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의 스물다섯
네 번째 무직인, 아루를 만났다. 오랜만에 진행하는 인터뷰라 꽤 설레고 긴장도 했는데, 어쩐지 열음보다 아루가 더 기대 중인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 쌓인 말들을 어떻게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열음과 아루는 고등학교 친구이다. 이렇게 친구들만 인터뷰를 하는 게 반칙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존재들이니 이해해 주시길. 이들에게 질문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자 자극제이다. 아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새로운 질문을 준비해 갔다. 총 18개의 질문을 준비해 갔는데, 모두 싣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아루의 이야기는 매우 풍족하다.
아루는 현재 백수이다. 그리고 예술인이며, 아르바이트생이자, 디자이너이고, 타투이스트이자, 덕후이다. 이것 말고도 그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가고… 매일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나는 그저 10월의 한 순간 정도를 포착했을 뿐이고, 한 달 후라고 해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예상할 수 없다. 백수의 생활이란 한 끗 차이로 뒤집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채용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채용하는 미래를 기다리면서도 기다리지 않는다. 준비하면서도 준비되지 않는다. 그런 날들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아루는 지난 인터뷰를 통틀어 가장 무직인 같으면서도 가장 많은 이야기를 가졌다. 자기만의 방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지만, 당장 세상으로 튀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경험과 도전 의식과 용기를 지닌 자다. 그가 지닌 것들을, 그런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여실히 담아내고 싶었다. 우리는 절대 생각 없는 무직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특히 아루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될 것이다.
- 강아지 이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루요. 저희 집 강아지 이름이 아라거든요. 형제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고, 또 게임 속에서 기르는 강아지 이름이 아루라서요.
- (웃음) 어떤 게임을 하시나요?
‘스타듀밸리’라고, 농사와 연애를 겸하는 리틀포레스트 같은 게임이에요.
- 네, 아루는 요즘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하루 일과가 어떤지.
저는 아침 6시에 한번 꼭 깨요. 고양이들이 밥 먹을 시간이라서요. 걔들이 깨워서 한번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면 10시-12시 사이에 일어나요. 할 일이 있으면 회피하느라 더 늦게 일어나고요. 10시에 일어나면 주로 동물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핸드폰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집에 동물이 많아서 청소기도 한번 돌려야 하고요.
그리고 생산적인 일을 딱히 하고 있지 않아서, 다시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배고프면 음식 찾아서 먹고요. 다시 핸드폰 보고… 민망하네요.
- (웃음) 어쩌면 가장 백수적인 모습으로 지내고 계시네요.
전형적인 백수의 하루입니다. 사실 2주 전까지만 해도 동생의 아이를 돌보면서 베이비시터로 지냈거든요. 그래서 생산적인 일을 할 시간은 없었지만, 육아로 인해 규칙적인 생활은 할 수 있었는데요. 그러다 동생이 일을 쉬게 되면서 육아로부터 해방되었어요. 사실 육아를 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루틴이 기억나지 않네요…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난 한 주는 육아에서 해방된 자유를 누리는 데 집중하며 보냈습니다.
- 여름에 호주 여행을 다녀오신 후로 바로 육아에 돌입하지 않았나요?
그렇죠. 한 달 반 정도를 육아에만 전념한 것 같아요. 동생이 출근해서 퇴근하기 전까지는 갓난아기를 봤고요. 동생이 퇴근하면서 첫째를 하원시키면 둘 모두를 돌봤어요. 동생 집에서 먹고 자면서 식모 살이를 했습니다. (웃음)
- 아, <지붕 뚫고 하이킥> 시트콤의 신세경 님 같은 생활을 하셨네요. 대학을 올해 졸업하셨는데, 전공과 함께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전공은 실내디자인이고요. 운이 좋게도 원하던 학교의 원하던 학과를 가게 되었어요. 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녀서 저만의 공간을 꾸며본 기억이 없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공간에 대한 결핍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어렸을 때 하던 게임 중에 ‘아이 러브 커피’ 같은… 카페를 꾸미는 게임을 즐겨했거든요. 그 게임을 할 때도 카페 매출을 올릴 생각보다는 공간을 예쁘게 꾸미는 데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은주의 방’이라는 웹툰도 보았는데요. 셀프 인테리어를 다룬 유일한 웹툰이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제가 공간을 다루는 일을 즐거워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고등학생 때는 구체적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 혹은 코디네이터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렇게 입시 미술도 시작했고요.
- 스토리가 무척 탄탄하네요. 대학에 가고 나서는 어땠나요?
실제로 가보니, 역시 생각한 것과는 달랐는데요. 생각보다 너무 많은 체력을 요하더라고요. 모든 미대와 디자인 전공이 그렇겠지만… 저보다 잘하는 사람도 무척 많았고요. 이 전공을 계속 가져간다면 행복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2, 3학년쯤부터 한 것 같아요. 지금은 전공과 다른 일을 하려고 진로를 탐색하는 중이에요. 그걸 찾기 위해 휴학을 하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어요.
