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빵, 커피, 유럽>의 시작은 스페인입니다. 3월의 스페인은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였습니다. 그리고 3개월 여행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제가 여행에서 무얼 중요시하는지, 어떤 시간이 필요한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여행이 끝난 지금이라고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요. 알고 보니 저는 하루에 한 잔이라도 커피를 마시는 일을 꽤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커피가 주는 효과, 기운, 공간 같은 것들을 모두 사랑하기 때문인데요. 쓸 만한 돈으로 하루의 가장 큰 행복을 누리는 일인 것 같았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여행의 낯선 기운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너무나도 외딴곳에 똑떨어져 있다는 어색한 감각을 가능한 한 빨리 떨쳐버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익숙한 곳으로 자꾸 마음이 향했습니다. 스타벅스... 심지어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다가 바로 여행을 왔기 때문에, 제게는 작은 직장이자 세상이기도 했던 곳입니다. 익숙한 것들이 주는 힘이 꽤 크다는 사실에 의지해야 했던, 겁이 가득한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1.
특히 바르셀로나는 꽤 대도시적인 관광지기 때문에 스타벅스가 곳곳에 즐비해있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된다는 점에서 더 편했던 것 같습니다. 저와 동행했던 친구는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이 사실이 여행 내내 꽤 크게 다가왔어요. 제가 빵과 커피에 야금야금 돈을 쓰는 동안 친구는 축구 경기 같은 화끈한 곳들에 집중했습니다. 소비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걸 들여다보면 진짜 애정이 향하는 곳을 단번에 알 수 있겠더라고요.
3개월 동안 스타벅스를 꽤 많이 갔는데요. 저는 한 번도 커피가 아닌 음료를 사 먹지 않았고, 친구는 한 번도 리프레셔가 아닌 음료를 사 먹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취향이 뚜렷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타벅스에는 한국인이 참 많습니다. 모두에게 익숙한 정취가 그곳에 있기 때문일까요. 아무래도 스타벅스가 뭐든 중간은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문하기도 어렵고, 메뉴를 고르기도 어렵고,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유럽에 지친 자들이 그곳에 모이는 것 같았습니다. 쉬고만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첫 스타벅스에서 우리는 한국인 어머니들과 마주쳤습니다. 유럽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대화의 문을 자주 열게 됩니다. 아무리 처음 보는 사람이더라도 같은 민족의 피가 뜨끈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눈치를 살짝 보다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나면 금세 한국으로 순간 이동을 하곤 합니다. 한국에서는 절대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지 않는데 말이죠. 그게 참 아이러니하죠. 유럽 정도는 가줘야 같은 민족에게 피가 끌리나 봐요.
2.
처음으로 유럽스러운 카페에 왔습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친구는 자주 병음료를 선택하곤 했습니다. 그게 저를 미안하게 했고요. 유럽 카페엔 커피가 아닌 음료가 별로 없었거든요. 이곳은 스페인에 거주하는 친구의 사촌오빠가 소개해준 카페입니다. 제가 마신 건 역시 뜨끈한 라떼인데요. 유럽에서 자주 봤던, 그리고 자주 마셨던 커피는 마끼아또, 플랫화이트, 라떼가 있습니다. 모두 우유 양의 차이인데요. 우리나라는 캐러멜 마끼아또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처음에 마끼아또를 보고 그런 이미지를 상상했어요.
하지만 유럽의 마끼아또는 위 사진과 같습니다. 컵 자체가 아주 작고 양도 적습니다. 그냥 우유 양이 아주 적은 라떼 같더라고요. 더 진하고 고소하고 씁쓸한 맛이에요. 우유 양이 적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합니다. 그래서 마끼아또, 플랫화이트, 라떼로 갈수록 가격이 점점 비싸집니다. 그래서 보통은 플랫화이트를 마셨는데, 돈이 없을 때는 마끼아또를 골랐고, 배불리 먹고 싶을 때는 라떼를 골랐습니다.
사실 저는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대충 시켜서 맛있으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요. 커피에 대해 배우고 싶은 생각이 아직은 없습니다.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이 카페는 타파스를 먹기 전, 시간을 조금 때우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이 매우 잘생겼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도 들었습니다. 저도 보고 좀 놀라기는 했지만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거였으니까요. 조금 더 기분 좋은 공간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3.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스타벅스입니다. 친구가 첫 축구 경기를 직관하러 간 사이, 혼자 책도 읽고 글도 쓰려고 스타벅스에 왔는데요. 처음으로 각자 보내는 시간이라 조금 떨리고 두렵고 많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혼자 걷는 바르셀로나의 밤거리는 꽤 불안하더라고요. 누가 갑자기 나를 때려도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던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카페에 있는 동안은 별생각 없이 커피만 마실 수 있었습니다.
