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의 스물 다섯
인터뷰를 정리하다보니 생각보다 더 짧았다. 영문을 모르겠으나 결코 짧지는 않은 내용이라서 괜찮았다. 열음과 완두의 가장 비슷한 점이 그거였다. 삶을 결코 만만하게 보지 않는 것. 혹은 밑도 끝도 없이 화이팅을 외치거나 기합을 넣는 것. 가끔은 스스로가 진지하다는 사실이 진지하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서 서로를 만날 때만큼은 농담의 기조를 지키게 되는 것도 같았다.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는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재빨리 준비하고 밖으로 나가는 그 마음을 정말이지 잘 알았다. 그의 말을 모르겠다, 보다는 너무 잘 알겠다, 쪽에 가까운 마음으로 들었다.
완두와 열음은 커피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커피를 마시며 할 수 있는 게 많으므로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다. 늘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고, 바라는 목표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러다 한번은 서로의 마음이 꺾일 때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꼬박꼬박 연락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이 꺾일 쯤이나 서로의 안부가 궁금할 무렵 카톡을 했다. 완두는 열음을 아갓시~라고 불렀고, 열음은 완두를 언니~라고 불렀다. 호칭만 보고는 어떤 요상한 관계인지 알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깊고 진중한 마음이 서로에게 있음을 알았다.
함께 무직이라서, 함께 고민하는 중이라서,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피곤하고 때로는 충만해지는 중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기품을 지키기 위해서는 각자의 시간을 충실히 보낸 후에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도. 완두와의 대화가 비교적 신속히 끝난 이유도 조금은 알겠다. 이미 마음속으로 충분히 생각하던 것들이라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길게 답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함축된 많은 것들을 짐작할 수 있어서 기뻤다. 언제나 그렇듯 가벼운 마음으로 나머지 인터뷰를 읽어 주시면 좋겠다.
- 무직이라서 가장 좋은 점 혹은 불편한 점이 뭐가 있을까요.
(고민…) 좋은 점은 늦잠? 안 좋은 점은 소속감이 없는 느낌이요. 동기 부여가 부족한 것 같아요. 하루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이 약해지는 게 고민이에요.
- 남은 올해의 시간을 조금 내다볼 수 있을까요.
올해는…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그게 하다 말다 하니까 잘 안 돼서, 조금 더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서 원하는 영어 점수를 얻고 싶고요. 혹은 가깝게라도… 회사에도 몇 개 더 지원을 해보려고요.
- 영어 공부와 회사 지원… 중요하죠. 그러면 내년 여름에는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싶으신지. 한번 상상해볼 수 있나요.
무서웡~… 내년 여름에는 돈을 벌고 있을 것 같아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취업을 한 상태이면 좋겠네요. 취업을… (먼 산)
- 그렇다면 두 가지 마음 중 어떤 쪽과 더 가까운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려운 마음과,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마음 중에서요.
어렵네요. 요즘 저의 상황을 생각하면 특히 더요. 원래는 전자에 가까웠거든요? 지금도 그 마음이 60%정도는 되는데, 이런 무직 상태가 되고 보니까… 무엇도 없는 이런 상태가 처음이거든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꾸 커지는 것 같아요. 늘어지다보니까요. 그래도 하고 싶은 게 있긴 하니까, 전자라고 생각해요.
- 요즘의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은 무엇이 있나요.
누군가 최근에 비슷한 질문을 했거든요.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한지에 대해서요. 그 애한테는 홍진경 씨의 말을 빌려서… 그 분은 행복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비슷하게 중도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마음인 것 같아요. 무엇이든 적당한 상태를 지향하면서요. 요즘은 특히 너무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하지 않으려고 해요.
- 무난하고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시는군요. 이전 인터뷰이들과 비슷하네요. 다들 중간을 유지하려고 하는? 유지가 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감정의 요동이 많지 않다고 말했거든요. (웃음) 오늘 완두님은 집에 가서 무엇을 할 계획인가요?
오늘 무슨 요일이죠, 월요일인가요. 그러면 나는 솔로를 조금 보다가 잠들 것 같아요. (웃음)
- 나는 솔로가 그렇게 재밌다면서요. (궁금하지만 볼 것 같지는 않음) 요즘 본인의 속도는 어느 정도인 것 같나요?
운전을 한지 하도 오래돼서… 한 70km?
- 오, 꽤 빠르시네요? (새로워서 흥미진진함)
제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건 시속 80-90km 정도라서요. 더 느린가? 아무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상태인 것 같고요.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일단 빠르지 않은 건 확실한데요. 뭐, 각자의 속도가 있으니까요.
- 현재의 상황을 수영에 비유하자면~ 어떤 모습인 것 같은지. 혹시 수영을 할 줄 아시나요?
물놀이를 한지 너무 오래돼서… 캐리비안 베이도 간지 꽤 됐거든요. 사실 물놀이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요. 살이 타기도 하고, 계곡은 돌도 많아서 무섭잖아요?
- 역시… 살이 하얀 이유가 있으셨구나.
탔어요~ (앙큼) 그래도 수영에 비유하자면 나름 자유영? 아, 그냥 배영으로 할게요. 구명조끼를 입고 발만 동동 움직이는 느낌이에요.
- 네, 감사합니다.
서로가 가벼워지는 순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만나 격 없이 무너지는 순간들, 서로의 허접한 무엇들을 발견한 순간들… 우리는 관종력과 소심함을 동시에 지닌 모순적인 인간들이다. 만나면 한없이 가벼워지다가도 또 금세 무거워지는 날들을 보냈다. 그 간극이 싫지 않았다. 두둥실 떠오르는 순간도, 조용히 하강하는 순간도. 서로가 등 뒤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이든 격조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열음과 완두가 함께일 때 가능한 무엇들이었으니까. 꼭 붙어있어야만 함께인 건 아니다. 그건 정체성의 문제다.
열음의 질문으로 인해 완두는 가벼워졌을까, 혹은 무거워졌을까. 어느 쪽이든 그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가능한지 묻자마자 덥석 알겠다고 해준 고마운 완두. 여름이면 함께 워터 파크에 가고, 겨울엔 한번쯤 놀러가곤 했다. 언젠가 떠날 마음도 있다. 그와 머물고 싶은 도시가 무수히 많지만, 언제든 결렬될 수 있는 협상임을 알고 있다. 둘 중 누구라도 고정적인 일자리가 생긴다면, 무언가를 시작하게 된다면 떠나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떠나지 못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서로의 뒤에 있을 것을 안다. 서로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유동적인 마음도 괜찮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