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편

by 최열음

크로아티아에서 한 달을 살았습니다. 2023년 4월을 그곳에서 보냈는데요. 정확히는 크로아티아에 있는 스플리트였고, 더 자세히는 스플리트 옆 카스텔라라는 시골 마을이었어요. 저와 친구는 그곳에서 한 달간 푹 쉬어갈 요량이었습니다. 저는 글을 쓰고 친구는 대외활동을 하면서요. 각자 할 일에 집중하며 보냈지만 완전히 쉬지는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우리는 유럽이었고 여행 중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이곳에서 잘 쉬기 위해 들인 돈과 시간과 에너지라는 게 있으니까요.


저희가 공식적으로 함께했던 건 먹는 일이었습니다. 식재료를 함께 사서 함께 먹기로 했거든요. 대충 열 시쯤 일어나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한 시쯤 점심을 먹고 여덟 시쯤 저녁을 먹었습니다. 크로아티아뿐만 아니라 유럽은 해가 되게 늦게 져서 저녁이라는 느낌이 잘 안 들었거든요. 너무 일찍 먹으면 금방 배가 고파지기도 하니까요. 여러모로 가성비를 챙기기로 했습니다. 저는 매일 숙소에 있는 커피를 내려 마셨어요. 그 덕분에 카페는 거의 가지 않았고, 빵도 많이 사 먹지 않았어요. 그 대신 밥과 과자를 많이 먹었습니다.


가끔 스플리트 시내로 나갈 일이 있으면 빵과 커피를 사 먹곤 했습니다. 저희들 숙소 근처에 바다도 있고 마트도 꽤 있었지만 오직 그것뿐이었거든요. 어쩌면 <빵, 커피, 유럽>의 측면에서는 암흑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다 옆에서 보내는 암흑기라면 그렇게 어둡지 않을 것도 같아요.



이탈리아 편에서 말씀드렸던 항구 도시 앙코나, 기억하시나요. 그곳에서 크로아티아로 배를 타고 넘어올 계획이었어요. 다들 선택하는 경로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던 기억입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힐 때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 커피는 망망대해 위에서 먹었던 것입니다. 배에서 파는 카푸치노는 어떨지 궁금했어요. 비싼 만큼 맛있는 지도요. 맛은 비슷했습니다. 그래도 우유 스팀을 직접 쳐서 주기는 하더라고요. 어떤 곳에서는 커피 머신으로 내려주기도 하던데.


이 커피를 마시면서 뱃멀미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정확히는 페리를 탄 것인데요. 저녁 7시쯤 출발해서 아침 7시쯤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노숙 아닌 노숙을 하게 된 것이죠. 배 안에는 레스토랑 좌석들이 많았어요. 그곳에서 우리는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잡고 잠에 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의 한 달이 어떨지 상상하며, 그래도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앞으로 한 달을 어떻게 보내든, 일단 12시간 동안 멀미를 안 하는 게 제일 위중한 문제였으니까요.



도착한 첫날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선물해 준 크로아티아 전통 디저트였어요. 두껍고 길쭉한 포춘쿠키에 슈가파우더를 잔뜩 뿌려놓은 맛이었습니다. 되게 담백하고 퍽퍽했는데 맛보다도 호스트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감동했던 기억이 나요. 그가 직접 구운 디저트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돌체구스토로 카푸치노를 내려 마셨습니다. 한국에서도 돌체구스토를 자주 썼는데요, 저런 우유 캡슐들이 별로 맛이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카푸치노를 좋아하게 된 후로는 이것마저도 괜찮더라고요. 조금은 인공적인 단맛이 나는 카푸치노를 혼자 열심히 마셨습니다. 드립 커피 머신과 원두도 있어서 매일 아침마다 커피 냄새를 잔뜩 풍기며 먹었어요.