- 어떤 일을 하셨나요?
그때는 전공이 아니면 다른 기술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격증보다는 실무적인 일에 도전하게 됐어요. 한창 일러스트 페어를 많이 다니던 때라서 직접 작가님들도 만나보고, 그림으로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타투이스트 일을 시작했고요. 2년 반 정도를 타투이스트로 지냈어요.
복학을 하고 나서는 4학년이었기 때문에 졸업 전시를 위한 가구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걸 제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가구 공방도 다녀봤어요. 꼭 전공으로 취업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갈 수 있도록 B안을 세워둔 거였어요. 그때는 가구나 오브제를 만드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또 제 물건을 팔아보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볍게 스티커라든지 식기류, 인형 같은 걸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했어요. 되게 다양한 일을 많이 해봤던 것 같아요.
- 꼭 자격증이나 명목이 중요한 것보다도 몸으로 부딪히는 일들을 많이 해보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나요?
제가 생각보다 겁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무언가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바로 도전할 수 있다는 게… 그 시작은 타투였던 것 같고요. 그때도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어요.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았거든요. 기회를 주신 분들 덕분이죠. 타투를 시작으로, 도전에 대한 진입장벽이 좀 낮아진 것 같아요.
타투를 할 때는 전공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거든요. 혼란에 빠진 시기였는데, 친한 동기가 타투하는 걸 보고 저도 덩달아 받게 됐어요. 조금은 충동적인 마음으로 했던 것인데요. 그때의 경험이 좋았어서 제게 타투를 해주신 분께 타투를 배우기로 했고, 마침 수업이 끝나자마자 작업실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권유해 주셔서 바로 데뷔를 할 수 있었어요. 흔치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타투도 그렇고, 공방도 그렇고 좋은 타이밍 덕분에 도전이 조금 더 쉬웠던 것 같아요. 물론 운이라고만은 할 수 없겠죠.
- 기회를 잡은 거죠.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까, 주변인들도 저를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더라고요. 가끔은 그런 인식과 프레임에 갇혀 있다 보니,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영향이죠.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제가 그런 기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하나만 더 말해도 될까요?
- 그럼요…
사실 저 이런 일만 한 건 아니고, 자격증도 따긴 했거든요.
- (웃음) 무슨 자격증인가요?
전공을 아예 버리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에, ‘전산 건축 실기’였나? 이름이 가물가물하네요. 동기들을 따라서 본 것인데요. 필기까지 봤고, 실기는 아직 보지 않아서 완전히 취득한 건 아닙니다만… 기본적으로 디자인 동기들이 많이 따는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도 땄고요. 일본어에 관심이 있어서 그쪽으로도 시험을 준비했는데, 떨어지긴 했어요.
- 그래도 일본에 가서 어느 정도 회화가 가능하잖아요?!
애니메이션으로 일본어를 배우면 안 되는데… 제가 그렇게 배워서요. 그래도 도움은 되더라고요. (웃음) 리스닝은 자신 있어요.
- 이제 두 개의 질문이 끝났네요… 지금까지 무직의 상태로 얼마나, 그리고 어떤 시간을 보내셨는지.
2월에 졸업했으니까 9개월 차네요. 4학년 때는 졸업을 하자마자 취업을 할 거라는 독기가 있었는데요. 4월쯤 되니까 그런 마음이 점점 사라지더라고요. 그러다 여름에는 제임스(이전 인터뷰이)처럼 무의 감정으로 지낸 것 같아요. 불안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감정 자체를 외면하고 분리하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올해에 대한 특별한 기억도 없는 것 같아요. 호주를 다녀온 뒤에 바로 육아를 하면서 그게 극대화됐고요.
- 올해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이 휘몰아쳤네요.
눈 감았다 뜨니까 남아있는 게 없는 느낌이에요. 이제 육아에서 해방됐으니까 현실을 더 직시하려고 해요. 조급한 마음도 드는 게, 이제는 무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됐나 봐요. 올해 이전의 상태로 조금 돌아가서, 취업이든 취미든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이 됐어요.
- 아까 전공을 살리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느 쪽으로 가고자 하시는지. 가닥을 잡으셨나요?
가구와 관련된 분야에서 디자인이든 셀러든 하려고 해요. 혹은 문구나 편집샵 쪽으로도 생각 중이에요. 이 분야는 대개 정해진 시기에 채용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서, 공고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 올해 초반에는 그것만 기다렸는데, 요즘은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콘텐츠 디자인 쪽으로도 생각하고 있어요. 디자인 직무에도 기회를 열어두고 잡코리아를 계속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 공고가 올라오는 타이밍에 따라서 직업을 선택하게 되시겠네요.
(다음 편에서 계속…)