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시에나, 아시시
풍요와 버터의 나라, 이탈리아 두 번째 편입니다. 같이 여행했던 친구들과의 카톡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여행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유럽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싶지 않아서요. 물론 제가 가장 유럽과 분리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뭐, 분리할 필요도 없다고 이제는 느껴요. 한국에 있든 유럽에 있든 모든 기억이 제 몸에 새겨져 있으니까요.
너무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제 여행이 안녕한지 묻는 친구들도 그랬고요. 사실 저는 서유럽 쪽이 조금 더 정서에 맞는 것 같아요. 동유럽이 유럽의 정수라고는 하지만 제겐 서유럽이 조금 더 따뜻하고 생동감 있는 느낌이었고, 동유럽은 조금 더 날 것이었다고 할까요. 관광지스러운 것들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동유럽에서는 해보고 싶은 것들을 직접 찾아다녀야 했거든요. 서유럽은 찾을 것도 없이 그냥 널려 있었어요. 시간을 쪼개서라도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는 볼 것도 먹을 것도 가장 많은 곳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음식만 두고 봤을 땐 이탈리아가 제게 1위거든요. 제겐 여행에서 음식이 거의 최우선이긴 하지만요. 종합적인 걸로 봤을 땐 3위쯤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치안이나 위생 면에서 조금 깎였습니다. 저는 깔끔한 숙소와 거리를 선호하더라고요. 이탈리아는 역사와 유적이 즐비한 만큼 모두 오래된 것들입니다. 그래서 새롭고 불편했죠. 하지만 여행에서 불편한 게 그리 나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편할 거였으면 그냥 집에 누워있으면 되는 거니까요. 그 적당한 불편함과 생경함 속에서 마침내 느끼는 것들이 여행의 핵심인 것 같아요.
이 샌드위치에는 조금 웃긴 사연이 있습니다. 어떤 광장에 앉아서 빵을 먹고 있었어요. 방금 막 사 온 빵이었는데 거의 비둘기들과 함께 먹은 것 같아요. 유럽 광장은 사람도 많고 비둘기는 더 많기 때문입니다. 나름 괜찮은 빵이었는데 기억은 나지 않네요. 그냥 괜찮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얼굴보다 더 큰 샌드위치를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익스큐즈미, 그 샌드위치 어디서 샀어요?’
생각해 보니 그거 어디서 샀냐는 질문을 이탈리아에서밖에 안 했던 것 같아요. 매번 묻기는 부끄러우니까 진짜 궁금한 것들만 물었거든요. 피렌체에서 샌드위치, 시에나에서 젤라또. 이 샌드위치는 어떤 단란한 가족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말과 몸짓을 동원해서 정성스럽게 알려주었어요. 어떤 게 제일 맛있는 지도요. 그중 절반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찾아다녔어요.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그 집 아들이 빵집의 인스타까지 보여줬던 것 같아요. 너무나 다정한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찾았습니다. 줄도 길었고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은 걸 먹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어요.
결론만 말하자면 그냥 그랬습니다. 빵이 딱딱한 편이었거든요. 그리 특별하지 않은 그냥 샌드위치였어요. 딱히 가성비라고 할 만큼 저렴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친구랑 반씩 나눠먹어서 그런지 양이 많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희는 조금 매운맛이 들어간 녀석을 골랐던 것 같아요. 숙소에 가는 길에 거의 다 먹어버렸어요. 유럽에서 길빵은 아주 간편하고 효율적이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많은 빵을 먹으며 마음 편히 돌아다니는 도시였습니다.
