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의 스물 다섯
세 번째 무직 인터뷰는 바로 완두. 열음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같은 재수생이자, 같은 크리스천이자, 같은 엠비티아이를 지닌 인물이다. 키와 몸무게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대학을 나왔으나 완두는 졸업 예정자로 첫 회사에 취직했고, 열음은 여행을 떠났다. 완두는 퇴사를 했고, 열음은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다. 둘 모두 어떤 모험 같은 것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누가 다시 어떻게,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머릿속엔 어떤 그림들이 있을까. 아무튼 열음과 완두는 비슷할 뿐이지 결코 같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퇴사한 지 약 70일이 지난 시점에 해당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떻게든 만날 텀을 내기 위해 아침 10시,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열음이 글을 쓸 때마다 매일 찾는 곳이었다. 평소에 앉던 혼자의 자리와는 매우 다른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양이 적지 않았는데도 가장 빨리 인터뷰를 마쳤다. 20분 정도 걸렸는데, 인터뷰를 시작할 때와 끝낼 때 모두 완두는 가볍게 웃었다. 피곤한 유재석처럼 나른한 아침 수다를 떨다가, 녹음을 켜자마자 재빨리 다른 태세를 보이는 열음이 낯설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은 자주 부끄러웠다. 이런 공식적인 대화를 열고 또 맺을 때마다, 그걸 다시 들으며 기록을 할 때마다 작게 몸서리를 쳤다. 그런 일은 주로 스타벅스에서 이루어졌는데, 완두와 이야기를 나눈 바로 그 공간이었다. 지금은 서울 어딘가에서 불닭볶음면을 주식으로 먹고, 공유 오피스에 출근할 완두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아래 사진은 인간 완두를 대신할 강아지 완두의 사진이다. 이 강아지를 보고 이름을 완두로 정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가 완두 앙금빵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저런 완두를 생각하며 쓴다.
- 첫 질문은 역시 근황에 관한 것인데요. 요즘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완두의 하루 일과가 어떤지.
새벽 한두시쯤 자고, 오전 열시쯤 일어나요. 목표는 항상 열시인데요. 일어나자마자 재빨리 준비하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오전에 무언가를 찌끄리다가, 카페나 공유오피스에 가요.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무언가를 합니다. 보통 영어 공부를 하거나, 자소서를 쓰고요. 요즘은 미래를 위해 AI 공부도 하려고 하고 있어요.
- 오, 현대 사회에 발맞춰서요?
(웃음) 네. 커피도 마시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낸 후에, 저녁을 먹고 나서는 집에 가거나 학교를 가요. 수업이 있는 날은 학교를 가거든요. 그 외에는 집에서 쉬는 편이에요. 야식도 꽤 먹고요.
- 아, 이렇게 세세하게 말해주는 분은 처음이에요. 사실 전 이런 치밀함을 원했어요.
(웃음) 아무튼 자기 전에는 넷플릭스를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 완두의 전공이나, 오랫동안 연마한 기술이 있는지 궁금해요.
시각 디자인 전공이고요, 이 전공을 살리고 싶어요. 처음 디자인을 선택한 건 중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미술 시간에 선생님의 칭찬을 받은 이후로…(웃음)
- 아, ENFJ로서 그런 칭찬은 무조건 기억하죠.
제가 무언가에 두각을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공부도 그렇고. 그때도 생각해보면 기획하는 쪽이었지 그림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진짜 재능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거든요. 당시 미술 선생님이 디자인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셔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좋아하던 유튜버가 있었어요. 메이크업을 하는 분이었는데, 그분이 시각디자인과셨거든요. 이런저런 영향을 받아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현재 취업하고 싶은 분야는 광고 홍보 쪽입니다.
- 되게 구체적인 무엇들로부터 영향을 받으셨네요. 현재는 첫 직장에서 퇴사를 하시고, 무직의 상태가 되셨잖아요. 아까 보니 휴대폰 홈 화면에 퇴사한 날짜를 디데이로 설정해두셨던데. 얼마나 되신 거죠?
76일째입니다.
