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보고 듣고 읽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매니페스트(드라마), 팟캐스트의 걸어서 조직 밖으로,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읽지 않을 때는 썼다. 그렇게 쓴 글들이 브런치에, 그리고 나의 패드에 저장되어 있다. 때마다 콘텐츠의 영향을 받아서 쓴 것일 테다.
그 중 가장 많은 시간은 매니페스트에 쏟았다. 나는 한번 드라마를 보면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편인데, 그래서 재밌는 걸 섣불리 시작하면 안 된다. 스토리에 매료돼서 많은 걸 제쳐두고 몰두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니페스트는 한 편에 40분짜리 드라마로 약 15화씩, 총 4개의 시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걸 정확히 10일만에 끝냈다…
이 드라마는 평범하게 비행기를 타고 내렸더니, 5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간 설정이다. 승객들은 아무도 늙지 않았고, 예정 시간대로 도착했기 때문에 영문을 모른다. 그러나 비행기를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들을 죽은 사람들로 간주하고 5년을 보낸 것이다. 그들의 귀환을 죽을 듯이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고, 숨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승객들이 기적의 존재라고 믿거나,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비행을 하고 왔을 뿐인데 재단 당하고 잘개 쪼개져야 했다.
이 미스테리한 사건을 신화적으로, 영적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다. 어쩌다 유튜브로 요약본을 보고 시작한 거였는데, 생각보다 엄청 철학적이고 딥해서 놀랐다. 그래서 더 눈을 뗄 수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드라마는 가벼운 것 위주로, 나를 쉽게 행복하게 해줄 것들만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에선 눈을 쉽게 뗄 수 있었다. 잠시 딴 짓을 하고 돌아와도 비슷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매니페스트는 잠시 화장실만 다녀와도 엄청난 증거들이 쏟아져나왔다.
대체 승객들은 이런 신비를 왜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을까. 시즌 4를 보는 내내 소명에 대해 생각했다. 신이 두 번째 기회를 준 거 아닐까, 이제는 볼 때가 아니라 믿을 때가 된 거 아닐까. 결국 시즌이 끝나갈 때쯤엔 나도 같이 미쳐있었다. 그들의 다사다난한 시간과 사건들을 내 정신으로 함께 겪어내는 듯했다. 정말이지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만한 대작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준비하고 있는 소설도 비슷한 흐름인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본 게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 어서 다음 전개를 보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풍성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이다. 아침과 저녁으로 시간을 쪼개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무엇을 쏟아내고 싶다.
그리고 팟캐스트. 사실 팟캐스트는 미국 드라마에서 소재로 쓰이는 것만 알고 직접 들은 적은 없었는데, 인스타 광고를 통해 접하게 됐다. 알고 보니 아이폰에는 팟캐스트 앱이 내장되어 있어서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콘텐츠도 생각보다 충분했다. 내가 들은 건 직장 밖에서 프리 워커로 살아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다. 제목도 ‘걸어서 조직 밖으로’. 한 명은 글을 쓰고 한 명은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물론 그들의 직업은 이렇게 단정 지을 만큼 명확한 경계로 구분되지는 않는다. 하나의 직업보다는 다수의 작업이 핵심인 것 같다. 한 분은 글을 쓰면서 첨삭 노동자로 일했고, 급식실에서도 잠시 일했으며, 그림도 그리고 강연도 하고 모임도 만든다. 다른 분은 인스타툰을 연재하면서 브런치도 쓰고, 텀블벅 펀딩에 유튜브도 하며 아주 많은 모임을 진행한다. 둘 다 한 게 너무 많아서 다 담지도 못했다. 어느 정도 수입을 가져가면서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체력과 정신력과 기획력과 추진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팟캐스트는 그냥 들으면 되는 거라서 편했다. 주로 운동을 가는 버스 안에서 들었다. 춤을 배우고 싶어서 학원을 다니는 길이었는데, 왕복 100분이니까 하루에 두 편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오가는 버스에서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혼자 글을 쓰는 나의 루틴이 명확하지 않고 방향이 흔들리던 때, 이 팟캐스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입이 없으니 프리랜서라고 하기도 뭐하고, 작가 지망생이라고 하기도 민망해서 그냥 스스로를 백수라고 칭했다. 그리고 그게 참 별로였다.
내 하루가 잘못된 것인지 궁금해서 주변에 묻고 다녔다. 요즘은 무얼 하며 지내는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거의 근황 집착녀였다… 그런데 내가 묻지 않아도 팟캐스트에선 필요한 말들을 들려주었다. 많은 프리랜서 혹은 가택 노동자들이 혼란을 겪으며 지내는 것 같았다. 이제 나만의 어려움은 아닌 게 확실했지만 하나 더 알게 된 것은,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버스에서는 팟캐스트를 듣고, 집에서는 매니페스트를 보면서 시간 관리 및 스토리 전개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다행히 지금은 드라마도 팟캐스트도 모두 끝나서, 정말 나의 시간에 집중할 때가 됐다. 꽤 괜찮은 인풋들 덕분에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생겼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해야겠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당황스러우니까. 김초엽 작가의 북토크를 가기 위해 사전 예습한 책이다. 중요한 건 그의 세계관에 반해버렸다는 것이다. 그가 쌓아올린 탄탄한 가상 세계와, 현실에서의 방대한 자료 조사가 하나로 이어지는 걸 느꼈다.
요즘은 이어지는 것에 관심이 많다. 매니페스트에서도 맨날 하는 말이 ‘모든 건 연결되어 있어’… 팟캐스트의 주인장들도 작업들을 하나의 줄기로 이어가는 데 힘을 쓰고, 김초엽 작가도 SF 작가라는 다소 부담스러울 타이틀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유기적으로 구축해나가고 있다. 결국 모든 건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이 모든 인풋들이 나에게 고루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만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남의 이야기가 필요한 모순이라니. 잘 쓰기 위해 잘 보고 듣고 읽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일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