첫 번째 사진은 저희가 매일 먹던 아침입니다. 여기에 과일이 더해지기도 하고, 음료가 달라지기도 했지만 이 식빵과 잼과 버터는 늘 고정이었어요. 빵에 버터를 발라먹는 게 이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한 달 내내 별로 질리지 않고 잘 먹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왜 빵을 사 먹지 않았는지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을 거예요. 크로아티아는 확실히 빵 맛집이 아니더라고요. 호스트에게 동네 빵집을 추천받아서 갔는데 거의 다 이렇더라고요. 도넛은 퍽퍽하고 패스츄리는 말라있었어요. 그래서 동네 빵집은 더 이상 가지 않기로 했었어요. 식빵이 싸고 맛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면서요.


아침을 대충 먹고 나면 저는 글을 썼습니다. 하루에 한 편은 완성된 에세이를 올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중간에는 조금 변화를 주고 싶어서 영상 편집도 시작했는데요.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 같아서 지금은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고 조금 쉬다 보면 다시 밥시간이 돼요. 점심이나 저녁 중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요리를 했는데요. 저는 간편한 양식을, 친구는 푸짐한 한식을 차리곤 했습니다. 많은 걸 먹고 많은 걸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었어요. 먹는 게 7할, 쓰는 게 3할 정도였는데, 글로 음식을 소화시킨 것 같기도 해요.



한 달 동안 스플리트 시내에 두세 번 정도 나갔던 것 같아요. 저희가 머물렀던 카스텔라도 별 게 없었지만, 스플리트라고 뭐가 엄청 많은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적당히 항구 도시스러우면서 적당히 관광지스러운 정도. 그런데 동유럽, 특히 프라하에서 유명한 굴뚝빵이 이곳에 있더라고요. 코코넛 베이스의 빵에 헤이즐넛 맛 아이스크림을 추가해서 먹었어요. 빵의 종류, 아이스크림, 소스까지 모두 고를 수 있었는데요. 기본만 해도 비싸서 저희는 소스 없이 먹을 요량이었는데, 일하는 언니가 ‘이거 더 발라줄까?’ 하더니 그냥 슥슥 발라줘서 꽤 비싼 가격으로 먹게 됐어요. 어쨌든 달고 맛은 있었으니 좋았습니다. 굴뚝빵도 바로 구워줘서 뜨끈하고 바삭했어요.



그리고 크로아티아 전통빵인 부렉도 있었어요. 보통은 고기가 들어간 걸 많이들 먹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가 갔을 때는 고기, 치즈, 치즈+시금치 중에서 골랐던 것 같아요. 부렉을 총 두 번 먹었는데 저는 두 번 다 치즈+시금치를 먹었어요. 되게 떡 같은 식감에 고소한 치즈와 시금치가 들어가있는 맛이에요. 조금 밍밍한 듯 담백하고 짭짤했어요. 스플리트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에 먹었는데, 첫 부렉은 되게 생경한 마음으로 먹었던 것 같아요. 이 도시가 아직은 미지의 세계 같았거든요. 마지막 부렉은 되게 익숙한 마음으로 사 먹었고요. 다시 집을 떠나 모험을 시작하는 마음으로요.



그리고 크로아티아에서 먹었던 두 번의 케이크. 첫 번째는 스플리트에 있는 쇼핑몰인 조커몰에서 먹었던 것입니다. 피스타치오 맛이었는데, 이것도 떡 같은 식감이었어요. 크로아티아가 떡을 좋아하는 건지 의심하면서 먹었던 것도 같아요. 그리고 처음으로 사 먹었던 커피, 역시 카푸치노인데요. 거품이 거의 한국만큼 퐁신하고 두껍게 얹혀있었어요. 외국은 쇼핑몰 문화가 더 발달되어 있더라고요. 아이들도 학교 끝나고 몰에 와서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조커몰에서 많은 이들의 선물을 사고, 또 먹은 만큼 풍족한 마음으로 돌아왔어요.