외국 스타벅스에서는 이름을 물어봅니다. 저는 여름이라는 뜻의 썸머를 자주 말했는데요. 제가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보니 많은 오해를 받습니다. 이날은 인도스러운 이름의 숨머로 불렸습니다. 충분히 오해할 만하기 때문에 그냥 맞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썸머도 제 진짜 이름이 아니니까요. 오랜만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전혀 쓰지 않고 시원하기만 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달콤하지는 않았고, 책은 한 자도 읽지 못했습니다. 어떤 날은 카페에서 그냥 책만 읽고 싶을 때가 있고, 제 글을 마구 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날은 후자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카페인을 섭취해도 밤잠을 설치지 않는 꽤 축복받은 신체를 지녔습니다. 그래서 원한다면 저녁에도 커피를 그냥 마십니다. 제게 커피는 ‘그냥’에 속하는 부분이 참 많다고 느낍니다. 특히 바르셀로나에서는 매일이 지난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기절하듯 잠들 수 있었습니다. 열두 시면 잠에 들고 여덟 시면 잠에서 깼던 것 같습니다. 불면의 밤은 거의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에 꽤 감사한 날들이었습니다.
4.
스페인에서 제대로 처음 사 먹은 빵이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나온 직후에 배가 고팠기 때문인데요. 스페인의 빵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거의 열 시쯤 사러 갔기 때문에 열려 있는 빵집이 거의 없었습니다. 되는 대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크로와상과 잠봉 뵈르를 손가락으로 열심히 가리켰는데요. 빵을 사는 내내 웃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스페인의 빵집에서 잠봉 뵈르를 사고 있다는 게 기특해서요.
먹을 때는 그만큼 기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의 빵들은 어쩐지 조금 퍽퍽하고 야박했습니다. 친구의 사촌오빠에게 듣기로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는 편이 아니라고 해요. 다들 좀 대충 하는 경향이 있다고요. 아무래도 크로와상은 버터를 충분히 넣어야 그 맛이 살아날 텐데요. 다른 빵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그냥 빵을 사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다음 행선지는 빵의 강국, 이탈리아니까요.
5.
그라나다에서 사 먹은 빵과 커피는 이게 전부였습니다. 도시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디저트보다는 타파스나 빠에야 같은 음식이 유명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츄러스가 괜찮다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츄러스는 홀(whole)과 하프(half)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돈과 양을 고려해서 하프를 선택했습니다. 먹고 보니 하프로도 충분했고요. 디저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어야 하는데, 역시 유럽에는 아아가 희귀합니다. 그래서 뜨거운 커피와 츄러스를 찍어먹을 초코를 시켰어요. 마실 수도 있었지만 츄러스를 찍어먹을 때 더 맛있는 초코였습니다.
이 카페는 남성 종업원들만 있었어요. 어쩐지 저는 조금 기가 죽었던 것 같습니다. 내부에서 먹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고, 모두 야외에서 식사 메뉴를 먹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모두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우리가 신경 쓰였지만 여행 초반이라서 쓰였던 마음일 뿐이었어요. 나중에는 모두가 눈치 보지 않는 곳에서 눈치 보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츄러스는 보이는 대로 아주 바삭하고 촉촉했습니다. 얇게 파사삭하고 부서지지만 내부는 쫄깃한 식감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 배가 고프고 돈이 많았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었을 거예요.
6.
이건 대체로 유럽의 조식입니다. 물론 셀프였는데요. 빵이 저렴한 만큼 아주 많은 식빵들을 조식 코너에 둡니다. 그라나다에서는 자주 이 빵들과 시리얼과 커피를 먹었는데요. 저희의 첫 동행이 추천해 준 디저트도 함께 먹었습니다. 낱개로 두 개를 사면서 맛만 보자고 생각했던 녀석인데, 너무 축축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혼자 아침에 나가서 사 온 것이라 기대도 컸고, 실망은 더 컸습니다. 둘 다 자기의 분량도 다 먹지 못한 채로 버리고 말았습니다. 확실히 스페인은 빵의 도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빵 말고도 많은 게 유명하고 또 설렜던 첫 나라였습니다.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말고도 세비야라는 도시를 여행했는데요. 남부로 내려갈수록 따뜻해지고 낭만적이어졌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쇼핑과 타파스와 도시적인 매력에 취했고, 그라나다에서는 알함브라 궁전과 골목과 야경에 감격했고, 세비야에서는 붉은 광장과 플라멩코 춤에 반했습니다. 신혼여행으로 다시 오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곳이 세비야였어요. 아무래도 빵과 커피보다는 유럽에 더 가까웠던 스페인이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빵과 커피, 유럽을 자주 넘나들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경계도, 제약도 없이 좋았던 것들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유럽에 있는 동안 저를 가장 가볍게 해 주었던 빵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비슷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은 이탈리아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