- 그동안 주로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반반 정도 되는데요. 반은 공부를 좀 했고, 나머지는 여행과 휴식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 약 10일 정도 영국 여행을 다녀오셨잖아요. 꼭 영국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일단 유럽을 가보고 싶었거든요. 프랑스는 한번 다녀와서 다른 곳을 가보고 싶었고, 스페인과 영국 중에 고민하다가 그렇게 덥지 않다는 영국을 가게 됐어요. 8월의 스페인은 무척 뜨겁다고 들었거든요. 영국에 뮤지컬과 미술관 같은 문화 공간들이 많아서 가게 된 것도 있어요.
- 뮤지컬을 되게 많이 보셨다고 들었는데요. 얼마나 보셨는지, 그리고 가장 추천하는 뮤지컬이 있으신지.
네, 다섯 편 정도 봤는데요. 라이언킹을 추천하고 싶어요. 동물들이 정말 멋있게 묘사되어 있거든요. 특히 첫 장면부터 모든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그게 너무 웅장하고 좋았어요. 모든 관객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던 것 같아요. 그 무대를 가득 메우는 동물들이… 라이언킹이 제 여행의 마지막 뮤지컬이었는데요. 영어 해석 능력을 덜 써도 돼서 편했어요. 여행 끝물이라 귀가 피로했거든요. 아무래도 다른 언어 속에 며칠을 머물다보니.
- 올 여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계획이나 품었던 생각이 있었나요?
7월에는 퇴사를 앞두고 영혼 없이 회사를 다녔고요. 8월에는 영어 공부를 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여행도 다녀왔고요. 9월은 조금 어영부영 보냈네요.
- 벌써 9월이 끝나가고 있어요. 퇴사한 지 76일차이신데, 첫 직장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퇴사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저는요! 대강 말하자면, AI 스타트업에서 일했는데요. 그냥저냥 다니기에는 좋았거든요. 대학원과 겸하기도 괜찮았고요… 그런데 성장감이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MZ다 보니… 배울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했고요. 물론 배울 점이 있었지만 아쉬움이 있어서, 1년 정도 다니고 퇴사를 했습니다.
- 그렇다면 무직의 상태인 동안 타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계획이 있냐…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요. 보통은 바로 이직을 하기도 하니까요. 어떤 목표가 있는지, 혹은 쉴 건지에 대한 계획을 물었던 것 같아요.
- 반대로 무직의 상태인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무엇인가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다보니, 그걸 상기시키려고 노력했어요. 넌 할 수 있어-!
-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도 필요한 것 같아요.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말이에요. 완두는 현재 생활에 필요한 수입을 어떻게 내고 계시는지. 필요하다면 비정규직 혹은 알바를 시작할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저희집 월세가 좀 비싸서요. 반은 부모님이 부담해주고 계시거든요. 생활비는 퇴직금과 회사에 다니면서 야금야금 모은 것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행 전후로 돈을 계산해봤는데요, 내년 3월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 3월이요… (좋겠다…) 그러면 월세를 제외하고 한 달 동안 최소로 필요한 생활비는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40 정도 필요한 것 같아요. 물론 월 세 제 외. 역시 식비에 가장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돈을 다 어디에 썼을까요… 저희 이런 거 먹으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 저희는 지금 스타벅스에 와 있고요… 우리 완두는 커피에 베이글, 버터와 수프도 먹었습니다. (웃음)
(다음 편에서 계속)
아침에 스타벅스에서 만나면 조금 더 쾌청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지런한 몸과 마음일 줄 알았다. 그러나 갸륵한 상상과는 달리 그냥 매우 졸렸다. 아주 나른하고 피곤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백수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자기개발과 성장과 준비와 과정 속에 던져진 우리의 모습이랄까. 그것이 얼마나 권태롭고 끝이 없고 막막하고 피곤하고 나른하고 귀찮은지. 이 모든 걸 복에 겨운 소리라고 여길 직장인의 마음도 짐작한다.
졸리든 어떻든 일단 어디에든 던져두면, 감사하게도 그게 카페라면 우리는 어디서든 비슷한 주제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존재임을 알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함께 입을 터는 일과 같았다. 다만 오늘은 우리의 대화 속에 인터뷰가 있다는 점이 달랐다. 나는 완두와 삶에 대해, 끝없는 피곤에 대해, 막막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래서 진짜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 한편으로는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인터뷰를 생각했다. 아마 완두도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마주 앉은 상대의 어려움을 쉽게 느끼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