두 번째는 함께 살던 친구가 사다준 케이크입니다. 제가 남자친구와의 1000일을 이곳에서 맞았거든요. 어이없게도 얘가 창문밖에 숨겨둔 케이크를 제가 발견해 버렸어요. 근데 이웃이 잠시 놓고 간 케이크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어요. 친구한테 물었는데 걔가 그렇게 시치미를 뗐거든요. 누가 잠깐 놓고 어디 간 거 아니냐며. 속으로는 되게 당황했다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제대로 속았지 뭐예요. 제가 좋아하는 말렌카 케이크였는데, 오랜만에 파는 맛의 쫀쫀한 디저트를 먹고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크로아티아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을 요리해서 먹었기 때문에 메뉴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거든요. 나중에는 소재가 고갈돼서 그냥 마음만 고쳐 먹었던 것 같아요. 요리에도 매일의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는 스플리트보다도 두브로브니크입니다. 온통 붉은 지붕으로 뒤덮인 휴양지인데요. 스플리트에서 3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 갈 수 있어요. 한달살이가 끝나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보자는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언제 다시 크로아티아에 와보겠냐며. 조금 고민했던 이유는 두브로브니크 물가가 진짜 어마어마하다는 소문 때문이에요. 그런데 성수기가 아닐 때 가보는 건 괜찮겠더라고요. 저희가 갔던 4월에는 크게 비싸다는 자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 빵은 스플리트에서부터 가져온 빵이에요. 마트에서 많이 파는 크루아상인데, 사실 모양만 크루아상이고 맛은 모닝빵이에요. 한 번이면 충분한 맛이었고요. 크림 맛으로 먹었습니다. 두브로브니크는 1박 일정이어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노을이 지는 걸 기다리면서 제가 가져온 빵과 친구가 챙겨 온 과일을 먹었어요. 각자 소중한 것들을 챙겨서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온 여행이었어요.



언덕에서 내려와 저녁으로 먹은 샌드위치입니다. 체바치라는 전통 소시지, 혹은 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인데요. 사실 얼굴보다 크기가 커서 샌드위치라고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토마토 파스타 소스가 들어있었는데, 크기도 너무 크고 조금 물려서 먹다가 포기했던 녀석입니다. 모든 게 비싸다는 소문에 겁먹고 샌드위치를 사 먹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면 귀엽네요. 성수기에는 메뉴판을 아예 바꾼다고 들었어요.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쯤 아마 메뉴가 바뀌었겠네요.


두 번째 사진은 한 달용 숙소로 돌아오면서 먹었던 부렉입니다. 여전히 쫄깃하고 고소했던, 부렉을 생각하면 크로아티아 생각이 절로 나는 것 같아요. 유럽 길바닥에서 먹었던 수많은 빵들이 있지만 가장 아련하게 기억되는 순간이 마지막 부렉을 먹었던 때인 것 같아요. 한 달을 살면서 느꼈던 많은 감정들 때문일까요.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하면서도 매일 글을 썼던 순간들이 대견하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생각할 때마다 저를 아련하게 하는 부렉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다시 먹고 싶을 만큼 맛있는 빵은 아니었지만요.


지금은 한국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제 양 옆에서는 직장인들이 회사 얘기, 웃긴 얘기, 싫은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조신히 빵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게 조금 우습기도 하네요. 저들이 몸담은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왼쪽 사람들은 허리를 꺾고 책상을 두드려가며 박장대소를 하고, 오른쪽에서는 저보다 더 가만히 앉아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과연 저는 어떤 사람들과 일하게 될지 또 궁금해지는 시간입니다.


그것보다도 지금은 우선 제가 쓰는 글이 저를 해방시켜주었으면 합니다. 미약한 제가 미약한 글을 쓰고 있는데 자꾸 창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서요. 욕심보다 우선 한 편의 제대로 된 글이나 썼으면 해서요. 당장은 주변의 수다에 치이지 않고 글을 쓰는 게 정말 어렵네요. 어디서든 휘둘리지 않고 올곧은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귀를 막고 글을 쓰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헤드셋 없이도 흔들리지 않고 좋은 글을 쓰고 싶으니까요.


다음은 슬로베니아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