가 꼭 필요했습니다. 시간을 내서라도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탈리아의 카페는 한국의 카페와 가장 달랐어요. 메뉴도 되게 단출하고 주문도 어렵고, 그래서 카페를 생각만큼 자주 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테이크아웃을 해서 마실 만큼 가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커피가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라떼란 무언가… 아이스 라떼가 있길래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주문했습니다. 구글 리뷰가 나쁘지 않은 카페였거든요. 친구는 주스를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이 라떼는 진하고 고소한 맛이 아니라 밍밍했어요. 드립커피에 우유를 탄 그런 맛이었어요. 나중에 보니 coffee with milk였나, 아무튼 실제로 커피에 우유를 조금 부은 게 맞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뜨끈한 드립커피에 우유 부어먹는 건 좋아하는데요, 아이스도 그렇게 팔 줄은 몰랐거든요.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를 많이 먹잖아요. 다들 그냥 주문하고 바로 꺾어마신 후에 스몰토크 조금 하다가 나가더라고요. 우리처럼 충전기 꽂고 앉아서 쉬어가는 문화가 아니었어요. 어쩌면 그들에게 커피가 더 일상적이라는 증거가 아닐까요. 우리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카페를 두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집이 지겨울 때,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카페를 가기도 하거든요. 반대로 낯선 곳에서 일상을 누리고 싶을 때도요.
이 카페에서도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앉아있었어요. 이탈리아인들 첫인상이 좀 날카로워서 눈치를 봤는데 다들 겉바속촉이더라고요. 주문할 때도, 나갈 때도 되게 친절했어요. 기본적인 친절과 매너란 게 얼굴에는 없지만 몸에는 배어있는 사람들 같았달까요. 스페인은 겉촉속촉이었는데 이탈리아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어요. 이를 테면 스페인은 ‘우리 커피 만들면서 행복해~ 너희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였다면, 이탈리아는 ‘우리가 어떻든 커피만 맛있으면 됐잖아’ 같은 느낌이었어요. 사실 그거면 되긴 하니까요.
이탈리아 최고의 카푸치노를 바티칸시티 박물관 지하에서 만났습니다. 무슨 박물관 커피가 이렇게 부드럽고 고운지, 속으로 계속 감탄하면서 마셨어요. 여기서 커피를 마신 후에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도 맛있을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탈리아의 카푸치노를 믿게 됐거든요. 분명 바리스타는 일하는 게 아주 시크하고 지루해 보였는데, 카푸치노 최강자였어요.
멀뚱하게 서있으면 ‘너 뭘 원해, 뭐 줘‘ 하면서 공격적으로 물어보던 그였습니다. 여기서 뜨순 라떼의 맛을 제대로 알게 돼서, 이후로는 카푸치노만 주문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카푸치노처럼 거품맛 따로, 우유 따로인 느낌이 아니라 부드럽게 호로록 한 번에 딸려 오는 그 느낌…… 친구의 착즙 오렌지 주스도 상콤하니 맛있었어요. 매일 아침마다 이런 카푸치노를 마실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에선 커피값이 비싸서 어렵겠지만요…
진짜 어쩌죠…… 제 3개월 여행 인생 최고의 빵집이 여기예요. 먹자마자 진짜 어쩌지…… 싶게 만드는 곳이었어요. 한국으로 데려갈 수도 없고 여기 평생 붙어있을 수도 없는데, 어떡해!!! 하면서 두 번 방문한 빵집. 바로 레골리(빵집 이름)의 모리토쪼(빵 이름)인데요. 크림과 빵 둘 다 너무 보드라워서 호로록 삼켜지는 맛이었어요. 전-혀 느끼하지도 않고 식전빵으로 하루에 세 번씩 먹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크림이 아주 넉넉한데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았어요. 모리토쪼 말고도 다른 맛있는 빵들이 많았을 텐데요. 제가 먹어본 건 타르트 종류였어요. 크림이 맛있으니까 사실 더 필요한 게 없더라고요. 산딸기 타르트도 두 번 먹고 싶었지만 모리토쪼가 압승이라서 한 번만 사 먹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간다는 사람 있으면 붙잡고 레골리만 꼭 가달라고 말해요. 나 대신 한 번이라도 더 먹어달라고. 물론 저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가서 더 흥분했던 걸지도 몰라요. 다른 친구는 그냥 괜찮았다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니까 참고해 주세요. 그러나 빵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그리고 로마에 갈 예정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다들 줄 서서 먹는데, 줄도 금방 빠지고 포장도 기가 막히게 해 줍니다. 이 빵만 먹으러 로마로 다시 간다고 해도 충분히 납득할 만해요.
크로와상도 있습니다. 단면을 찍은 건 빵순이 친구에게 보내주기 위함이었어요. 그리고 이걸 먹는 동안 저도 놀랐기 때문인데요. 오른쪽은 피스타치오 크로와상입니다. 크림이 들어있는 게 아니라 아예 결 사이사이 피스타치오 베이스가 겹쳐져있어요. 로마에서 체크아웃하는 날 아침, 이걸 사러 혼자 카페에 다녀왔어요. 일요일에 여는 카페는 많지 않은데요. 여기는 맛있는 주제에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더 감격스러웠어요. 어쩐지 다들 현지인 같은 사람들 틈에서 열심히 이 빵 저 빵 골라왔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 더 욕심을 냈는지도 모르겠어요. 친구랑 같이 나눠먹으려고 샀는데 다섯 개를 사버린 거 있죠. 물론 한 끼 식사로 대신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여행자이니까요…
빵을 다섯 개 나눠먹고 나니까 조금 울렁거렸지만 별로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앞으로 이 빵의 기억이 저를 두고두고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걸 알았거든요. 아직까지도 로마에서 마지막 날 먹은 빵들을 최고로 꼽고 있어요.
무려 조식으로 먹었던 소렌토의 크로와상들입니다. 숙소가 카페와 제휴를 맺었는지, 쿠폰 하나로 음료와 빵을 교환해 주더라고요. 조식 카드를 내밀면서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빵과 커피를 받았습니다. 로마에서 먹었던 피스타치오를 생각하면서 크로와상을 주문했는데 이곳은 누텔라 같은 크림이 가득하더라고요. 다른 버전의 크로와상이었던 거죠. 소렌토는 로마보다 남쪽에 있는 도시인 데다가 완전 관광지라 물가가 조금 비쌉니다. 그래서 조식으로 이 빵을 먹고 든든하게 출발할 수 있었어요. 비록 저희는 아점으로 이 빵을 먹기도 했지만요.
이탈리아에서 여러 버전의 카푸치노를 먹어가며,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도 딱 이 정도의 카푸치노를 팔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면서요. 우리는 되게 푸짐하고 양 많은 카푸치노를 팔잖아요. 스타벅스 같은... 한국에서 카푸치노를 시켜본 적도 별로 없을뿐더러 먹더라도 끝까지 맛있게 먹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딱 적당하고 맛있게 끝까지 먹을 수 있었어요. 컵이 손바닥으로 감쌀 수 있을 만큼 작아요. 빵과 커피가 모두 유명한 이탈리아에서는 자주 절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이탈리아에서 붙은 살이 여행 내내, 그리고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붙어있는 것 같아요. 어쩐지 그걸 빼기도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화해버리고 싶지 않은 빵과 커피들이었으니까요. 어제부터 조금씩 운동을 깔짝이기 시작했는데요, 살은 빠지더라도 이 풍족했던 기억이 저를 자주 배부르게 할 거라는 걸 알아요. 풍요와 버터가 가득했던 이탈리아, 2편으로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