시에나에서 먹었던 유일무이한 커피입니다. 소도시인 시에나는 피렌체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소도시가 많은 이탈리아였기 때문에, 로마 > 소렌토 > 피렌체 > 시에나 > 피렌체 > 아시시의 코스로 움직였어요. 에너지의 절반을 이탈리아에서 소진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그 중심에 시에나가 있었습니다. 1박뿐이었지만 꽤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광장 길바닥에 누워있다가 경찰이 와서 일어나라고 한 기억, 가장 맛있는 젤라또를 먹었던 기억도 있어요. 저녁에는 맛집을 찾으러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가격이 비싸서 결국 포기하고 피자를 포장해서 먹었던 기억도 있고요. 콜라는 마트에서 사려다가 피자가 모두 식어버렸던 것까지요.
젤라또는 소풍을 온 아이들이 너무 맛있게 먹고 있어서 참지 못하고 어디서 샀는지 물었던 것인데요. 영어를 이제 막 배운 아이들과, 영어를 반평생 배웠지만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우리 사이엔 적절한 언어가 오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대-충 알아듣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어요. 다행히도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어보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어요. 덕분에 최고의 젤라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Gelateria Nice. 그야말로 나이스한 선택이었어요.
커피는 다음날 아침에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마셨습니다. 친구의 처음이자 마지막 커피 주문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시킨 건 카푸치노, 친구는 마끼아또. 커피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친구의 용기 덕분이었는데요. 앞으로 카페를 가거나 커피를 마실 일이 많을 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겠죠. 하필 마끼아또를 고른 건 이때까지만 해도 그게 조금이라도 덜 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유가 적기 때문에 더 쓸 텐데요. 결국 친구는 테이블에 있던 설탕을 부어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커피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새드 엔딩이네요.
두 번째 피렌체에서 만난 귀여운 빵집. 이렇게 빵을 많이 시켰다는 건 밥으로 대신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충 열한 시-열두 시쯤 이렇게 먹으면 버틸 만하거든요. 어차피 빵은 사 먹을 거였으니까요. 딱 저만한 컵 사이즈가 카푸치노의 기본입니다. 엄청 작고 귀여워요. 배는 안 부르지만 맛은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크루아상과 같이 있는 녀석은 스포리아텔라 라는 페이스트리입니다. 바삭하다 못해 거의 딱딱한 녀석이에요. 안에는 크림이 적당히 들어있고요.
이 카페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었습니다. 감격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사 먹지는 않았어요. 처음엔 아아를 찾아 헤맸지만, 이쯤 되니까 있어도 안 사 먹게 되더라고요. 카푸치노가 너무 맛있었거든요… 유명한 카페는 아니고 그냥 숙소 근처였는데, 빵도 커피도 되게 만족스러웠던 곳입니다. 게다가 돈을 안 내고 튈 뻔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아니, 이미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돈을 안 냈더라고요. 다 먹고 나갈 때 계산을 해야 했는데 아주 까먹어버린 거죠. 파렴치 코리안이 될 뻔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우리가 돈을 안 내고 간지도 몰랐습니다. 믿음과 신뢰로 인해 굴러가는 가게였던 거예요. 아까 돈을 안 내고 가서 다시 왔다고, 어색한 영어로 더듬거렸더니 되려 스윗하다고 말해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잘못일 뿐인걸요. 당신들이 더 스윗하다구요!
이번엔 조금 결이 다른 빵입니다. 바로 케밥인데요. 되게 저렴해서 밥 대용으로 두 번 정도 먹었던 것 같아요. 유럽에서 파는 케밥에는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또띠아처럼 얇은 빵에 랩처럼 감싸진 것과, 넓적한 햄버거 빵에 뒤덮인 것. 두 가지를 모두 사서 나눠 먹었는데요. 친구는 빵 맛이 덜 나는 랩이 좋다고 했고, 저는 빵 맛이 가득한 햄버거 스타일이 더 좋았어요. 케밥 하나에 5-6천 원 정도라서 아주 배부르고 간편한 한 끼가 되어주었습니다. 나중에 터키 사람들과 같은 숙소를 쓰면서 들었는데, 유럽에서 파는 케밥은 터키에서 케밥이라고 불리는 것과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언젠가 진짜 터키에 가서 케밥을 먹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유튜브에서 꽤 유명했던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먹어봤는데요. 계획에는 없었지만 케밥집에 팔길래 냅다 달라고 해버렸어요. 한 개는 카드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시럽에 잔뜩 절인 패스츄리였고, 겹겹이 꿀 같은 게 있었습니다. 너~무 단 맛이라 한번 먹어보고 내게 다시는 없을 빵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디서든 한 번으로 족한 것들도 있더라고요.
이건 정말 맛없어서 기록하고 싶은, 불명예스러운 샌드위치입니다. 아시시라는 소도시에서 먹었던 것인데요. 아시시는 되게 성스러운 동네입니다. 광장도 거리도 규모도 엄청 작은 데다가, 성당이 전부인 곳이거든요. 길에서 수녀님들을 꽤 봤는데, 과연 수녀님들이 이런 음식을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 동네의 역사적인 의미는 잘 모르지만 확실한 건 엄청 작고 비쌌다는 겁니다. 숙소를 찾을 때도 가장 지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두 언덕길이라 캐리어는 무거운데, 호스트가 적어둔 주소에 가보니 입구도 없고 길도 없었거든요. 자주 울고 싶어졌던 아시시입니다. 결국 주민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길을 찾아냈어요. 해피 엔딩이지만 어쩐지 엔딩보다 과정이 저릿하게 남는 곳입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짐을 두고 나와서 먹은 샌드위치가 이것입니다. 제 아이폰이 색감을 이렇게 담은 것도 있지만 실제로도 이렇게 생겼어요. 거의 죽은 빵 같은… 토마토와 치즈는 꽤 신선해서 괜찮았어요. 하지만 햄은 질기고 냄새가 났지요… 빵도 무맛이었고요. 이 집 때문에 아시시는 이탈리아지만 이탈리아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냥 성스러운 걸로 만족해야 하는 도시, 아름다우니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다행히도 아시시의 면을 살려주었던 카페가 있습니다. 여전히 비싸기는 했지만 이 카페의 바리스타를 잊을 수가 없는데요. 선량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시시에 도착한 날, 그리고 떠나는 날 모두 이 카페에 들렀어요. 첫날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 날은 빵으로 점심을 때울 만큼 믿을 만한,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곧 앙코나라는 항구 도시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확실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어요. 심지어 배 타는 곳의 구글 주소도 정확하지 않아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그 바리스타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아무래도 그는 높은 확률로 이탈리아인일 테니까요. 그는 자기도 앙코나에서 배를 타고 가본 적이 있다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어요. 그 덕분에 조금은 해결된 것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기억은 장소 자체보다 사람으로 인해 굴러가더라고요. 아시시가 그랬습니다.
다시 빵 얘기로 돌아가보자면, 가운데 사진이 애프리콧 크루아상입니다. 상큼한 사과잼이 적당량 발려있었어요. 그리고 검은점이 박힌 게 초코, 민둥맨둥한 게 기본. 어쩌다 보니 스포리아텔라를 한번 더 먹게 됐어요. 다시 먹으면서도 우리 이거 왜 다시 먹고 있지, 하면서 먹었습니다. 그렇게 특별한 맛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탈리아의 마지막에서도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어서 기뻤어요. 마지막 기억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뭐든지 굿바이가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아시시 덕분에 이탈리아에서도 굿바이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어이 없지만 저 두 번째 크루아상 사진이 지금 제 배경화면입니다. 마음껏 빵을 먹었던 날을 잊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고, 너무 배경화면스럽게 잘 찍혔기 때문입니다. 검은 배경에 크루아상이 잔뜩 찍혔으니까요. 수많은 크루아상이 저를 행복하게 했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가장 유럽스러웠던 빵, 유럽스러웠던 커피, 유럽스러웠던 나라. 어쩌면 그냥 유럽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 숱한 나라들 중에서도 이탈리아는 단연 유럽의 정수였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짜 유럽을 맛보고 싶다면 이탈리아로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